달그락 달그락
“어머니 이것도 좀 드셔보셔요.”
“…너도 많이 먹어라.”
복순, 재무,순이가 둘러 앉아 아침을 먹고 있다. 대부분 복순의 입맛에 맞춘 음식들이고 환자에게 부담 없는 음식들이다. 차린 사람이 신경 쓴 티가 난다. 재무가 제 앞에 놓인 나물이 맛있다고 복순의 밥그릇 앞으로 옮겨놓는다. 아침 식사 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와서다.
순이는 식구들이 둘러 앉아 밥을 먹을 때면 다시금 입을 다문다. 재무가 옆에서 쉴 새 없이 말하기에 본인까지 말할 필요 없다 생각해서인지. 복순의 시선이 순이를 보다 재무까지 힐끗 하곤 다시 밥 먹는데 집중한다.
“근데 어마이 우리 이번에 땅 판거는 다 통장에…?
“그럼 그거 다 쌓아두고 있을 까봐?”
“아 아니 그냥요…”
“어련히 통장에 잘 있을까? 그리고 글도 못 읽는 놈이 무슨…”
“아잇 그 얘긴 하지 마시라니까… 그리고 내가 딴 것 때문에 그래요? 그 많던 땅 팔아 치우고 다 쪼그라든 땅때기 보고 있을라니까 심란해서 그렇죠. 내가 평생 농사만 지었는데 이제 조 쪼만한거로 뭐해 먹고 사나 싶고.”
“저거만 농사 지어도 다 먹고 산다.”
최가네는 겨울로 접어든 얼마전 광석을 통해 업자를 알아봐 가지고 있는 전답의 절반 이상을 팔았다. 남이 보면 남은 땅만 가지고도 농사하며 생계를 꾸려가긴 부족함이 없으나 문산리에서 가장 크게 농사 짓는 대농이었던 재무로선 어색할 따름이다. 갑자기 전부 판다고 했을 때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지만 갑작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어차피 내 몸도 이렇고 농사 꾸려가기 힘들다. 다 가지고 있어 봤자 땅만 상해. 농사가 뿌릴 때 있으면 거둘 때 있다시피 우리도 많이 뿌렸으니 이제 가진 거 다 팔고 거둘 때 인거지.”
“그럼 유산을…”
복순이 순가락을 내려놓고 가만히 재무를 바라보자 재무가 헛 숨을 들이켜며 말을 삼킨다.
“어우 맛있네.”
복순이 재무를 한참이나 째려보다 다시 밥그릇에 고개를 박는다. 순이는 그저 조용히 숟가락을 놀릴 뿐이다.
***
밥을 먹고 나온 재무와 순이. 순이는 부엌 수돗가에 앉아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 재무는 부엌 문 앞에 맨 바닥에 털썩 주저 앉은 채다
“아니, 당신도 어머니한테 따로 들은 얘기 없어?”
“…”
“재학이 놈 갑자기 서울 간 것도 이상하고. 그렇게 내가 땅 팔고 농사 좀 쉬엄쉬엄 하면서 시장 같은데 가게나 하나 얻어서 살자고 할 때는 들은 척도 안 하시더니 본인 몸 좀 안 좋아지셨다고 그 절반 넘는 걸 다 팔아제끼고… 이해가 안되네……”
“…뭐가요?”
실제로 재무는 평생 농사꾼으로 살았지만 가지고 있는 땅을 일부 팔고 시장 근처로 이사해 가게나 하면서 살자는 말을 종종 했다. 어머니도 점점 나이 들어가고 본인도 점점 체력이 떨어질 테니 이른 조바심에 한 얘기일 터였다. 그럴 때마다 농사꾼이 농사로 먹고 살지 장사는 아무나 하냐며 어머니께 된소리를 받기 일쑤였으나.
“아니 그렇잖아. 저 땅 어차피 다 나 줘야 하는 거 아니여? 재학이놈이 집에서 가져가기만 다 가져갔지 뭘 했다고? 어머니가 다 나한테 넘겨주시면 내가 동생놈 챙긴다고 조금 이렇게. 응? 형님이 이렇게 챙겨주는 게 맞지. 재학이놈 서울 간지 얼마 안돼서 땅 반 뚝 떼서 팔아 현금 쟁여두고 있는 게 이거 설마 어머니가 재학이 놈 유산 미리 땡겨줄려고 그러는거 아니여 반절이나?”
“……”
“뭐 들은 얘기 없어 당신? 그럼 말이 안되지! 아무리 같은 아들이어도 엄연히 순서가 있고 해온게 있는건데”
“…몰라요 나는. 그런 얘기 하신 적 없어”
“에이 아무튼… 여편네라고 있는 게 말도 못하고. 나 나간 사이에 어머니랑 얘기 좀 잘해봐 뭐 하시는 말씀 있으면 나한테 좀 전해주고”
“…”
“…아 참 나 내일 들어올거야 그렇게 알아”
“…네”
자리에서 일어난 재무는 일어나 문을 나선다. 떠나는 재무를 물끄러미 보던 순이는 설거지를 마무리 한 뒤 일어나 방으로 들어간다. 시모가 화장실에 가야할터였다.
***
이후 재무는 몇일이고 밥상 위에 반찬 하나를 직접 올렸다. 돈이라는 반찬을. 평생 나눠본 적도 없는 대화를. 어머니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해도. 꾸역꾸역 어떻게든 얘기를 꺼내 복순에게 확실한 대답을 듣기위해서
이제 재무에게 유산과 남은 재산에 대한 정리는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해졌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밤이고 낮이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가서 밭을 가꾸고 평생 농사를 해온 건 본인이다. 물론 복순의 땅이었지만 단 한번도 본인 땅, 본인 재산이 아니라 생각해본 적이 없다. 최근 벌어지는 일들은 마치 재무에겐 강도가 흙발로 본인 집에 든 것과 진배없었다. 근데 복순은 입을 꾹 다물어 버리니. 재무로썬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할 일도 없으니 왼 종일 신경이 가 있는 건 어쩔 수 없을 수밖에.
***
이른 저녁 순이는 수돗가에 앉아 복순의 요를 빨고 있다. 욕창이 생길 수 있어 자주 빨아주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면… 다 정리된 거예요 어머니.”
“…니가 고생 했다”
방안에선 광석과 복순이 마주 앉아 대화중이다. 광석은 간만에 깔끔한 차림으로 가방까지 한 켠에 가지고 있는 채다.
“고생은요 뭘… 근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안 괜찮을 건 또 뭐냐? 난 다른 건 다 걱정 안되는데 니가 뒤에서 허드렛일 시켰다고 애미 씹어댈까 그게 제일 걱정이다 나는”
“하하하 어머니도 참 그걸 또 어떻게 아셨대? 어머니 아주 오래 사시라고 내가 아주 빼먹지 않고 욕을 할거예요. 어머니 억울해서 오래 사시게”
“…얼마나 걸리냐?”
“음… 짧으면 일주일. 길어도 열흘 안에는 다 끝나요 제가 최대한 빨리 끝나게 정리할게요.”
“그래 고맙다.”
“그럼… 어머니 또 올게요”
“뭘 또 와 또 오기는. 와도 귀찮기만 하다. 오지 말어 이제. 색시 데려올 거 아니면.”
“약 올라서라도 또 와야겠다.”
“얼른 가. 얼른”
“하하하 네 가요 엄니 저”
그때였다.
“어머이~!”
벽 너머로 듣기에도 취기가 느껴지는 목소리. 재무였다.
벌컥! 문이 열리고 거나하게 취한 재무가 문을 양손으로 짚고 들어온다. 순이는 뒤에서 안절부절 못한다.
“석이 이놈 새끼도 와있었네? 이 새끼”
“아이고 형님 술 많이 드셧어요? 얼른 쉬셔야겠네”
“닥쳐 인마! 어? 뭐야 이거.”
광석이 복순과 대화하다 아직 가방에 넣지 못한 서류 봉투에 재무의 시선이 닿는다.
“이거 등기 봉투잖어. 가만 보자. 등기 맞네 등기. 맞지?”
“하하하 아무것도 아니에요 형님”
재무가 허리를 숙여 봉투를 가져가려 하자 재무가 슬쩍 몸 쪽으로 당기며 웃으며 재무를 만류한다.
“아니긴 뭐가 아무것도 아니야 씨발! 내가 이집 가장이야 가장! 근데 이집에서 먹물이 왓다갓다 하는데 내가 모르는 게 말이 돼? 야 너도 나 글 못 읽는다고 무시하냐? 집도 절도 없어 시집오고 나서 어디 다녀올 데도 없이 사는 저 여편네도 글을 읽는데 나는 못 읽는다고 니가 무시해? 야 넌 나랑 엄니 아니었으면 그 잘난 공부하지도 못했어 알어?”
“하하하 형님 왜 이러실까 제가 다 알죠… 근데 어머니 계신데…”
술에 취해 나오는 데로 지껄이는 재무였다. 지금 어머니가 앞에 있다는 것도, 뒤에 아내가 듣고 있다는 것도 재무에겐 중요치 않다. 본인이 무슨 말을 내뱉는지도 모를 터였다. 이미 대화가 통할 상대가 아니다.
“보여줘라. 첫째는 앉고”
“줘보래도!”
“엄니…”
의기양양해진 표정으로 광석에게 서류를 빼았은 재무는 이내 앉아 봉투를 거칠게 열어 서류를 꺼내 두꺼운 손으로 종이 뭉치를 잡고 들여다본다. 이내
“다 읽었냐?”
“……”
읽었을 턱이 없다. 본인이 큰소리로 떠든 것처럼 재무는 글을 모르기에.
“그럼 다시 석이 돌려줘라. 석이는 이만 가보고.”
“이거 뭐라고 적힌 거요?”
“아 형님 그게…”
“넌 입 닥치고!”
“……”
“돌려줘라”
본인이 아픈 적이 언제 있냐는 듯 곧추선 허리와 햇빛 아래에서 언제까지고 강직함을 잃지 않을 것만 같았던 예의 그 눈빛으로 흔들림 없이 본인을 바라봐오는 어미다. 평생 본인을 이끌어 왔던 등. 그 눈빛.
더 이상 거역하지 못하고 거칠게 서류 뭉치를 광석에게 건네 주는 재무다.
“이만 가봐라”
“…네 어머니 들어가 볼게요.”
광석이 문을 열고 나가자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건 걱정스레 방의 끝을 바라보는 순이다. 복순의 침상은 항상 방문에서 가장 먼 곳에 있다.
“그래… 뭐가 문제여?”
광석이 나간 방안 복순이 재무에게 묻는다.
“그걸 몰라서 물어요 지금?!”
“그러니까 묻잖어 이놈아. 뭐가 문제냐고”
“어머이 재학이네 돈 갖다 줬어요?”
“그게 뭔 뚱딴지 같은 소리여?”
“어머니 아프시고 나서부터! 재학이 놈 인사도 없이 서울로 튀어버린것도 그렇고! 그 뒤에 갑자기 금이야 옥이야 하던 땅 덩어리도 반절이나 뚝 떼서 판 것도 그렇고! 이거 다 재학이놈 미리 유산 떼준거 아니요? 그 뒤에 광석이 놈 집에 드나드는 것도 잦아지고! 이거 다 나 몰래 재학이놈,석이놈이랑 엄니랑 손발 맞추고 있는 거 아니냐구요!”
“그래… 내가 아프고 나서부터 광석이 놈이 자주 왔다 갔다 한건 맞지. 장남이라는 니보다 더 집에 자주 왔을 수도 있겠다 그제?”
“…지금 그 말 하자는게 아니잔소!”
“그래… 한번 아프고 나니까 내 도저히 다시 나가서 농사 지을 엄두가 안 나서 너 농사 짓기 편하라고 땅 있는거 절반 팔아 넘겼지. 근데 그게 뭐? 재학이 놈이야 제 살길 찾아 간거고”
“그거 통장! 통장 보여줘 봐요! 돈 재학이네 다 부친거 아닌가 보게!”
“이 썅노무 새끼가!”
갑작스런 복순의 호통에 재무도 흠칫 놀란다.
“이노무 새끼가 그래도 가장이고 장남이라고 조용히 얘기할래도… 뭣이 어째? 통장을 내보여? 야 이노무 새끼야 니 애미 벌써 죽었냐? 벌써 죽었어? 아니면 죽으라고 고사라도 지내고 있냐? 집에 안 들어오고 밖으로 나도는 게 무당 찾아다니며 어미 죽으라고 복채라도 갖다 쥐어주고 있냐? 이 개놈에 새끼!”
“아 아니 엄니… 그게 아니고…”
“어디 자식새끼 입에서 유산 얘기가 나와 나오기를!”
당황해 듣던 재무도 얼굴이 달아오른다. 따뜻한 방안 공기와 술기운이 재무를 물러나지 못하게 부추긴다.
“엄니도 너무 한거 아니요! 평생 엄니 옆에서 농사 지은 게 누구요! 나 잖소! 재학이놈이 집에 뭘 갖다주기를 했어, 일을 돕기를 했어! 봄 되면 씨뿌리고 비 오면 배수로파고 가을 되면 거둬들인 것도 다 나잖소! 근데 재학이 놈한테 반절이나 떼주는게 말이 되냐고! 그럼 나는! 평생 농사만 하고 산 나는!”
복순이 재학에게 절반을 부쳤다 말한적도 없지만 이미 재무의 머리속에선 기정 사실이 되어 가고 있었다.
“엄니 설마 내가 애를 못 봐 그런 거요? 재학이 놈이 손주 먼저 보여줄까 봐서? 그건 내 문제가 아니라…”
퍽!
“…….”
복순의 옆에 있던 화투짝이 통째로 재무의 머리통을 거쳐 방에 나뒹군다. 방바닥에 꽃이 피었다.
“한마디만… 더 해… 재산이고 땅이고 뭐고 싹 다 불질러 버릴라니까…”
“……”
얼얼한 머리를 한 손으로 부여잡고 복잡한 눈으로 제 어미를 바라보는 재무다. 서운함, 원망, 서러움 그런 것들이 눈에 담겼다.
“나가라… 꼴도 보기 싫다…”
“…….”
“…못난 놈…”
말없이 복순을 바라 보던 재무는 고개를 한번 떨구더니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간다. 들어올 때와 달리 노기도 취기도 다 빠진 모습이다. 열린 문틈으로 순이는 보이지 않는다.
문이 닫힐 때까지 복순은 자세를 꼿꼿이 유지했으나 문이 닫히자 더 이상 허리를 세우고 있기가 힘들다.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흐른다. 본인 몸으로 누울 힘도 없어 그저 허리를 있는 데로 구부린 채 고개를 모로 돌려 힘겸게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덮고 있는 이불이 천근 만근이다.
“어머니”
눈 감고 숨을 몇 번이나 들이쉬고 내쉬었을까. 언제 들어왔는지 모를 순이가 복순의 옆에 다가와 조심조심 복순을 뉘인다.
“순이야…”
“…”
방안에서 나눈 얘기를 한 톨이라도 들었을까 싶은 복순이었다.
하지만 본인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지금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땀 흘리고 있는 복순의 육신이라는 듯. 시선을 고정한 채 물수건을 빨고 땀을 닦아내고 행여 추울까 이불을 덮어주는 그 경건하기까지 한 손길에 복순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복순은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