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만나요_19화

by Breeze

3개월후“어머니 진지 잡수실 시간이에요”순이가 밥상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선다. 복순이 눈을 떠 순이를 바라보고 순이는 익숙한 손길로 복순을 일으켜 앉힌다. 복순의 등뒤로 이불과 베개를 말아 기대 앉기 편하게 만들어 놨다.“…”복순은 말없이 순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한동안 문제 없이 잘 말했지만 또 몇일 말하는 게 둔해지셨다.“오늘은 어머니 좋아하시는 미역국 끓였어요. 소고기도 갈아서 어머니꺼에 골라 넣었으니까 이거 한 그릇 다 드셔야해요.”순이가 답지 않게 말이 많아 졌다. 복순이 쓰러지고 퇴원한지 3개월이 훌쩍 지났다. 처음 몇 일간은 병원에 입원해 있었으나 병원에서도 더 이상 해줄 건 없다고 했고 간병하는 분만 괜찮다면 집에 있어도 괜찮다고 처방을 내렸다. 다른 누구보다 복순이 강력하게 집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식사를 거부하면서까지.광석과 재학은 환자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에 불안해하고 걱정했으나 재무와 순이는 괜찮다며 복순을 집으로 모셨다.퇴원하는 길에 의사가 순이에게 당부했다. 대화를 많이 하셔야 한다. 후유증으로 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복순은 후유증으로 다리를 심하게 절게 되었다. 오른손은 그나마 쓰지만 다리를 저는 마당에 말까지 잃어버리게 할 수는 없었다.순이는 그렇게 수다쟁이가 되었다.“도련님한텐 따로 전화 온 건 없어요. 서울가서도 잘 지내시겠죠.”가만히 얘기를 들으며 순이를 바라보며 밥을 먹던 복순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도련님이 애기도 아니고 서울 가서도 잘 지내실거예요. 걱정마세요.”순이가 복순의 눈물을 닦아주니 복순이 왼손을 들어 순이의 손을 덮는다.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순이가 답한다.“알겠어요 이장님네 가서 한번 더 전화해볼게요 제가”순이가 말하며 손을 빼자 복순도 손을 놓는다.복순에게 약까지 먹인 순이가 복순을 다시 눕히고 방 안을 나왔다.“후우…”건강하시던 분이 정말 하루 아침에 병상에 누워 움직이질 못하고 있다. 그 기력 넘치던 시모를 생각하니 순이의 마음이 쓰리다.왕왕!!“그래… 너도 밥 먹자.”먹보가 나온 순이를 보며 배고프다고 앙탈을 부린다. 집에 환자가 생기니 식사부터 잠자리까지 전부 환자 중심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덕분에 먹보의 식사 시간도 복순에 맞춰지니 어쩔 땐 한참을 못 얻어 먹을 때도 있다.“아이고… 내가 미안해.”남편은 한창 한해 농사를 마무리한다고 바쁘다. 최근엔 집에서 잠만 자고 나가기 일쑤였다. 올해 최가의 겨울은 일 없이 지나가기로 결정했다. 농사꾼이 겨울에 뭔 할 일이 있겟냐먄 겨울엔 내년 농사 준비가 끝나면 일당일이라도 나가서 돈을 벌어오곤 했다.하지만 올해는 집에 환자가 있으니 재무도 집에서 가만히 복순을 살피는 것이 좋다 생각한 것이다.먹보의 밥까지 챙겨준 순이가 평상에 두껍게 쌓여 있는 먼지를 대충 털어내고 끄트머리에 걸터 앉아 하늘을 올려다 본다.가만히 앉아 높이 흘러가는 구름을 올려다보며 재학이 다녀갔던 아직은 무더웠던 장마를 떠올리는 순이였다.***“형수님”“아 도련님”“어머니… 오늘 좀 괜찮으세요? 드릴 말씀이 좀 있는데.”“아…네 오늘 아침까지 말씀 잘 하셨어요 들어가보세요.”“네… 그럼”복순이 병원에서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온 지 1주일이 막 지났을 때였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말을 뚜렷하게 잘 하실 때였고 기억력에 혼동도 없을때였다. 본인을 부르는 재학의 모습이 평소 순이가 알던 모습과는 무언가 달랐다.“어머니 저 왔어요.”“그래 막내 왔냐. 바쁜데 뭐 한다고 또 왔어.”“몸은 좀 괜찮으세요?”“뭐… 지금 몸 상태야 좀 낫든 아니든 크게 상관이나 있겠냐 어차피 갈 날 얼마 안 남은 거 같기는 매한가진데.”“어머님도 참… 요즘은 풍 맞아도 다 완치도 되고 잘 지내신데요.”“나처럼 반 불수가 되도?”“……”분명 복순의 후유증은 좀 심한 편이라고 병원에서도 말하긴 했다.“아서라 뭐 늙은이 몸 안 좋아지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래서 무슨 일 있냐? 보아하니 그냥 온거 같지는 않고.”“그… 드릴 말씀이 있어요 어머니.”복순이 재학을 빤히 보다 말한다.“…그래 해봐라 순이한테 얘기해서 물이라도 갖다주랴?”“아 아니요 괜찮아요.”무릎을 풀고 복순의 앞에 앉은 재학은 숨을 고르고 천천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절대 죽을때까지 어머니께 제입으로 말할 일 없을 거라 생각한 이야기들을.본인의 대학시절 이야기부터 지금 경철이 감옥에 들어가 있는 사실, 그래서 희수가 어머니께 인사도 드리지 못한채 서울로 떠났다는 얘기. 본인이 당신을 모시고 병원에 간 그날이 희수를 버스 태워 보낸 날이라는 얘기까지.의외로 복순은 이야기가 끝날때까지 가만히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본인이 운동권에 연루되어 경찰서에 다녀온 얘기부터, 서울에선 도저히 발 붙히고 살기 어려울거 같아 영월로 도망치듯 왔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에도.“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이유는… 제가 서울에 가봐야 할 거 같아요… 어머니… 제가 희수를 데리고 강원도에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아마… 올 수 있게 되도…”“그땐 내가 죽고 없겠지.”재학은 눈을 질끈 감았다.하지만 이제서야 재학은 흔들리지 않았다. 본인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알았다. 이제서야.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며 어머니가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 때 재학은 아내 생각을 했다.본인의 안위, 체면 이 따위 것들 만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덜 억울하고 싶어서. 조금 더 떳떳하고 싶어서. 옆에 있는 아내 얼굴을 보지 못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을 수도 있는 순간이 되고 나서야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얼마나 견디기 어려웠을지 생각이 닿았다.‘똑같이 불안했을 것이다. 망가진 나를 보며… 등져야 하는 가족을 생각하며…’불안감에 떨었을 것이다. 남편이 이대로 완전히 망가져 버릴 까봐. 가족을 등지면서까지 곁에 남은 남편이 몇 개월 씩이나 망가질 데로 망가져 피폐해져가는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았다. 끝내 영월에 와서도 본인이 희수에게 보여준 건 초라한 모습뿐이었다.그럼에도 단 한순간도 희수는 본인을 탓하지 않았다. 그저 옆에 서있었다. 언제든 돌아보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미소를 띄우며 손을 벌려 본인을 보듬었을 뿐이다.마땅히 같은 짐을 짊어지려 했다. 부부이기에.그런 희수가 이번엔 가족에게 힘이 되기 위해 떠났다. 본인은 받기만 하고 그 무엇 하나 쥐어 보내지 못했다.심지어 스스로조차 지금 본인이 서울에 가서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라는 핑계를 대고 희수를 홀로 서울에 보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그러니까… 너는 서울에 공부하라고 보내 놨더니 시위해서 경찰서나 들락거리고, 그 마저도 정착 못해서 서울에서 도망쳐왔고 또, 그 잘났던 사돈댁이 이번엔 감옥에 가서 옥바라지 하러 며느리가 인사도 없이 서울에 갔다… 너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어미를 두고 마누라 따라 서울 간다고…”“……”복순이 천장을 올려다본다.“많이 남겼다 생각했는데… 자식농사를 한참 망쳤구나 내가…”***끼이익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순이가 방에서 거리가 먼 마루의 끄트머리에 앉아 있다 나오는 재학을 보며 일어난다.“…도련님 엇”“……형수님”방에서 나온 재학이 순이를 향해 허리를 깊게 숙인다. 받아본 적 없는 인사다. 한참이나 허리를 숙이고 있던 재학은 허리를 피곤 순이를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무엇이 담겼음인가.“어머니… 잘 부탁드려요…”“…네 걱정 마셔요”재학이 바빠 자주 못오니… 그러는가 싶었다 처음엔,이내 재학이 영월에 있던 숙소를 빼 서울로 갔다는 말을 건너 전해 들었고 재무는 길길이 날뛰었다. 아픈 어미를 두고, 형님을 다 제쳐두고 인사도 없이 서울로 내빼는 게 사람 새끼냐며. 앞으로 다시는 집에는 발도 못 붙힐거라는 둥, 동생 없다 생각하고 살거라는 둥. 서울로 떠나기 전 집에 들렀으나 복순이 굳이 말을 하지 않아 순이도 말을 보태지 않았다.***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어느새 순이는 환자를 돌보는 일상에 익숙해져 제법 능숙해졌다.10월도 얼마 남지 않아 한 해는 두달만을 남겨놓고 있었고 완연한 가을 날씨였다. 문산리 전답들은 가진 것을 사람들에게 전부 내어주고 겨울잠에 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람도, 땅도 산에 있는 동물들도 겨울을 준비하는 시기다.최근 복순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가끔 오후 나절에는 순이와 마루에 나란히 앉아 가을바람에 나부끼는 나뭇가지와 나뭇잎, 그리고 거기에 공연히 성깔을 부리는 먹보를 구경한다. 복순의 몸 상태가 안정이 된 만큼 계절은 흘렀다. 먹보도 제법 집을 지킬 것 처럼 커졌으니.“…”가만히 순이의 허벅지 위에 본인의 손을 올려놓는 복순. 순이가 쳐다봐도 눈 마주치는 일 없이 대문을 바라본다. 타지에 나간 아들을 기다림인가. 복순의 마음을 헤아려본다.“재무놈은 요즘 집에 잘 안 들어오지?”“…네”수확도 전부 끝나고 어머니의 거동도 문제가 덜어지자 재무는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졌다. 평상시에도 이집 저집 여기저기 참견하기 좋아해 집에 붙어있는 종자는 아니었지만 요즘엔 유독 심하다. 하루이틀 집을 비우는 건 예삿일이고 말없이 나흘이나 집을 비운적도 있다.“…니가 고생이다.”복순의 말에 순이의 눈이 커졌으나 이내 허벅지 위에 복순의 손을 맞잡았다.“…괜찮아요.”기억이 날때부터 성실한 농사꾼으로 살아온 남편이다. 겨울에도 쉬는 법 없이 일한 사람이니 지금 좀 쉬는 것이 흉이 되진 않으리라 생각하는 순이 였다. 시모는 본인이 챙기면 될 일이고.순이는 20년 가까이 시집살이 하며 복순과 대화한 것보다 최근 복순이 아프고 난 뒤에 나눈 대화가 더 많다. 순이는 본인이 이렇게 말을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몰랐으며 그 시모가 본인의 얘기를 가만히 잘 듣고 있는 것도 신기했다. 듣기 싫다고 하잔코. 복순을 위해 나눈 대화가 오히려 순이를 힘들지 않게 했으며 나아가 행복하게 했다.“순이야…”“네 어머니”복순이 무언가 말을 하려다 도로 입을 다문다.“…아니다. 이만 들어가자꾸나”“…네”순이는 시모를 모시고 방안으로 들어갔다.“쉬세요 어머니”“…그래”시모를 뉘이고 방을 나왔다. 저녁이 되자 제법 쌀쌀하다. 불과 얼마전에 복순에게 폐렴이 도져 고생한적이 있으니 앞으로 각별히 조심해야 할 터였다. 먹보의 집에도 버리는 이불들을 잘 말아서 바람이 통하지 않게끔 단도리를 해주고 나서야 순이는 오늘 할 일을 끝맺고 마루에 앉았다.한참이나 잊고 살던 옛날 어른들이 요즘은 그렇게 생각이 난다. 본인이 조금만 더 커서 신씨할매 이마에 물수건이라도 한번 더 갈아줬다면 좀 더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정남, 자현은 가는길 평안했으려나… 정남과 자현은 떠나고 난 뒤에야 순이가 소식을 들었다. 순이가 떠나오고 4년인가 5년이 지난 뒤에 자현은 병을 얻었다 했다. 자현은 병을 얻고 얼마되지도 않아 조용히 잠들 듯 떠났고 아내를 먼저 보낸 정남도 얼마 안지나 숨을 거뒀다고 들었다. 둘의 장례는 평소 그들의 성품만큼이나 소박하게 치러졌다. 가기 전 가게를 처분해 밀린 외상값을 전부 치루고 남은 돈의 절반은 그동안 본인을 많이 도와준 최씨아저씨에게, 절받은 순이에게 남겼다.최씨는 절반의 돈을 가지고 순이를 찾아왔지만 순이는 도로 돌려보냈다. 본인은 돈이 필요 하지 않고 최씨는 가장이었으니. 소식을 전해준 것만 해도 족했다. 그 자리에 있던 복순도 크는 새끼 고기나 한번 더 먹이라며 허락했고.그렇게 마차리에 있던 가족들은 전부 순이가 찾아갈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그래도 이젠 복순을 이렇게 본인이 건사하고 챙길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순이였다. 본인의 시모가 부디 오래 건강하길, 본인을 떠나는 날이 되도록이면 많이 늦게 오길, 할 수 있는 건 무엇이라도 할테니… 기도하는 순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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