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돈을 벌지 않은 이유

자존심 때문만이 아니었어

by 미니미니

엄마로 우리 엄마를 바라보는 것과, 여자 대 여자로 엄마를 바라보는 것은 해석에의 큰 차이를 불러일으킨다. 우리 엄마를 엄마로만 바라본 나는, 지독하게 가난함에도 집 앞 마트에서라도 일을 할 법 한데 일을 하지 않은 이유를 ‘자존심’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남편, 즉 나의 아빠는 명문대학교 출신이다. 우리 엄마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런 엄마에게 아빠의 학벌은 대리로 느끼는 자존감과 자존심이었다. 집 앞 시장에서 닥치는 대로 돈을 버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생각했다. 자존심이 밥을 주는 게 아니었고, 실제로 자식들이 밥을 굶었는데도 말이다. 그런 엄마를 보며 나라면 뭐를 해서라도 돈을 벌어 자식들 입에 풀칠을 했을 텐데 싶었다.


그런데 이 생각전환 역시 며칠 전에 이루어졌다. 어린 시절 집을 다녀온 날 말이다. 엄마는 자존심만으로 돈을 안 번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안 벌었을까. 그것은 바로 지독한 무력감이었다. 나가서 세상을 대면할 자신이 없었다. 남편은 들어오지 않고. 들어오더라도 아내 편이 아니고, 이 자식 셋을 데리고 세상과 독대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을 것이다. 교회를 제외한 세상은 다 적처럼 느꼈을 것이다. 엄마가 만났던 몇 안 되는 세상이, 불행하게도 별로인 사람들이 많았고 말이다.


따라서 엄마는 두려웠다. 남편이 옆에서 버티고 있는 떵떵거리는 아주머니들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자신이 더 비참해질 것이 분명했다. (분명할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엄마는 그저 집에서 웅크려 버티고 버텼다.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버티기였다.


아이를 키운 지 만 6년이 넘었다. 나는 남편이 옆에 있는데도 종종 두렵다. 이상한 엄마들을 만날까 봐 두렵지만 두렵지 않은 척한다. 이런 나도 가끔 버겁다 느껴질 때가 있는데, 엄마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숱한 밤을 눈물로 버티고, 삼키고, 다시 일어나고, 넘어졌을까. 완전히 이입할 수 없겠지만 엄마의 입장이 되어보려 한다. 그렇게 엄마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던 엄마를, 한 여인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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