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giver

가끔 넘어질지라도

by 미니미니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은 나눠주는 것을 좋아한다. 가진 것을 남에게 나눠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모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강조하지 않아도 딸의 천성이 물욕이 적고 나누는 기쁨을 안다.


6살 때 가방에 새 인형을 달고 등원했다. 집에 와서 보니 인형이 없었다. 어디 갔냐고 물어보니 “친구가 너무 갖고 싶어 해서 줬어”라고 하는 것이다. 가지고 싶어 해도 주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친구가 너무 갖고 싶어 했고 나는 정말로 필요 없어”라고 말했다. 진심이었다. 어쩔 수 없이 준 것이 아니었다. 아이의 머리에서는 (내가 아는 한) 그 인형은 이미 없었다. 이미 준 것이라 어쩔 수 없었으나 앞으로는 엄마 허락 없이 주는 것은 안 된다고 알려주었다.


어느 날은 발레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친구와 함께 수업을 들어서 티니핑 주스 2개를 가지고 아이를 데리러 갔다. 주스를 건네며 “하나는 친구에게 줘”라고 이야기했다. 건네받은 딸이 친구에게 나눠 줄 생각에 신나서 친구에게 다가가 줬더니 그 친구가 “나 이거 싫어해 안 먹어!”라며 거절했다. 나는 조금 민망했다. 그러나 딸의 반응은 “앗싸, 그럼 나 2개다!”하며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타인에게 어떤 반응을 얻기 위해 나누는 것이 아니었다. 주는 행위 자체가 좋았고, 거절에도 ok. 그녀는 진정한 giver이다.


가끔 이런 나눠주기 좋아하는 성향을 악용하는 친구들이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간혹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어른인 나는 분개한다. 너는 왜 너의 물건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냐부터 시작해서 그 친구는 왜 그리 영악해서 달라고 할까, 나중에 더 문제시되는 것이 아닌가 하며 과한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정작 딸은 신경 쓰지 않는다. 남편이 이럴 때는 답답하고 화가 나는데, 딸이 이럴 때는 본인이 신경을 안 쓰니 본인에게는 좋은 성격이겠다 싶다.


얼마 전 오랜만에 악용된(?) 사례가 발생하여 나홀로 분개하며 마음 속에 잔재가 남아있었다. 더 이상 나눠주지 않게 교육을 단단히 시켜야 하나 싶었다. 아이는 괜찮다는데. 나의 어린 시절 억울함으로 남아있는 무언가와 연결되어있지 않나 싶다. 여하튼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를 더 이상 나눠주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이를 갈며 고민하던 중이었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나서 나는 늘 가던 영어학원에 갔다.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이 초콜릿을 건네주시며 딸에게 전해주라는 것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며 편의점에서 샀다며. 몇 주 전 딸이 영어학원에 따라왔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픈 것을 기억하고 선생님에게 물과 간식을 줘야 한다며 챙겨서 드렸었다. 선생님은 그게 그날의 큰 감동이었다고, 그때의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기억해 보답하신 것이다.


충격이었다. 옹졸한 나의 마음으로 나눠주는 기쁨을 아는 딸의 성품을 가릴 뻔했다. 그래, 간혹 잔잔한 사건들의 파도가 있겠지만 그것은 지나가는 일부에 불과하다. 좋은 점이 비할 바 없이 많기 때문이다. 딸이 따뜻한 온기를 전하는 일을 막아서는 안 된다. 이왕 giver인거, 건강한 giver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 도와야겠다. 불씨를 꺼버리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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