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본 야생
홍콩 여행할 때 가장 많이 가는 침사추이나 홍콩섬의 빌딩 숲이다. 그래서 홍콩 하면 한국 사람 대부분은 야경을 떠올린다. 바다 위 찬란하게 비치는 빌딩들의 빛은 정말 아름답지만, 실제로 본 사람들은 그저 한국과 비슷하다는 평을 많이 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홍콩 하면 가장 떠오르는 것은 이 이미지와는 반대로‘자연’이다. 조금만 버스를 타고 가면 자연 그대로 가 남아있는 곳이 정말 많다. 그곳에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을 할 수 있다.
수업이 없는 날, 내가 홍콩을 여행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구글 맵을 펴놓고 평소에 저장해놓은 장소 중 하나를 고른다.
‘오늘은 어디를 가지?’
홍콩의 가을은 가슴이 아릴 정도로 아름답다. 여름이 다른 어디보다 덥고 습하다. 그뿐만 아니라 거의 하루하루가 구름 낀 날이라 왜 영국인들이 잘 적응했는지 이해가 될만했다. 하지만 이런 최악의 여름을 겪고 난 후 맞는 가을이어서 더 아름답다. 하늘은 높고 파랗고 알맞은 쨍쨍한 햇빛과 선선한 온도가 계속된다. 이런 시간은 절대 놓칠 수 없다.
20년 가까이 대구에서 산 나에게 바다를 보는 것은 정말 특별한 일이었다. 운 좋게도 홍콩은 학교에서 30분만 걸어도 바다를 볼 수 있었다. 그날 난 또 바다를 보기 위해 버스를 탔다. 우리 학교에서 바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지도 앱에 쓰인 ‘beach’ 표시를 보고 그곳으로 향했다.
버스는 해안도로를 달렸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옆을 계속해서 달렸다. 버스는 로컬들만 사는 버스라 어디에서 내리는지도 잘 몰랐다. 나는 그냥 기다려 가장 끝 역에서 내렸다. 그리고 지도 앱만 믿고 무작정 걸었다.
걷다 보니 해변이 나왔고, 또 해변을 따라 걷다 보니 모래사장이 나왔다. 한국의 해수욕을 하는 모래사장보다 이물질이 많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에도 서양 사람들이 누워서 일광욕하고 있었다. 계속 걸어가도 내가 상상하는 모래사장이 나오지는 않았다. 돌이 많아서 조개 따기에 좋거나, 배를 타야 하는 느낌의 장소였다. 지도를 다시 꺼내 반대편에 있는 해변으로 향했다.
그 해변으로 향하는 길은 더 멀었다. 길을 건너고, 공사장을 지났다. 한참 걸어서야 해변 가까이에 도착했는데, 아무리 봐도 입구가 없었다. 빼곡하게 나무가 자리 잡혀있었다. 한참을 찾다가 동물들이 다닐만한 조그만 통로를 발견해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그 해변을 발견했을 땐, 내가 잘못 찾아온 줄 알았다. 해변이라기엔, 너무 원시적이었다.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해변. 그리고 해변이라기엔 물은 너무 먼 곳에 있었다. 해변을 보기 위해 물이 있는 쪽으로 같기 시작했다. 하지만 발에 밟히는 바닥의 질감이 이상했다.
‘뭐지?’
내 발아래 기다란 돌들이 엄청 많았다. 그리고 작은 돌들이 움직였다. 웅크려 앉아 자세히 보았다. 내 발밑에는 수많은 조개와 게들이 있었다. 그렇다. 숨 쉬고 있는 모든 것이 내 발아래 놓여 있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어디를 밟기가 두려웠다. 콘크리트만 밟아서 몰랐던 사실이 있었다. 사실 그 콘크리트 안에는 지금 내 발밑처럼 수많은 생명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우리 지구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수많은 작은 생명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내가 마주한 수많은 작은 생명은 그 생명력에 나를 압도했다.
나는 그 생명력에 압도되어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주변에 작은 돌을 찾아 그 위에 앉았다. 그리고 숨을 죽였다. 내 발밑에 있던 수많은 구멍 속에서 아기 게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자신의 굴에서 멀리까지 간 용감한 아이도 있었다. 돌인 줄 알았던 동그란 것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용히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조그마한 생물체들은 꼼지락거리며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러다가 내가 조금이라도 소리를 내면 자신의 굴로 숨어들거나, 바닥에 딱 붙어 무생물인 척했다. 그 장면을 보는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렸다. 나 말고 나와 같이 지구에서 살고 있던 수많은 작은 생명체들이 그곳에서 커다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그 생명체들을 관찰하기에 정신이 팔려있을 때, 물은 점점 들어왔다. 밀물이었다. 눈 깜짝할 새에 물은 내가 앉은 돌까지 다가왔다. 정신을 차리고 물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물을 바라보았다. 바다는 자신의 친구들을 다시 숨겼다. 그 많은 생명체는 조용히 바다의 품에 안겼다.
그 이후에도 가끔 생각한다. 내가 밟고 있는 이 시멘트 밑에 얼마나 많은 생물이 살지. 겉으로 봤을 때 움직이지 않는 땅이지만, 사실 그 속에 얼마나 다양한 생물이 살아 숨 쉬는지. 그리고 그 생물들은 인간의 편의라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같이 사는 지구에서 숨어 살고 있는지. 그래서 가끔 그렇게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일부러라도 찾아가게 된다. 시멘트 바닥을 밟고 태어나, 당연히 바닥은 평평해야 하는 줄 알았던 나에게, 믿을 수 없는 깨달음이었다.
⁂
원시의 자연에는 아름다움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바다를 다녀온 후 왼쪽 다리가 간지러워서 긁었다. 자세히 보니 조그마한 빨간 점들이 있었다.
‘알레르기인가…? 아님 베드 버그…?’
말이 안 통하는 이곳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일단 인터넷에 있는 비슷한 사례들을 찾아보았다. 할 수 있는 것들부터 했다. 이불을 다 뜨거운 물에 세탁하고 주변을 청소했다.
설상가상 다음날에는 발목이 부풀어 올랐다. 갈수록 병적으로 간지러워졌고, 새벽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나는 선잠에 차가운 음료수를 꺼내 얼음찜질을 해야 했다.
‘설마 큰 병원까지 가야 하나? 병원비는 어떻게 할지? 또 내 보험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내 상처 자국을 본 룸메이트는 약을 주었다. 그러면서 학교 클리닉에 가보라고 했다. 나는 긴장을 한 채 학교 클리닉으로 갔다.
처음 내 다리 상태를 본 간호사는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격리했다. 수두가 한참 유행 중이었다. 난 바짝 긴장했다. 의사 선생님이 들어왔고, 다행히 영어가 유창하셨다.
“It’s been itchy for days. I could not even sleep at night. (이렇게 간지러워진 지 며칠 되었어요. 저녁에 잠도 못 잤어요.)”
내 말을 들은 의사 선생님은 노트에 조그만 동그라미 하나를 그렸다.
“It is because of this small bug. (그건 이렇게 작은 곤충 때문이에요.)”
그러면서 나에게 혹시 야생에서 앉아있거나 너무 오래 있는 적이 있느냐 물었다. 그때 생각났다. 그 해변이. 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셨다.
“Don’t worry. I will prescribe you ointment. Put it on every day. (걱정하지 마세요. 연고를 처방해줄게요. 매일 바르세요.)”
불안감이 가셨다. 나는 감사하다며 인사드렸다.
연고를 바르니 조금씩 다리는 나아졌다. 빈대가 아니었다는 말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빈대가 있었다면 전염성이 강해서 이불을 다 버리고 소독을 해야 했을 것이다.
경이로운 자연 뒤에는 많은 것들이 숨어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크고 작은 생물들로 수많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지만 항상 아름다움엔 잔혹함도 숨어있다. 난 조금 어려운 방법으로 그것을 배웠다.
‘☆ 야생으로 나갈 땐 긴 바지 입고 벌레 약 잘 챙기기’
새로 배운 교훈을 노트에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