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홍콩에서 살아남기

혼자 산다는 것이 이런 건가?

by 어람

“I need to get you an Octopus card (언니, 옥토퍼스 카드 먼저 있어야겠다.)”

나는 예배의 손에 이끌려 지하철역으로 갔다.

“What card? (무슨 카드?)”

옥토퍼스 카드? 문어 카드라니. 나는 예배에게 물어보았다. 알고 보니 교통카드의 명칭이었다.

“Why is it Octopus card? (왜 문어 카드야?)”

나는 예배에게 물었다.

“Cuz, we can not only use it for the public transportation such as ferry, bus, and metro, we can also use it at the convenient store or restaurant. (왜냐하면, 이 카드를 페리, 버스, 지하철 타는 데만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편의점이나 식당에서도 이용할 수 있거든.)

예배가 무엇이라 말하니 지하철 안내원이 신청서를 줬다. 생각보다 긴 종이였다. 교통카드를 만드는데 이런 절차가 필요하다니. 여권 사진과 안내 신청서를 주니 일단 임시로 사용할 수 있는 옥토퍼스 카드를 하나 주었다.

“You can get student Octopus card when you come here after a month. (한 달 지나서 여기로 다시 오면 학생 옥토퍼스 카드 받을 수 있어요)”

“Thank you! (감사합니다!)”

나는 안내원에게 인사했다. 우리는 지하철역과 이어진 쇼핑센터로 갔다.

“화장지, 세제, 빨래망, 샴푸, 린스, 이불, 베개. 언니 또 뭐가 필요해요?”

여기서 생활할 용품들을 구매하기 위해 예배와 나는 학교에서 가까운 시장을 갔다. 가장 가깝다고 해도 학교가 워낙 고립되어 있어 버스로 거의 한 시간가량을 가야 했다. 언제 그런 단어들은 다 배웠는지, 예배는 하나하나 집어가며 물었다. 처음 혼자 살기 시작한 건데, 내가 어떻게 알랴. 한국에서는 당연히 있었던 물건들이 이젠 하나하나 내 돈으로 사야 한다는 게 충격이었다.

“Be honest, it is first time for me to live by myself. (나 사실 혼자 사는 거 처음이야).”

내가 예배에 말했다.

“That is okay. It was first time for me to live alone when I was in Korea. I can help you whenever you want. (괜찮아요. 나도 한국 갔을 때 혼자 산 건 처음이었어. 언니가 원하면 언제든 내가 도와줄게요!)”

예배는 한국에서 한 학기를 보냈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어를 할 줄 알고, 한국 문화도 좋아했다. 무엇보다 한국과 홍콩의 차이를 잘 알아 뭐든 잘 설명해 주었다. 특히 홍콩이라면 영어가 자유롭게 통할 거라는 내 생각은 큰 착각이었다. 물론 큰 상점에서는 기본적 영어가 가능했지만, 시장 주변으로 가면 대부분 광둥어를 쓰거나, 북경어를 썼다. 특히 로컬 시장에서는 영어를 찾아볼 수 없었다.

예배와 나는 엄청나게 산 물건을 낑낑 들고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이제야 모든 것이 현실이 되었다. 매일 부모님이 하던 일들, 돈 관리, 빨래, 요리, 장보기, 설거지, 청소 등등이 모두 나의 일로 돌아왔다.

“언니, you have to wash your blankets at least once in two weeks. After using the laundry machine, you have to turn it off. You can hang your laundry in the balcony. (언니, 이불은 두 주에 한 번은 빨아줘야 해요. 그리고 빨래하고 나서 세탁기는 꼭 끄고. 빨래는 다 하면 발코니에 널어두어요.)”

예배는 엄마처럼 부엌에 있는 다양한 기구를 사용하는 방법부터 기숙사 규칙까지 꼼꼼히 설명해 주었다. 나는 비어있는 곳곳을 내 짐으로 채웠다. 비어있던 침대에 커버를 씌우고 금방 산 두꺼운 이불과 베개를 올려놓았다. 책상에는 내가 한국에서 가져온 책들과 노트를 꽂았다. 부엌에는 금방 산 그릇과 수저, 용기들을 넣고 정리했다. 급하게 산 달걀과 쌀도 냉장고에 넣었다. 그러다 보니 해는 어느덧 뉘엿뉘엿 지고 붉은 노을만 남겨 놓았다.

“언니, 나갈게요!”

나도 고마운 마음을 담아 예배에게 인사했다.

“조심해서가! 고마워!”

부모님과 따로 살게 된 이후 나는 혼자의 의미를 다시 깨달았다. 경제적인 부분부터 시작해서 집안일까지 우리 가족들이 조금씩 나누어서 하던 일들이, 아니 대체로 부모님께서 하던 일들이 온전히 나에게로 돌아왔다. 내가 숨을 쉬며 살아가기에 이렇게 할 일이 많았는지 처음으로 알았다.


‘뭘 먹지?’

학교 안에는 식당이 많이 없었다. 다른 교환학생들보다는 일찍 도착한 상태였고, 학기도 시작하기 전이라 학교가 조용했다. 학생들이 몇 없어 식당이 어디인지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급하게 쌀과 달걀 정도를 사다 놓았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 깨달은 건, 나에게 프라이팬도, 기름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한참 동안 내가 가진 것들을 바라보았다. 한국 맛이 그리울까 산 불닭볶음면 소스와 달걀, 쌀과 머그잔 하나, 젓가락과 숟가락. 그때 유튜브에서 한두 번 본 머그잔으로 밥 만드는 방법이 생각났다. 쌀과 물을 머그잔에 넣어 오 분간 돌린 뒤, 달걀을 넣고 다시 3분 정도 돌렸다. 최악이었다. 쌀은 설익었는데 달걀은 뜨거워 죽으려 하는 모습이 보였다. 과연 내가 생쌀을 산 게 옳은 선택이었는지, 그냥 밖에서 사 먹는 게 맞지는 않을까 모든 고민이 머리를 관통했다. 혼자 살면 기본적인 식마저 어려웠다.

밥을 먹었으니 물을 마시고 싶었다. 기억으론 예배가 학교 곳곳에 식수대가 있다고 했다. 나는 학교 곳곳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기숙사를 나서면 넓은 수영장이 있었다. 수영장 끝에는 축구장과 테니스장이 있다. 그리고 학교 건물이 시작되었다. 곳곳에는 형형색색 열대식물로 가득했다. 밤과는 달리 따뜻하고 습한 공기였다. 오래 걷지 않아 식수대를 찾았다. 들고 온 물병을 채웠다. 물 한번 마시기도 쉽지 않다.

처음에는 세끼 다 챙겨 먹는 날이 없었다. 요리가 서툴렀을뿐더러 요리기구도 많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쌀을 제대로 요리하기까진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한국이라면 그냥 밥솥을 이용했을 텐데. 처음엔 전자레인지를 쓰다가, 정말 이건 못 먹을 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냄비를 이용해 밥을 해보기 시작했다. 냄비 밥은 양에 따라 끓는 시간이 달라 계속 보고 있어야 한다는 귀찮은 점이 있었지만, 머그잔에 돌리는 생쌀 밥보다는 훨씬 더 맛있었다. 세끼를 다 챙겨 먹을 만큼 실력이 되고 맛있는 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소한 변화이지만 나 자신이 뿌듯했다.




아직 혼자 사는 게 서툰 나는 모든 것이 우당탕쿵탕이었다. 한 번은 밥을 하기 위해 냄비에 밥을 올려놓았다. 냄비를 둔 지 깜박하고 영화를 보다가 이상한 냄새가 나 부엌으로 갔다. 잠깐 사이에 밥이 타 있었다.

“쾅쾅쾅”

내 아까운 냄비를 열심히 닦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기숙사 관리 아주머니였다. 그러더니 문을 열고 들어와 광둥어로 무슨 말을 하면서 방 하나하나를 확인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엌으로 들어오셨다.

“Sorry. (죄송해요.)”

나는 탄 냄비를 들고 어색하게 웃었다. 아주머니께선 광둥어로 뭐라고 막 하시다가 한숨을 쉬시며 나가셨다. 아마 내가 냄비를 태우면서 화재 경고음이 경비실에 울렸던 모양이었다.

내 불쌍한 냄비는 그 자리로 버려야 했다.






학기가 시작하기까지 며칠이 남아 내가 아직 혼자 기숙사를 쓰고 있을 때였다. 혼자 세탁기를 돌려야 봐야겠다는 생각에 옷을 넣고 옷 세정제를 넣었다. 시간을 맞추고 테라스에 나갔다. 테라스에는 딱 기분 좋게 햇빛이 들어왔다. 바로 앞 푸른 산을 보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30분 정도 지나고 빨래가 다 되었다는 생각에 부엌으로 갔다. 부엌문을 열었을 때 멈칫했다. 부엌은 온통 거품 범벅이 되어있었다. 현실이 아니라 만화 한 장면 같았다. 세탁기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서 거품이 다 새어 나온 것이었다.

나는 없는 물건들을 가지고 한참이나 거품을 닦아내야 했다.






요리에 적응해 친구들을 초대해 요리까지 할 수 있을 실력이 되었을 때 나는 새로운 것을 깨달았다. 내가 이제까지 알던 요리는 그냥 음식을 하는 그 한 과정일 뿐이었다. 하지만 혼자 살면서 요리란 장을 보고 설거지까지 하는 매우 긴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요리하기 위해선 매주 적어도 한번 시장에 가 장을 봐야 했다. 장을 본 이후 그 무거운 물건들을 낑낑 들고 기숙사까지 와야 했다. 요리하고 나선 설거지까지 해야 했다. 그날 난 처음으로 내 인생에서 계속 요리를 도맡아 해 주셨던 어머니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매일 똑같은 음식을 먹는 것은 익숙했지만, 교환학생 오리엔테이션 전까지 혼자 보내는 매일 밤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내 방 전체는 텅텅 비어있었고, 질문할 사람이 없었다. 특히 밤은 아주 고요했다. 커다란 집에 혼자서 눈을 감는데, 내 세상에 온전히 나 혼자만 있었다.

예배가 지금을 겨울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를 밤이 되어 정확히 알 수 있었다. 텅텅 빈 내 방에 밤이 찾아들면 차가운 한기가 찾아들었다. 나는 더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렇게 한기와 끝도 없이 싸우다 보면 해가 뜨고 다시 따뜻해졌다. 그렇게 홍콩에 온 이후 개학을 하기 전까지 그렇게 미련하게 한기와 싸웠다.

내 인생 처음으로 지구 위에 난 온전히 혼자였다.


20190128_170028.jpg 낯선 이곳에서의 한 끼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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