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외국인 친구를 사귀다.

이제 드디어 교환학생 생활 시작인가?

by 어람

학교가 시작하는 날이 다가올수록 텅 비었던 학교가 조금씩 사람으로 차기 시작했다. 계속 비어있었던 내 옆 침대들도 스웨덴에서 온 조세핀과 홍콩인 친구로 채워졌다.

교환학생 오리엔테이션 날, 나는 내 인생에 가장 많은 백인과 마주했다. 원래라면 낮을 많이 가렸겠지만, 너무 오랜만에 나와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라 신났다.

“Hello, I am Sophia from Korea. (안녕, 난 한국에서 온 소피아야.)”

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나를 소개했다. 아시아계 학생은 4~5명이었고, 나머지는 다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네덜란드 등등 유럽 나라에서 왔다. 스웨덴 친구들은 삼삼오오 자기네들끼리 스웨덴어로 이야기했고, 네덜란드 친구들은 능숙한 영어로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며 친구를 만들었다. 몇몇 아이들은 라트비아나 체코 등 내 인생 처음 들어보는 나라에서 왔다. 유럽에 가본 적도 없고 잘 모르는 나로서 그들과 대화는 쉽게 끊겼다. 같은 유럽권이라 그런지 서로 익숙한 농담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웃음 포인트를 이해하지 못하겠는 농담이 이어지고, 익숙한 듯 서로의 문화에 관해 이야기했다. 끼어보려 했지만, 혼자 뻥진 상황이 되었다.

‘과연 이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을까?’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내 영어도 서툴렀지만, 생각보다 많은 유럽 학생들의 영어도 서툴렀다. 특히 익숙하지 않은 발음에 당황했다. 난 내 룸메이트인 스웨덴 친구 옆에서 다른 스웨덴 사람들에 둘러싸여 모르는 이야기를 들으며 눈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그때 나에게 말을 건 사람은 엘리사였다.

“I am Alyssa, from Australia. (난 호주에서 온 엘리사야.)”

엘리사는 노란 머리에 파란 눈, 내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백인 아이였다. 그리고 유일하게 호주에서 온 교환학생이었다. 언제 홍콩에 왔고, 왜 홍콩에 오게 되었는지, 홍콩에 오느라 얼마나 걸렸는지, 무슨 전공인지 등등 처음에는 다른 친구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I don’t know what to talk about with Europeans. (난 유럽 애들과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

엘리사가 내가 하루 내내 하던 생각을 말로 꺼냈다. 백인 친구의 입에서, 심지어 영어가 모국어인 이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너무 위안이 되었다. 사실 나만 잘 못 어울리는 것 같아 속이 상해있었다. 하지만 그런 문제를 가진 사람은 비단 나만이 아니었다.

“I didn’t know I will be the only black here. (나 혼자 흑인일 거라 생각 못 했어).”

아까부터 내 옆에 앉아있었던 친구가 말을 걸어왔다. 나도 이렇게 백인이 많을 줄은 몰랐고, 그중 흑인이 단 한 명일 줄 몰랐다. 얼마나 소외감을 느꼈을까. 노르웨이에서 온 히보였다. 히보와 함께 있던 파티마도 말을 걸었다. 히보와 계속 이야기하길래 같은 나라에서 온 줄 알았는데, 파티마는 스웨덴에서 왔다.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언어가 비슷하다고 했다.

“Her Swedish is so cute. (히보의 스웨덴어는 정말 귀여워)”

파티마가 말했다. 스웨덴 사람이 듣기에 노르웨이어가 스웨덴어의 사투리 느낌인 듯했다. 나는 파티마의 히잡에 눈길이 갔다.

“You must be Muslim. (넌 이슬람교도구나.)”

난 신기하다는 듯 눈을 빛내며 물었다. 이슬람교도 친구는 거의 처음이었다.

“Actually we both are. (사실 우리 둘 다 이슬람교도야.)

파티마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고, 그녀의 갈색 피부는 흰 이와 대조되어 아름다웠다. 파티마와 히보 둘 다 이슬람교도라 했다. 파티마는 히잡을 쓰는 이슬람교도, 히보는 쓰지 않는 이슬람교도.

“So, you girls are all here for the exchange student program? (그럼 너희는 여기에 다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온 거야?)”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 새파란 눈을 가진 여자아이가 말했다. 라트비아에서 온 알로나였다. 라트비아에 대해 아는 게 없어 말을 못 걸고 있었다. 도도하게 생겨서 지레 겁을 먹고 있기도 했다. 알로나는 부설 유치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러 왔다고 했다. 나의 첫인상과는 다르게 밝게 웃으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너무나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다 다르면서도 다 다르다는 점이 비슷했다. 그래서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기대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친구들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내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 가슴은 여전히 빠르게 뛰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유럽 친구들을 한꺼번에 한자리에서 만난 것도, 첫날부터 이렇게 많은 외국인과 이야기해 본 것도 현실 같지 않았다. 혼동과 격변의 시간이었지만 하나만은 확실했다. 드디어 내 자리에 왔다는 것.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왔다는 것.


스웨덴에서 온 조세핀은 내 룸메이트였다. 사실 처음 조세핀을 만난 것은 충격이었다.

“Hello? (안녕?)”

처음 조세핀을 만난 것은 방에서였다. 나처럼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끌고 들어오는 한 여자아이는 거의 하얗다 싶은 금발에 눈이 새파란, 영화에서만 자주 보던 백인이었다. 좀 긴장을 했다.

“Hello? My name is Josefin.(안녕! 내 이름은 조세핀이야.)”

“Hello, I am Sophia.(안녕, 난 소피아야.)”

우린 통성명을 했다. 조세핀은 조용하고 학구적이었다. 같은 교환학생 처지인 친구와 방을 같이 쓴다는 것은 좋았다. 함께 장을 보러 가거나 요리를 해 먹을 수 있었다. 하루는 스웨덴 대학교에 낼 과제를 봐달라며 나에게 보여주었다.

“This is about current ‘Me-too’movement. (이거 미투 운동에 관한 거야.)”

미투 운동은 한국에서도 한참 유명한 소재였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스웨덴에서도 미투 운동이 화제라는 것은 신기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사회적 이슈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You know, feminism is a hot potato these days in Korea. More and more Korean women also insist staying single due to inequity. It’s difficult for married women or women with kids get a job. Also, there is also a strong voice of anti feminism. (그거 알아? 페미니즘은 요즘 한국에서 화젯거리인 토픽이야. 성 불평등 때문에 비혼주의를 선택하는 한국 여성들이 늘고 있거든. 결혼한 여성이나 아이가 있는 여성들은 직업을 갖기 어려워. 그리고 반 페미니스트 목소리도 커.) ”

“Feminism is a big social issue in Sweden. However, even though a lot of people support feminism, this doesn’t end up deciding marriage. I am a feminist but I still want to get married and have children. (페미니즘은 스웨덴에서도 사회적 이슈야. 많은 사람이 페미니즘을 지지하지만, 비혼주의로 이어지지는 않아. 나도 페미니스트이지만 결혼을 하고 싶고 아이를 가지고 싶거든.)”

나는 왜인지 물어보았다. 꿈이 많은 여자인 나는 아직 결혼에 대해서도 의문이었고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더 먼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I was born in big family, I have 5 siblings. We were a happy family so I want make the same big family like I had when I grew up. (나도 큰 가족에서 자랐거든. 난 형제자매가 5명이야. 우리 가족은 엄청 행복해서 나도 이렇게 큰 가정을 만들고 싶어.)”

이런 시선은 신기했다. 한국에서 형제자매가 5명인 집은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조세핀 집안은 부모님이 다 일을 하시면서도 아이를 그렇게 낳으셨다. 나는 그 비결이 궁금했다.

“Normally in Sweden, most of the company have a kindergarten so it is relatively easy to have kids and work at the same time. (보통 스웨덴에선 직장에 유치원이 있어. 그래서 일하면서 아이 갖는 것이 편해.)”

충격적이었다. 난 지금까지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 힘들 것이라 비관했다. 난 일을 하고 성공하고자 하는 야망이 큰 사람이었기에 당연히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국가적으로 아이를 돌보면서도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가 있다는 것이 혁명적이라 느껴졌다.

‘보육 시설을 제공하는 기업이라…. 저출산의 좋은 해결책이 되지 않을까?’


이후 스웨덴에 대해 더 자세히 찾아보았다. 스웨덴은 문학적으로도 성 평등을 이루기 위해 많이 노력한 나라였다. 보통 유럽어에는 모든 단어가 남성단어, 여성단어가 나누어져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어에서 의자 ‘la chaise’로 여성 명사, 책상은 ‘le beareau’로 남성 명사이다. 스페인어로도 의자는 ‘la silla’로 여성 명사, 책상은 ‘el escritorio’로 남성 명사이다. 하지만 스웨덴은 이 명사들이 다 중성 명사들로 쓰였다.

항상 성 평등이란 멀고 이상적인 과제라 생각했었다. 내가 여자라서 내 앞에 있었던 장애물은 참 많았다. 내가 교환학생을 올 때 돈을 벌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부모님께‘여자애가 왜 외국까지 가서 공부하려고.’라는 말을 들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게 살 방법은 존재했다. 내 앞에 새로운 문이 열린 기분이었다.

“Sophia, do you know what is Kimchi? (소피아, 너 김치가 뭔지 알아?)”

“Am I Korean? (나 한국인이지?)”

나는 조세핀에게 물었다. 당연히 모를 리가 없었다.

“My sister said that Kimchi is so good for digestion so she eats it everyday. (언니가 그랬는데, 김치가 소화에 좋아서 매일 먹고 있대.)”

“Do you wanna try it? (너도 먹어볼래?)”

“Can I? (진짜?)”

나는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 들었다. 최근 한식이 너무 먹고 싶어 져서 가까운 마트에서 샀었다. 가격이 무서워 작은 것으로 샀다. 난 젓가락으로 들어 한 입 줬다.

“Umm (음..)”

조세핀은 묘한 표정으로 맛을 보았다.

“We eat it almost everyday. We even have a fridge for it. (우리는 이걸 매일 먹어. 심지어 김치를 위한 냉장고도 있어.)”

조세핀은 거짓말하지 말라는 표정을 지었다.

“I like it. I think I should get one too. (맛있다. 나도 하나 사야겠어)”

나는 조세핀에게 김치를 살 수 있는 장소를 알려주었다. 조세핀은 매일 아침 김치 한 조각을 먹고 하루를 시작했다.

“I think it really helps me with my digestion. (이거 소화에 정말 좋은 것 같아.)”

‘밥이랑 같이 먹어야 하는데…. “

금발에 파란 눈 외국인이 매일 아침 김치 한 조각씩 먹는 기이한 장면이었지만 귀여웠다. 한식이 얼마나 유명한지 한 번 더 실감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사람들도 먹는 김치라니. 왠지 모르게 더 뿌듯했다.



Capture.JPG 나와 스웨덴에서 온 룸메 조세핀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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