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를 위하여
홍콩에서 외식하기는 쉽지 않다. 다른 것보다도, 언어의 장벽 때문이다. 보통은 홍콩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땐 외식을 할 수 있다. 그 친구들이 우리에게 맞는 음식들을 주문해 주고 맛있는 음식을 추천해 준다. 특히 중국어로 쓰인 메뉴판을 못 보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도움이다. 하지만 항상 홍콩 친구들이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날, 엘리사, 알로나, 히보, 파티마, 조세핀 그리고 나까지 우리 여섯 명은 각자 쇼핑을 하러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상점으로 갔다. 각자 사야 할 것들이 달라 몇 바퀴나 돌았고, 쇼핑이 다 끝났을 땐 다들 지쳐있었다.
“I am starving. (배고파죽겠어.)”
내가 말했고 다들 동의했다. 우리는 밥 먹을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문제는 여기부터 시작했다. 우리가 있는 곳은 홍콩 안에서도 동쪽 신계였다. 홍콩은 크게 홍콩섬, 주룽반도와 영어로 New territories라 불리는 신계지역으로 나뉜다. 보통 외국 사람들이 여행을 많이 가는 곳은 홍콩섬 북쪽과 주룽반도 쪽이고, 우리가 있는 신계지역은 좀 더 로컬 한 쪽이다. 그래서 대부분 음식점에서 광둥어만 사용했다. 우리 중 중국 음식이나 홍콩 음식을 잘 아는 사람도 없었고, 영어로 된 식당도 잘 없었다.
“How about that restaurant? (저 식당은 어때?)”
일단 가까운 식당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They don’t have any English menu. (영어 메뉴가 없어.)”
알로나가 말했다. 우리는 다른 몇 개의 식당도 가보았고, 영어 메뉴는 아예 없다는 것들 깨달았다. 그래서 사진이라도 있는 식당을 가자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다른 식당을 가리켰다. 겉에 음식 사진이 붙은 스테이크 전문점이었다. 식당에 메뉴 사진이 있어서 고르면 될 듯했다.
“Oh, We are vegetarian (아…. 우리 채식주의자야)”
히보와 파티마가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발길을 돌렸다. 또 한참을 걷다가 다른 집에 다다랐다. 중국 전통 길거리 음식점이었고 사진 몇 개가 붙어있었다.
“No, I want a descent restaurant. (싫어. 깔끔한 식당에 가고 싶어.)”
엘리사에게 중국 현지식당은 무리였다. 또 한참을 걷다가 보인 것은 채식주의자 식당이었다.
“I want some meat. (난 고기를 원해.)”
엘리사는 채식주의자 식당도 싫다고 했다.
“Can we please go into any restaurant? (우리 제발 음식점 어디라도 들어가자.)”
알로나는 인내심이 다 한 듯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알로나는 평소에도 선생님처럼 요목조목 해결책을 제시했다. 채식과 육식이 다 있는 식당 중 사진도 있는 곳, 그리고 깔끔한 곳. 우리가 처음 지나왔던 식당 중 하나로 가자고 했다.
가게가 크지 않지만 깔끔했고, 메뉴판에는 그림이 있었다. 중국 면과 볶음밥을 팔았다. 각자 원하는 메뉴를 골랐다. 우리는 아주머니를 불렀다.
“唔該! (저기요!)”
우리가 배운 가장 기본 단어였다. 영어의 ‘excuse me’처럼 어디든지 쓸 수 있는 단어. 고마울 때도, 미안할 때도, 길을 비켜달라고 할 때도, 무언가 물어봐야 할 때도 쓸 수 있는 단어다.
주문을 받으러 온 아주머니는 나에게 광둥어를 하셨다. 내가 홍콩인이라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갈피를 못 잡겠다는 표정으로 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아주머니는 당황스러워 보이셨다.
일단 아주머니께선 주문서를 갖다 주셨다. 이차멘붕이었다. 주문서는 중국어로만 되어있었고, 체크하는 형식이었다. 우리끼리 다시 토론회가 열렸다. 같은 그림 찾기를 하듯, 메뉴판에 있는 글씨와 같은 글씨를 주문서에서 찾고 있었다. 하지만 난관의 연속이었다.
“Do you need a help? (도움이 필요해요?)”
드디어 익숙한 영어가 들렸다. 처음부터 우리를 주시하고 있던 커플 중 한 분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셨다. 우리는 감사하다고 하며 여쭈어보았다. 종이에 체크를 하는 방식으로 주문해야 했고, 자신이 원하는 재료를 넣거나 뺄 수 있었다. 하나하나 식자재들을 영어로 번역해 주셨다. 중간에 영어로 잘 모르겠다고 하시는 단어도 있었지만, 결국 각자 원하는 음식을 원하는 재료로 시킬 수 있었다. 그 식당은 생각보다 맛있었고, 우리는 즐겁게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엘리사와 단둘이 남았을 때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You know, vegetarian is very rare in Korea. I confronted very few of them in my life so I’ve never thought deeply about this issue. (있잖아, 한국에서는 채식주의자가 아주 적어. 나는 채식주의자를 거의 만나본 적이 없어서 저런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나에게는 생소한 채식주의자였지만, 호주에서 온 엘리사에게는 친숙한 주제였다.
“If you don’t eat meats for a long time, your digestion system changes. Your digestion system will end up being able to handle just vegetables not meats. (만약 네가 오랫동안 고기를 안 먹으면 네 소화기관이 변해. 결국, 네 소화기관은 고기가 아닌 채소만 소화할 수 있게 되는 거지.)”
이런 작은 식습관이 오래되면 소화기관에까지 영향을 준다고 했다. 독일에서 온 아나는 매일 샐러드만 먹었다. 어떻게 저렇게 풀떼기만 매일 먹으면서 살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그런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채소만 먹어 이젠 샐러드만으로도 배가 부른다고 느낀 것이다. 오히려 이제는 고기를 먹으면 배가 아프고 소화를 못 했다.
“Also, there are different kinds of vegetarians. Some do eat fish or eggs but others don’t. (또, 다양한 종류의 채식주의자가 있어. 물고기나 달걀을 먹는 사람이 있다면, 안 먹는 사람도 있어)”
채식주의자에게도 종류가 다양했다. 모든 동물성 제품을 전혀 섭취하지 않는 비건부터 고기와 생선 달걀을 먹지 않는 락토, 달걀은 먹지만 고기, 생선, 유제품을 먹지 않는 오보 채식주의자, 생선과 해산물은 먹지만 고기를 먹지 않는 페스코 채식주의자까지 있다고 했다.
“But I will never do that. (하지만 난 절대 안 할 거야.)”
엘리사가 말했다. 벌써 고기 먹는 습관이 든 나도 채식주의를 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한국에 있을 때 영화 ‘옥자’를 보고 난 후 충격을 받고 시도를 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시도할 때마다 번번이 실패했다. 한국에는 고기만 주로 하는 요리가 너무 많았다. 삼겹살, 육회, 치킨 등등. 누군가 함께 밥을 먹으려면 고기를 피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런 요리는 주로 너무 맛있다.
“I don’t think I can be one if I stay in Korea. (내가 한국에 있다면 채식주의자가 되긴 힘들 것 같아.)”
나는 솔직하게 엘리사에게 말했다. 엘리사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외국인 친구들과 현지 식당을 고르면서 나는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를 새삼 실감했다. 특히 채식주의자 친구들을 보며,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음식이 누군가에겐 어려운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결국,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순간 우리는 더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었다. 그날의 식사로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