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란
홍콩에 도착해 첫날 아침, 다른 친구들보다 일찍 들어와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뭘 할지 몰라 집을 나와 기숙사 안을 걷고 있었는데, 경비 아주머니께서 먼저 말을 걸어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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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갑작스러운 광둥어에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영어로 Korean이라 말했다. 아주머니는 호탕하게 웃으시며 영어로 물으셨다.
"You eat? (밥 먹었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주머니께서는 짧은 영어로 열심히 학생 식당을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는 메뉴도 알려주셨다. 한자로 써주셔서 정확하게 읽을 수는 없었지만, 써준 종이를 들고 가 그대로 보여주었다. 덕분에 나는 홍콩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먹는 음식 중 하나인 叉烧(바비큐 돼지고기와 밥이 함께 나옴/Char Siu/Cha Shao)를 먹을 수 있었다.
아주머니께서 언제 출근하시는지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내가 수업하러 가거나 도서관에 가는 9시쯤에는 항상 그 자리를 지키시며 인사를 해주셨다.
"你去哪里(어디 가니?)"
아주머니께선 내가 북경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을 안 이유로 항상 나에게 안부를 물으셨다. 영어보다는 북경어를 편해하셨다. 외로운 외국 생활에서 누군가 나의 생활에 관심을 둔다는 것은 항상 따뜻하게 다가왔다.
"我去图书馆 (도서관 가요.)"
"我上课 (수업 가요)“
“我去游泳(수영하러 가요)"
다정한 몇 마디 내 아침은 시작했다. 가끔 자신이 싸 온 사과나 비스킷 등 간식이 남으면 나에게 주셨고, 나도 한국에서 가져온 김이나 과자 등을 나누었다. 비록 우리의 대화는 깊지 않았지만, 그 관심이 따뜻했다. 그렇게 난 홍콩에서 ‘엄마’ 같은 존재를 만났다.
방학이 끝난 어느 날, 아주머니와 깊게 대화 나눌 기회가 생겼다. 아주머니께선 방학 동안 여행을 다녀온 장소들을 보여주셨다. 동생과 한국을 다녀오셨고, 또 이집트도 다녀오셨다.
"你有没有孩子? (아이 있어요?)"
아주머니께선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하더니, 조용히 없다고 대답하셨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있다고 알고 있다 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만큼 보수적인 홍콩에서도 웬만한 나이가 되면 결혼을 했다고, 아이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었다.
아주머니는 아이가 없는 대신, 이렇게 돈을 벌면 방학마다 외국에 나가셨다. 아주머니의 사진첩에는 한국부터 이집트, 대만과 태국 등 안 가본 곳이 없었다. 한국 여행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이야기해 주시는데 그 표정을 보았다.
‘아, 이게 인생을 즐기며 사는 것인가?’
아주머니는 매일같이 새벽에 일어나 오후 5시까지 조그마한 경비원 자리에 계속 앉아있어야 한다. 누가 보기에 편한 직장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명예직도 아니다. 종일 그 작고 좁은 자리에서 계속 앉아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항상 웃으며 나를 맞아주셨다. 영어를 잘못하지만, 외국인 학생들에게 꼭 영어로 대화를 나누시고, 나의 엉망인 북경어도 견뎌내신다. 작은 공간 안에서 책을 읽으시다가 학생들이 오시면 항상 인사를 하신다. 이 일을 하는 방식이 경비원 이상이다. 엄마처럼 내 안부를 묻고, 밥을 챙겨주시고, 머리가 길면 아주머니와 함께 머리를 같이 자르러 갔다.
그렇게 내 홍콩 엄마가 되었다.
내가 홍콩 엄마에게 배운 것은 바로 ‘행복하게 사는 법’이었다. 물론 행복하게 사는 법은 거창하지 않았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밝게 인사하고, 가진 것에 감사하고, 한 번 더 웃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팍팍한 인생을 산 나로선 그런 것들이 참 어려웠다. 하지만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저 내 옆에 있는 행복을 바라만 봐주면 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