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소외감과 소속감

한국이 싫어서

by 어람

“Yoonji celebrated her birthday with the other Koreans here. (윤지는 다른 한국 학생들이랑 생일 축하했대.)”

엘리사는 이야기를 툭 던졌다. 한국 교환학생 중 한 명인 윤지가 다른 한국 학생들과 생일 파티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한국 학생들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나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이상했다.

“I feel like I do not belong to Korean culture. (난 한국 문화에 속하지 않는 기분이야.)”

난 솔직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일 년 동안 미국에 살았던 이야기.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학급에서 왕따를 당했던 이야기. 엘리사도 자신도 동의한다고 했다. 이런 부분에서 우리는 참 잘 맞았다. 서로 각자의 모국에 완벽하게는 적응하지 못했다.

우리 이야기를 듣던 알로나는 이런 말을 했다.

“Can you believe, I had to take an exam in order to earn my Latvia passport even though I was born and lived in Latvia in my entire life? (내가 라트비아에서 태어나고, 내 평생 계속 라트비아에 살았으면서도 라트비아 여권을 받기 위해 시험을 쳤다는 게 믿어져?)”

“My parents were from Russia and came to Latvia afterwards. I was grown up in Russian society in Latvia but my passport was alien passport until I became an adult and finally took a test to earn the Latvian citizenship. (우리 부모님은 러시아에서 태어났고 나중에 라트비아로 오셨어. 나는 라트비아에 있는 러시아 사회에서 컸지. 하지만 나는 외계인 여권 내가 어른이 되고 라트비아 시민권을 얻을 때까지 가지고 있어야 했어.)”

Alien이란 단어는 영화 에어리언을 볼 때 처음으로 배운 단어였다. 외계인이자 외국인을 뜻하는 이 단어를 이렇게 접할 줄은 몰랐다. 부모님께선 소련일 때부터 라트비아에 거주하셨고, 소련이 붕괴한 이후 라트비아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도 똑같이 선거권도 없이 ‘비시민’으로 구분되어 라트비아에서 자랐다고 했다.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그 나라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 참 안타까웠다.

“Even though I was born in Latvia, I had to take a test to get the citizenship. (내가 라트비아에서 태어났지만, 시험을 쳐서 시민권을 얻었어.)”

라트비아사람들은 보통 러시아 사람들에 대해 특유의 적대심이 있었고, 알로나는 그것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항상 중립을 지켜야 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 때문에 알로나는 러시아어와 라트비아어, 영어까지 세 가지 언어를 할 수 있었다.

잠잠히 듣던 히보가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Well, I was born in Somalia, but my other younger sisters were born in Norway because my family migrated to have better life. I am neither completely Norwegian nor Somalian. It is just so weird to be in between. (난 소말리아에서 태어났어. 하지만 내 여동생들은 노르웨이에서 태어났지. 우리 가족은 더 좋은 삶을 위해서 이민했어. 나는 완벽한 노르웨이사람도, 소말리아 사람도 아니야. 그 중간에 있는 기분은 참 이상해.)”

소말리아에 가서도 사람들은 이상하게 쳐다보고, 노르웨이에서도 차별을 당할 때가 있다고 했다. 자신이 과연 소말리아 사람인지, 노르웨이사람인지 항상 고민된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은 다문화를 전공해 자신과 같이 이민자들에 대해 더 연구하고 돕고 싶다고 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파티마가 입을 열었다.

“In my case, my mom is from Kenya and my father is from Somalia. They got married but their family were against their marriage. They had no choice but run away. They arrived in Sweden. I have all three identities, and I think this makes me very unique. (우리 엄마는 케냐인이고, 우리 아빠는 소말리아인데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했어. 그래서 스웨덴으로 도망쳤지. 난 세 개의 정체성을 다 가지고 있어. 그래서 난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해.)

파티마는 환하게 웃었다. 나는 항상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

“You both are Muslim but why you wear hijab and you don’t? (너희 둘 다 이슬람교도인데 왜 한 명은 히잡을 쓰고 한 명은 안 써?)”

“For me, I just wanted to follow the tradition and wear hijab. Of course this is not a easy decision since you have to wear it all the time when you are outside. However, I’ve done it since I was young so it is like part of my skin now. It is quite fun to buy hijab. Since it is comparatively humid and hot in Hong Kong, I bought a new breathable hijab before coming here. (나 같은 경우엔, 난 전통을 따르고 싶어서 히잡을 썼어. 당연히 쉬운 선택은 아니었어. 왜냐하면, 밖에서는 항상 착용해야 하잖아.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히잡을 착용해서 이젠 내 신체 일부 같아. 그리고 히잡 쇼핑하는 건 꽤 재미있어. 홍콩 날씨가 덥고 상대적으로 습해서 여기 오기 전에 통풍 잘되는 것으로 사 왔다니까.)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여성들만 있을 땐 히잡을 벗어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살짝 자신의 머리를 보여줬다. 항상 히잡으로 가려진 모습만 보다가 검고 긴 머리를 보니 정말 아름다웠다. 파티마는 환하게 웃었다.

”By the way, I do respect Muslim women not wearing hijab. I think it is just a choice whether or not to follow the tradition. (그런데 난 히잡을 안 쓴 이슬람교도 여성들도 존중해. 히잡을 쓸지 말지 택하는 것은 그들의 선택이라 생각해.)”

파티마가 말했다. 히보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시작했다.

“My family respected my decision of not wearing hijab. Only my mom wears hijab in my family. This doesn’t mean I am not Muslim. I still don’t eat pork, I pray five time everyday, and I fast during Ramadan. (우리 가족은 내가 히잡을 안 쓰는 것을 존중해 줘. 우리 가족 중에 우리 엄마만 히잡을 써.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슬람교도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야. 나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하루에 다섯 번 기도하고 라마단 중에 단식하거든.)

히보는 기독교의 성경과 비슷한 이슬람교의 코란에서 제시하는 것들을 지킨다고 했다. 돼지고기만 안 먹는다고 말하기 어려워서 보통 친구들에겐 채식주의자라고 밝힌다고 했다.

“You pray five times a day? (하루에 다섯 번이나 기도한다고?)”

“Yes, five times. In my case, I try to properly pray all those five times, but sometimes when I am outside or when I am taking a class, I just pray in my mind. There is also an application telling me time to pray and to which direction I pray. We pray to the direction of Mecca, the most sacred place in Islam. (맞아, 다섯 번. 나 같은 경우엔 5번 모두 정식으로 기도하려 하지만 내가 밖에 있거나 수업에 있을 땐 마음속으로 기도를 드려. 그리고 언제 기도를 드려야 하는지 어느 방향으로 기도를 드려야 하는지 알려주는 앱도 있어. 우리는 메카 방향으로 절을 하는데, 메카는 이슬람교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이야.)”

보통 격식을 갖추어 기도를 드릴 때는 메카 방향으로 매트를 깔고 코란을 읽고 절을 한다고 했다.

“I am little bit worried about Ramadan this year. Hong Kong is really hot but in this time we cannot eat nor drink while the sun is up. (난 올해 라마단이 좀 걱정이야 홍콩은 너무 더운데 라마단 기간은 해가 떠 있을 때 먹지고 마시지도 못하거든)”

라마단이란 이슬람력 달력으로 9번째 달로 가장 신성하다고 생각되는 달에 금식하는 의식이라고 했다. 이때는 해뜨기 전과 해가 진 후에만 먹거나 마실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해가 있을 땐 물도 마시면 안 돼서 아마 계속 실내에만 있어야 할 것 같다며 말을 덧붙였다. 히보는 메카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이슬람인들의 평생소원은 가장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 가는 일이라고 했다.

“My mother wishes to go to Mecca but she cannot go there. You know why? Women cannot go there by themselves but there are only females in my family, me and my sisters. I am so sad I cannot make her wish comes true even though it is not something too difficult. (우리 어머니는 메카에 가는 게 소원이라고 하셨어. 하지만 엄마는 못 가. 왜 그런지 알아? 여성들은 혼자서 그곳에 갈 수 없거든, 그런데 우리 집에는 나와 내 여동생, 여자들밖에 없어. 우리 엄마의 소원을 못 들어줘서 너무 슬퍼. 이게 정말 어려운 일도 아닌데.)”

히보는 슬픈 얼굴로 휴대전화 배경의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고 했다. 여성만 방문하는 것은 불가능해 어머니가 메카에 가고 싶다는 소원을 못 이루어드려 안타깝다고 말했다.

공감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엘리사도 말을 이었다.

“I do understand you. My dad left me before even I was born. My mom raised me all alone. I was always the smart one but others bullied me harshly due to my outfit. (나도 이해해. 우리 아빠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라지셨어. 우리 엄마 혼자 날 키웠지. 나는 언제나 똑똑한 애였는데, 다른 애들은 내 옷을 보고 나를 따돌렸어.)”

엄마 손에서만 컸던 엘리사는 항상 조금 꼬질꼬질하게 학교에 다녔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학생들의 표적이 되어 놀림을 당하고 심하게 해코지도 당했다고 한다. 친구들이 자신의 피부를 불로 지지려 하거나, 물을 붓거나, 물건을 훔쳐 가는 등 상상치도 못하게 괴로운 일을 겪었다고 했다. 엘리사는 그 당시 자신이 이상해서, 자신에게 잘못이 있어서 그런 일을 당한다고 생각했다.

“After I graduated from secondary school, I was addicted to computer games for several years. Once, I was hospitalized because I did not eat anything for couple of weeks due to addiction.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간 컴퓨터 게임에 중독이 되었어. 컴퓨터 게임만 하면서 몇 주간 아무것도 먹지 않아 병원에 입원도 했었어.)”

다른 학생들에게 왕따를 당한 기억은 엘리사에게 계속 영향을 주었다고 했다. 학교를 졸업해서 온종일 집에만 있으면서 다른 사람은 만나지 않고 컴퓨터 게임을 했다고 한다. 그곳에 사는 원주민들이 백인을 대상으로 일으키는 범죄가 무서웠던 것도 하나의 이유라고 했다. 정말 사람이 망가질 수 있는 최대한으로 망가졌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는 그렇게만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It would be the weirdest way to enter the university but I just emailed them. I emailed them to ask if I can go to that school majoring psychology. (난 아마 가장 이상한 방법으로 대학에 갔을 거야. 이메일을 보냈어. 이메일을 보내서 심리학 전공으로 그 학교에 다녀도 되냐고 물었어.)”

학교에서는 오라고 대답에 왔다고 한다. 그 대학교는 자신이 원래 살던 곳과는 아주 먼 곳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 출발을 할 수 있었다. 그제야 어릴 때 당했던 따돌림은 자신의 잘못이 아닌 주변 사람들의 잘못이라 깨달았다고 한다.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고, 엘리사는 다시 어릴 때의 총명한 모습으로 돌아와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홍콩에 와 다 다른 친구들과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살아가면서 다양한 난관을 마주친다. 겉으로 봤을 때 완벽해 보이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자신만의 난관을 이겨냈고 현재에 도달했다. 그리고 가끔 자신에게 난관이라 생각했던 부분들은 이렇듯 자신의 인생에 커다란 동기가 되어 돌아온다. 다르다고 차별을 당했던 우리의 어린 시절은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이렇게 홍콩에서 만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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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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