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내 인생을 소설로 적는다면?

TED에서 본 유명한 그 교수님 수업을 듣게 되다니!

by 어람

홍콩 교환학생을 가기 한 달 전 수강 신청을 해야 했다. 홍콩의 대학교에서는 수업 목록을 보내주었다. 한국 교대에서 매일 학교에서 짜준 시간표만 받다가 처음으로 직접 수강 신청을 하게 되어 가슴이 뛰었다. 어차피 이곳에서 듣는 수업은 한국 학교와 아무 상관도 없었다. 그래서 성적이나 과목에 상관없이 순수 내 적성에 맞게 수업을 고를 수 있었다. 100개도 넘는 목록 중에 내 눈에 당연히 눈에 띄었던 것은 글쓰기 수업이었다. 수강 신청할 때도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이 수업을 선택했다.

‘Writing your life. (인생을 적다).’

첫 수업, 교수님께서 반으로 들어오셨다.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얼굴이었다.

‘외국인이 다 비슷하게 생겼지 뭐.’

다른 교수님들과는 다르게 내 귀에 익숙한 발음이 편안하게 굴러들어 왔다.

‘미국 발음.’

다른 수업에서 듣던 중국억양의 영어도, 홍콩과 영국억양의 영어도, 영국억양의 영어도 아닌 가장 익숙한 미국 억양의 영어였다.

“In this class, you have to share your story. (이 수업에서는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어야 해요.)”

내가 익숙했던 대학교 수업과는 달랐다. 교수님이 원하는 무언가를 적는 게 아닌, 내가 내 이야기를 적는 수업. 내가 겪었던 이야기를 나누는 수업이었다. 교수님은 전반적으로 수업 구성을 설명하셨다. 크게 두 이야기를 적어야 하며, 완성하는 과정 동안 서로의 이야기를 읽고 서로 조언해 줄 것이라 했다. 내 인생을 되돌아보고, 나의 이야기를 적는 수업이라. 가슴이 뛰었다.


낯익은 교수님의 정체는 생각보다 빨리 밝혀졌다. 바로 Ted 강연에서 본 사람이었다. 그때도 Write your life란 수업에 관해 이야기하셨다. 얼마나 학생 개개인들이 엄청난 이야기를 가졌는지, 그것을 어떻게 수업에 적용했는지 자신의 경험을 나누셨다. 당시 한국에서 강연을 볼 때만 해도 내가 이 수업을 들을 줄은 몰랐는데, 이 사람과 만난다는 것조차 상상도 못 했는데. 영광이었다.

‘Write 10 turning point in your life. Choose one and describe. (인생의 10가지 전환점을 적으시오. 그리고 하나를 정해 설명하시오)’

첫 번째 과제부터 쉽지 않았다. 내 인생의 열 가지 전환점이라니. 그것도 20세 이전의 전환점을 적어야 했다. 이제는 기억 속에 희미한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니. 나는 기억 구석구석을 뒤졌다. 이리저리 엉켜있던 내 인생을 풀어서 일자로 놓았다. 나의 어린 시절부터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까지 있었던 일들을 나열하고, 그중에서 중요한 일들을 하나하나 나열했다. 홍콩에서 받았던 어떤 과제보다 어려웠고, 고민되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내 인생 처음부터 나이를 기준으로 생각나는 일들을 나열해 보았다.

1. 유치원에서 도자기를 깨뜨린 것

2.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도둑질을 해본 것

3. 초등학교 때 첫사랑을 해본 것

4. 초등학교 때 야한 소설을 읽다가 아빠한테 들킨 것

5. 초등학교 때 미국에 산 것

7. 중학교 때 왕따를 당한 것

등등

이렇게 적다 보니 사소한 이야기도 끝도 없이 나왔다. 그때 난 처음으로 알았다. 한국에서 태어난 평범한 사람인 줄 알았던 내가 사실은 이렇게 특이한 일을 만이 격은 그런 고유한 존재라는 것을. 그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3번 사건, 바로 첫사랑에 대해 끄적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감추어두었던 이야기였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재수할 때까지 한 아이를 계속 좋아했다. 나는 가장 솔직하게 이야기를 적어갔다. 적다 보니 화수분처럼 계속 이야기가 나왔다. 원래 10 문장이었던 숙제는 결국 하나의 긴 이야기가 되어있었다.

또다시 수업이 돌아왔고, 내 이야기에 감명을 받으셨는지 교수님께서는 내 이야기를 친구들 앞에서 읽어 주어도 되냐고 물어보셨다.

“Sure (그럼요)”

내 인생 처음으로 내가 쓴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순간이었다. 교수님은 내 이야기를 읽어가셨고, ‘첫사랑’이란 공감 가는 주제에 학생들도 엄청나게 집중해서 들었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민망하기도 했고 설레기도 했다.

쉬는 시간 아이들은 나에게 다가와 질문을 했다. 그 이후로 첫사랑과는 어떻게 되었는지, 또 자신의 첫사랑은 어땠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다른 친구들 마음에 깊은 파장으로 울렸다.

첫 번째 글은 초등학교 때 내가 한 첫 도둑질에 관해 써 보았다. 사실 이 이야기도 오랫동안 가슴에 꽁꽁 싸놓은 것이었다. 착하게 살아온 내가 도둑질이라니.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글로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 보았다.

사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내 옆 짝은 매일 새로운 샤프를 가지고 왔다. 노란색, 빨간색, 초록색 형형색색의 샤프가 난 항상 부러웠다. 내 부러운 눈치를 알았는지, 나에게 샤프 하나를 내밀었다. 흰색 샤프였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하나를 가지니 더 가지고 싶었다. 내 목표는 노란색 샤프였다. 짝꿍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주변을 확인했다. 그러곤 노란색 샤프를 쏙 내 가방 안에 넣었다. 심장은 쿵쾅거렸고 땀이 삐질삐질 났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짝꿍은 샤프를 찾았다. 죄책감도 들었지만 신나는 마음이 더 컸다. 난 신나는 발걸음으로 집으로 달려가 사용해 보았다.

그날 저녁 아빠는 내가 쓰고 있는 샤프를 보고 이상함을 느끼셨다. 초등학교 1학년이 쓸만한 필기구가 아니었을뿐더러 평소에 보지 못했던 물건이기 때문이다. 아빠는 조용히 나를 방으로 불렀다. 아빠는 새로 본 샤프 두 자루를 중앙에 놓고, 나를 지긋이 바라보셨다. 순수했던 나는 심장이 쿵쾅대었다. 결국, 얼마 가지 못하고 아빠에게 진실을 말했다.

“하나는 선물 받았는데, 하나는 훔친 거예요….”

나는 죄책감에 엉엉 울었다. 그 모습을 본 아빠는 야단치지 않으셨다. 그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선물로 받은 한 자루는 네가 쓰지만 다른 한 자루는 제자리에 가져다 놔.”

나는 그 말에 다음날 일찍 학교로 가 샤프를 짝꿍 서랍에 두었다. 짝꿍은 어제 잃어버린 샤프를 찾았다며 좋아했다. 웃는 모습을 보니 조금 미안했다.

이후에 난 절대 남의 물건에 손대지 않았다.

우리는 각자 쓴 이야기를 동그랗게 앉아 읽었다. 그리고 서로 보완할 점들을 이야기했다. 자신의 개인적인 글은 대화를 통해 공동의 글이 되었다. 친구들은 내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첫 도둑질에 대해 떠올렸다. 자신의 부모님이나 주변 어른은 어떻게 반응했는지도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는 첫 시간에 자신이 얼마나 평범한지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이젠 모두 특별한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글을 통해 한층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과제를 하면서 내 머릿속에 작가가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작가는 나도 모르는 어떤 시점에 내 머릿속에 들어와 나의 이야기를 일인칭 시점 혹은 삼인칭 시점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내 머릿속 작가는 꽤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다른 곳에 빠져서 몰랐을 뿐.

한번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 머릿속 작가는 시도 때도 없이 출현했다. 그리고 교수님의 과제에 완전히 몰입하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의 이야기는 고유하다.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들은 가장 큰 공감을 자아낸다.’

이 이야기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가장 나의 고유한 이야기를 생각해 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수필같이 또는 소설같이. 밥을 먹는 순간, 눈을 감는 순간, 산책하는 순간 모두 나는 내 글감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두 번째 과제에서 나는 짧은 소설 하나를 써 내려갔다. 아직도 정확하게 기억나는, 내가 미국에서 겪었던 이야기였다. 나의 치부와 같은 이야기를 조심스레 들춰내었다.


미국에 있을 때였다. 각자의 나라를 소개하는 수업이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각자의 나라 모양이 어떤 것을 닮았는지 퀴즈를 내라고 말씀하셨다. 부츠 모양을 닮은 이탈리아, 닭 모양을 닮은 중국 등 다양한 퀴즈가 나왔다. 나는 내 퀴즈를 어렵게 만들기 위해 “토끼 (Bunny)”라는 퀴즈 답을 생각했다. 역시 내가 예측했듯, 아이들은 맞추기 어려워했다. 나는 신이 나 내 정답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후 한국 남자아이가 날 불러 세웠다. 화가 단단히 나 나에게 소리쳤다.

“야! 너 왜 우리나라를 토끼라 부르는 거야? 그건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우리나라를 얕잡아 보기 위해 부른 말이야!”

이 사건이 있었던 이후로 난 항상 외국에서 내가 하는 행동과 말이 한국을 대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난 이 사건이 항상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한국에 대한 역사를 잘 알지 못했고, 내가 잘못된 지식을 외국 친구들에게 줬던 것이니까. 하지만 교수님의 반응은 달랐다.

“I think that reaction is cruel. (저런 반응은 좀 잔인하네요.)”

그때의 나는 어렸고 잘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무거웠던 죄책감이 조금 덜어졌다.

이 수업을 통해 난 내 인생 처음으로 ‘나’에 대해 고민했다. 이상하에게도 인생에서 가장 날 아프게 했던 부분들을 글로 쓰다 보니 그 상처가 아물어갔다. 그리고 비슷한 이야기를 들으며 위로를 받기도 하고 공감을 했다. 색다른 이야기를 들으며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수업 마지막 날, 우리는 자신이 쓴 마지막 과제를 읽었다. 그리고 돌아가며 소감을 나누었다. 우리는 수업을 통해 처음 만나는 친구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이 너무 사랑했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경험, 처음으로 스노클링을 해본 경험, 입시에 실패한 경험 등등 친구들 다 고유한 자신만의 경험과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야기를 나누면서 반 아이들은 많이 울었다.

“What is the most personal is the most universal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으로 될 때가 있어.)”

교수님은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한 학기가 지나고 우리 반 친구들은 비록 수업 외에 대화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강한 유대감으로 이어져 있었다. 나에게도 큰 영감이 되었다. 평범했던 내가 특별한 이야기를 썼고, 그 특별한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았다.

‘아, 내 이야기도 누군가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줄 수 있겠네.’

그때의 그 영감은 내 인생에 깊은 발자국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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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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