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자산(In-house): 기술 패권을 위한 수직계열화
드론 업계에 잠시 몸담았던 경험에 비추어보면, 업계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명제가 하나 있다. 바로 '중국산 제품 없이는 드론을 만들 수 없다'는 현실이다. 여기에는 무시할 수 없는 '원가'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깊게 깔려있다.
드론의 두뇌인 비행 컨트롤러(FC), 흔들림 없는 영상을 만드는 짐벌 시스템, 강력한 추력의 모터와 변속기(ESC), 심지어 영상 처리를 위한 맞춤형 반도체(ASIC)까지, DJI는 핵심 부품 대부분을 직접 설계하고 생산하는 강력한 내부 공급망을 구축했다. 이는 기술 유출을 막고, 최적화된 성능을 구현하며,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최고의 무기이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중국 드론 생태계의 정점에 서 있는 DJI는 어떤가. 흔히 DJI를 완벽한 수직계열화의 상징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들조차 모든 것을 직접 만들지는 않는다. DJI 구매팀의 포트폴리오는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살 것인가'에 대한 가장 냉철한 전략적 판단의 결과물이며, 이는 곧 중국 드론 생태계를 활용하는 가장 현명한 방식이기도 하다.
먼저 DJI가 왜 많은 것을 직접 만드는지 이해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선, 기술 패권 전략이다.
성능의 최적화: 모터, 변속기(ESC), 프로펠러, 비행 컨트롤러(FC)까지 이어지는 '파워트레인'을 모두 자체 설계함으로써, 각 부품의 궁합을 100% 끌어올릴 수 있다. 외부 부품을 조합해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비행 안정성과 효율성을 만들어낸다.
핵심 기술 보호: 짐벌 제어 알고리즘이나 비행 제어 소프트웨어는 DJI의 영혼과도 같다. 이를 자체 설계한 하드웨어에 탑재함으로써 경쟁사들의 카피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공급망 통제: 외부 공급사의 사정에 휘둘리지 않고, 신제품 개발부터 생산까지 모든 일정을 자체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시장의 요구에 기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이러한 이유로 DJI의 공장은 단순 조립 공장이 아닌, 핵심 부품이 탄생하는 '심장부' 역할을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직접 만들 수는 없다. 특정 분야는 이미 수십 년간 기술을 쌓아온 거인들이 존재하며, 이들의 생태계를 활용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우리의 구매 결정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초정밀 반도체 및 센서:
이미지 센서: 드론의 '눈'이다. 스마트폰과 카메라 시장을 장악한 소니(SONY)의 최신 이미지 센서를 구매하는 것은 최고의 화질을 위한 당연한 선택이다. 독자적으로 이 수준의 센서를 개발하는 것은 천문학적인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다.
GPS 칩셋: 안정적인 비행의 필수 요소인 위치 정보는 스위스 Ublox와 같은 고정밀 GPS 전문 기업의 칩셋에 의존한다. 센티미터(cm) 단위의 정확도를 요구하는 RTK 드론의 성능은 바로 이 부품에서 나온다.
MEMS 센서: 드론의 균형을 잡는 자이로/가속도계는 TDK InvenSense 등 전문 업체의 부품을 활용한다.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하는 이 작은 부품은 고도의 공정 기술이 집약된 영역이다.
인쇄 회로 기판 (PCB):
설계는 내부에서, 생산은 외부에서: PCB 회로 설계 자체는 DJI의 핵심 R&D 역량이다. 하지만 설계도를 물리적인 기판으로 만드는 PCB 제작(Fabrication) 공정은 고도의 화학 처리와 설비 투자가 필요한 별개의 산업이다. 우리는 설계 파일을 대만의 Unimicron이나 한국의 삼성전기 같은 세계적인 PCB 전문 제조사에 보내 제작을 의뢰한다. 10층, 12층 이상의 고다층 기판이나 HDI(고밀도 인터커넥트) 기판은 이런 전문 업체의 역량이 필수적이다.
조립(Assembly)은 선별적으로: 제작된 빈 기판(Bare Board) 위에 수백 개의 전자 부품을 장착하는 PCB 조립(SMT) 공정은 일부는 직접, 일부는 외주를 준다. 비행 컨트롤러나 메인보드처럼 극도의 품질 관리가 필요한 핵심 기판은 DJI의 스마트 팩토리에서 직접 조립하여 수율과 품질을 관리한다. 하지만 리모컨의 버튼 기판처럼 상대적으로 단순한 것들은 외주를 통해 효율성을 높인다.
기본 소재 및 범용 부품:
원자재: 드론의 프레임을 만드는 고강도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원료나 카본 파이버 시트는 BASF, Toray와 같은 화학/소재 전문 기업으로부터 구매한다. 모터 제작에 필수적인 네오디뮴 자석과 고순도 구리선 또한 마찬가지이다.
범용 부품: 수많은 나사, 커넥터, 케이블 등은 표준 규격품을 대량 구매하여 원가를 절감한다.
SCM 담당자의 역할은 단순히 견적서의 숫자만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부품 하나가 최종 제품의 성능과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예를 들어, 0.1달러짜리 저가 커넥터 대신 0.3달러짜리 고급 커넥터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당장의 원가는 상승하지만, 비행 중 접촉 불량으로 인한 추락 사고를 막을 수 있다면 이는 현명한 투자이다. 수백만 원짜리 드론의 추락으로 발생하는 수리 비용과 브랜드 신뢰도 하락이라는 막대한 손실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구매 결정은 '청구서 상의 비용'이 아닌, '제품의 전체 수명 주기에 걸친 가치'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DJI가 추구하는 최고의 성능과 안정성은, 바로 이러한 구매 철학을 통해 최종 제품에 구현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