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볼란다.
여기, ‘혁신’이라는 이름의 화려한 연극이 한창이다. 무대의 조명은 그 어떤 브로드웨이 공연보다 밝고, 주인공, 즉 ‘대표님’의 독백은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의 예언처럼 울려 퍼진다. 관객석에 앉은 심사위원, 아니 ‘투자자’들은 그의 손짓 하나, 단어 하나에 성스러운 계시라도 받은 듯 고개를 끄덕인다.
주인공의 손에는 ‘세상에 없던 솔루션’이라 불리는 소품이 들려있다. 그럴싸한 UI를 씌운 이 소품은 사실 몇 개의 오픈소스 레고 블록을 성기게 붙여놓은 것에 불과하다. 몇 번 흔들면 부서질 것을, 무대 위에서는 감히 만져볼 수 없으니 누구도 그 내구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보안이라는 잠금장치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지만, “빠른 실행”이라는 연극의 제1원칙 아래 모든 결함은 ‘개선될 문제’로 미화된다. 시장성? 그런 골치 아픈 현실은 이 숭고한 무대에서 논할 가치가 없다. 중요한 것은 이 소품이 얼마나 ‘혁신적’으로 보이는가, 오직 그것뿐이다.
이 연극의 진짜 동력은 무대 뒤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막대한 자금, 즉 ‘투자금’이다. 누군가의 피 같은 돈, 국민의 세금이 녹아든 반공적 자금은 연극을 위한 가장 비싼 연료다. 이 연료는 제품 개발이라는 엔진을 돌리는 데 쓰이지 않는다. 대신 무대를 더 크고 화려하게 꾸미고, ‘A급 인재’라는 이름의 엑스트라들을 고용해 구색을 맞추고, 주인공의 의상을 명품으로 바꾸는 데 아낌없이 소모된다. 사람들은 이것을 ‘성장’이라 부른다. 실상은 ‘사장 놀이’라는 값비싼 취미 생활의 유지비일 뿐인데도 말이다.
주인공은 연기에는 능하지만, 연출에는 문외한이다. 어떤 배우를 어디에 배치해야 극이 완성되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이름값이 비싼 배우, 배경이 화려한 배우들을 불러 모은다. 그들은 정작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연기에는 아무런 재능이 없다. 그들의 대사는 공허하고, 동선은 엉킨다. 그 와중에 무대 장치를 만들고 조명을 옮기는 스태프들, 즉 진짜 ‘개발자’들은 지쳐 쓰러진다.
이 연극의 클라이맥스는 무엇일까? 위대한 제품의 탄생? 시장의 환호? 천만의 말씀. 이 연극의 유일한 목표는 ‘엑싯(Exit)’이라는 다음 막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더 큰 극장, 더 부유한 관객에게 이 연극의 판권을 통째로 팔아넘기는 순간, 주인공과 몇몇 핵심 배우들은 엄청난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퇴장한다. 연극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성공적으로 ‘팔렸다’는 사실만이 역사에 기록된다.
연극이 끝나고 남는 것은 무엇인가? 텅 빈 무대, 빚더미에 올라앉은 법인, 그리고 ‘혁신의 꿈’이라는 마약에 취했다가 차갑게 식어버린 수많은 사람들의 이력서뿐이다.
오늘도 어딘가에서는 새로운 연극의 막이 오르고 있다. 박수 소리는 더 커지고, 조명은 더 밝아진다. 하지만 기억하라. 가장 화려한 무대일수록, 그 뒤편의 그림자는 가장 짙고 어둡다.
물론 이 연극판에도 진짜 배우는 존재한다. 다만 그들은 화려한 독백이 아닌, ‘매출’이라는 확실한 연기력으로 스스로를 증명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