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 or Buy, 그 전략적 경계II
목차
서론: '완벽한 수직계열화'라는 환상
기준 1: 원가를 넘어 '가치 사슬'을 보라
기준 2: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점'을 장악하라
기준 3: '핵심(Core)'과 '비핵심(Context)'을 구별하는 나침반
결론: 전략적 구매는 또 다른 형태의 R&D다
기술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모든 것을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면 어떨까?'라는 이상적인 생각을 품어본다. 부품 하나하나를 우리 제품에 완벽하게 최적화하고, 기술 유출 걱정 없이, 외부 공급망의 리스크로부터 자유로운 완벽한 통제. 우리는 이것을 '수직계열화'라는 멋진 단어로 부른다.
하지만 현실에서 완벽한 수직계열화는 신기루에 가깝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정밀 센서, 소재 등 현대 기술 제품을 구성하는 모든 영역에서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설픈 내재화는 시장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기술적으로 도태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결국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기업의 진짜 경쟁력은 '무엇을 직접 만들 것인가'와 '무엇을 현명하게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전략적 판단 능력에 있다. 이 글에서는 성공적인 기술 기업들이 어떤 기준으로 이 중대한 딜레마를 해결하는지, 그 의사결정의 프레임워크를 세 가지 기준으로 나누어 분석하고자 한다.
'Make or Buy'의 가장 고전적인 기준은 단연 '원가'다. 하지만 단순히 부품원가(BOM Cost)의 숫자를 비교하는 것은 초보적인 접근이다. 진정한 고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과 그로 인해 창출되는 가치를 함께 본다.
품질비용(Cost of Quality): 0.1달러짜리 저가 커넥터가 비행 중 접촉 불량을 일으켜 수백만 원짜리 장비를 추락시킨다면, 그 손실은 단순히 0.1달러가 아니다. 수리 비용, 브랜드 신뢰도 하락, 고객 이탈이라는 막대한 '품질비용'이 발생한다. 당장의 원가 상승을 감수하더라도 핵심 부품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직접 만들거나 최고급 부품을 구매하는 것은, 바로 이 보이지 않는 비용을 예방하는 현명한 투자다.
성능 최적화의 가치: 모터, 변속기, 제어기 등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 부품들을 외부에서 각각 조달하면 부품원가는 저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내부에서 통합 설계함으로써 얻는 '에너지 효율 5% 향상'은 소비자에게 '15% 더 긴 사용 시간'이라는 압도적인 가치로 전달된다. 기업은 이 '가치 상승분'이 원가 차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판단할 때 'Make'를 선택한다.
기회비용(Opportunity Cost): 우리가 직접 만들지 '않음으로써' 얻는 것도 있다. 이미지 센서 시장의 절대 강자인 소니(SONY)의 최신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우리가 수년간 수조 원을 투자해도 따라잡기 힘든 기술력을 즉시 우리 제품에 탑재하는 것과 같다. 그 시간과 자원을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핵심 기술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바로 기회비용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현대의 기술 제품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분리될 수 없다.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은 바로 이 둘이 만나는 '결합점'을 누가, 어떻게 장악하느냐에 있다.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를 위한 '최적의 무대': 단순히 범용 프로세서를 사서 쓰는 것이 아니라, 자사의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이 요구하는 특정 연산에 최적화된 맞춤형 반도체(ASIC)를 직접 설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소프트웨어의 '생각'이 한 치의 지연이나 왜곡 없이 물리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의 '잠재력을 깨우는 열쇠': 아무리 뛰어난 하드웨어도 그것을 100% 활용하는 소프트웨어가 없다면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다. 모터의 회전수, 센서의 감도, 배터리 셀의 전압 하나하나를 제어하는 가장 낮은 수준의 펌웨어(Firmware)를 직접 개발하는 것은, 하드웨어의 물리적 한계점까지 성능을 쥐어짜 내기 위함이다.
결론적으로 기업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따로 보지 않는다. '최적화된 사용자 경험'이라는 하나의 통합된 시스템을 만드는데, 이 시스템의 성능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결합점'에 해당하는 기술과 부품은 반드시 직접 'Make' 해야만 한다.
결국 모든 'Make or Buy' 결정은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이 기술이 우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핵심(Core)'인가, 아니면 우리 제품을 완성하기 위한 '주변(Context)'인가?"
핵심 역량(Core Competence): 이는 고객이 경쟁사가 아닌 우리 제품을 선택하는 이유 그 자체다. 남들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독자적인 기술, 차별화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알고리즘, 이 모든 것을 하나의 완벽한 제품으로 묶어내는 시스템 통합(System Integration) 능력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핵심 역량은 돈을 얼마를 주더라도 외부에서 살 수 없으며, 반드시 내부에서 만들고 키워나가야 한다.
비핵심 역량(Context): 이는 제품을 구성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그 자체로 경쟁 우위를 만들지는 못하는 요소들이다. 품질이 상향 평준화된 범용 부품, 혹은 우리가 직접 개발하는 것보다 외부 전문 기업의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영역(ex: GPS 칩, 디스플레이 패널)이 여기에 해당한다. 비핵심 역량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는' 지혜를 발휘하여 최고의 파트너로부터 'Buy' 하는 것이 현명하다.
중요한 것은 이 경계가 영원하지 않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비핵심이었던 기술이 시장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핵심 역량으로 떠오를 수 있다. 따라서 이 나침반은 끊임없이 시장의 변화를 감지하며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이제 우리는 구매(Procurement) 부서의 역할이 단순히 견적서를 비교해 가장 싼 부품을 찾는 조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세계 기술 시장의 지형도를 읽고, 우리 회사의 핵심 역량과 결합했을 때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최고의 파트너를 찾아내는 '기술 탐색자'이자 '전략가'들이다.
최고의 제품은 최고의 '부품'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살 것인가'에 대한 수많은 최고의 '선택'들이 쌓여 만들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Make or Buy'는 한 번 결정하고 끝나는 과제가 아니라, 시장의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진화시켜야 하는 기업의 가장 중요한 생존 전략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