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시장의 새로운 현상, '잡 허깅'

여기 있을래? 아님 나가서 도전 한번 해볼래?

by 구매가 체질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잡 허깅(Job Hugging)'이라는 말이 유행이라고 한다. 지금 다니는 회사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아도, 밖은 더 추울 것 같으니 그냥 꼭 껴안고 버틴다는 뜻이다. 이 말을 듣는데 남 얘기 같지가 않았다. 어쩌면 이건 지금 내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정말 솔깃한 제안이 하나 들어왔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스타트업에서 양산을 앞두고 구매 시스템을 처음부터 만들어 줄 핵심 인력으로 와달라는 거였다. 심장이 뛰었다. 몇 년 전, '대퇴사'니 '잡 호핑'이니 하는 말이 유행일 때였다면 아마 뒤도 안 돌아보고 "가즈아!"를 외쳤을 거다.


하지만 2025년의 나는 달랐다. 덜컥 겁부터 났다.


요즘 뉴스만 봐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경기는 안 좋다 하고, 고금리 때문에 스타트업들은 투자금이 마르면서 사람들을 내보낸다는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로켓에 올라타라'던 시절은 지나고, 이제는 '일단 살아남아라'는 말이 더 현실적으로 들리는 시대가 됐다.


제안을 받은 스타트업의 비전은 분명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양산을 앞두고 있다'는 말은 반대로 말하면, 아직 제대로 된 시스템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내 경험을 바탕으로 처음부터 모든 걸 '빌드업'해야 하는 자리. 성공하면 대박이겠지만, 그 과정에서 겪어야 할 수많은 맨땅의 헤딩과 불확실성을 또 겪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단순히 '익숙함'이나 '편안함'이 아니었다. 까다로운 품질 이슈를 함께 해결해 온 동료들, 척하면 착하고 알아듣는 유관부서 담당자들, 그리고 내 이름 석 자를 걸고 만들어 온 공급망 네트워크까지. 이건 그냥 월급과 맞바꾸는 시간이 아니라, 지난 세월동안 내가 단단하게 쌓아 올린 나만의 '자산'이었다. 이 모든 걸 버리고 새로운 불확실성에 베팅할 용기가 내게 있었나?


결국 지금은 내 자리를 한 번 더 '허깅'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건 도전정신이 없어서도, 현실에 안주하려는 마음 때문도 아니다. 지금은 화려하게 점프하기보다, 내가 가진 것들을 단단히 껴안고 다가올 태풍을 버텨내야 할 때라는 나름의 '전략적 판단'이다. 파도가 지나가고 다시 맑은 날이 오면, 그때는 묵묵히 버텨낸 맷집으로 더 멀리 헤엄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어쩌면 지금 우리 같은 직장인들에게 필요한 건 남들이 부러워하는 화려한 이직 성공기가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버텨내는 묵묵한 생존기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불안한 미래와 싸우며 각자의 직업을 꽉 껴안고 있을 대한민국의 모든 '잡 허거(Job Hugger)'들에게, 우리 잘 버티고 있다고,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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