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어떻게 시니어의 경험을 재소한하는가
불과 2년 전,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AI는 종종 불안 섞인 농담의 소재였습니다. "이러다 우리 자리도 AI한테 뺏기는 거 아니냐"며 쓴웃음을 짓곤 했죠. 그때만 해도 AI는 신입사원들의 업무를 도와주는 신기한 도구, 그래서 오히려 우리 같은 시니어들의 입지를 좁힐지도 모르는 막연한 위협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2025년 현재, 저는 완전히 다른 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AI는 더 이상 주니어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노동 시장의 구조 자체를 재편하며, 질문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넘어 'AI로 인해 누구의 가치가 상승하고, 누구의 기회가 박탈되는가'라는 냉정한 질문 말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의 끝에서 저는 깨닫습니다. AI는 주니어 레벨의 반복 가능한 기술을 빠르게 대체하며 그들의 성장 사다리를 걷어차는 반면, 저와 같은 시니어의 대체 불가능한 경험과는 결합하여 그 가치를 극대화하는 '경험 자본의 양극화'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솔직히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AI가 자료를 요약하고 초안을 작성해주는 것을 보며 '편리하긴 하지만, 내 일을 빼앗아가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죠. 그렇게 저를 반복 업무에서 해방시켜 준 시간은 처음엔 어색하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AI는 제 사고를 확장하는 '전략적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시장 진출 전략을 구상할 때 저는 더 이상 AI에게 시장 데이터를 요약해달라고 요청하지 않습니다. 대신 저의 경험을 담아 질문합니다. "10년 전 A 시장 진출 때 우리가 겪었던 B라는 문제와 유사한 패턴을 다른 신흥 시장에서 찾아줘. 그리고 그 시장들의 규제 환경, 문화적 특성을 변수로 고려하여 C라는 우리의 핵심 역량이 성공할 확률을 시뮬레이션해줘" 와 같이 말이죠.
이러한 상호작용은 저의 '경험 자본'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단순히 시간이 남는다는 차원을 넘어, 잊고 있던 '사고하는 즐거움'을 되찾은 기분입니다. AI가 깔아준 데이터 위에서 제 경험을 바탕으로 마음껏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며, 더 정교한 전략적 판단을 내리는 과정은 시니어로서의 제 가치를 다시금 증명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AI 시대에 더욱 중요해진 '비일상적 분석 능력'이란 결국 시니어가 가진 경험 자본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수많은 프로젝트를 거치며 얻은 직관, 데이터 너머의 미묘한 시장 분위기를 읽는 감각,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풀어내는 정치력. 이것들은 결코 코딩으로 학습될 수 없는, 저의 몸에 새겨진 자산입니다.
AI는 이 보이지 않는 자산을 증폭시키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저의 경험적 직관을 AI가 데이터로 빠르게 검증해주고, 저는 그 결과를 바탕으로 더 높은 수준의 통찰을 얻습니다. 결국 저의 역할은 정답을 찾는 '해결사'에서, AI와 협력하여 최적의 질문을 던지고 가능성의 범위를 넓히는 '탐색의 설계자'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의 이면을 보며 마음이 편치만은 않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 선배들의 어깨너머로 일을 배우던 그 성장 경로가 이제는 끊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주니어들이 자료 조사, 데이터 정리, 보고서 초안 작성 같은 '궂은일'을 하며 경험을 쌓았다면, 이제 그 자리는 AI가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 후배들에게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AI가 처리한 완벽한 결과물만 받아보는 그들이 과연 문제 해결의 전체 맥락을 배울 수 있을까요? 조직의 입장에서도 이는 장기적으로 인재 파이프라인이 붕괴되는 심각한 리스크입니다.
어찌 보면 냉혹한 현실이지만, 이것이 AI가 재편하는 새로운 질서라는 것을 피부로 느낍니다. 저는 AI라는 강력한 실행 도구를 직접 지휘하며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하지만, 바로 제 옆자리에서 성장해야 할 후배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기술 발전이 모두에게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지는 않습니다. 저에게는 '경험'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최고의 무기로 만들어준 기회였지만, 동시에 새로운 세대에게는 냉혹한 도전이 될 수 있음을 지금의 현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2025년, AI와 함께 살아가는 시니어로서 제가 마주한 복잡한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