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팀이 없는 조직

'원가 절감'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 때

by 구매가 체질

특정 기업체 내에서 구매 전담 부서가 부재하는 현상은, 조직의 체계성 결여나 원가 관리에 대한 무관심으로 해석되기보다, 해당 기업의 전략적 우선순위가 비용 절감 외의 다른 영역에 있음을 나타내는 조직 구조적 귀결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는 '원가 절감'이라는 재무적 목표보다 상위의 가치 판단이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바이다.


이러한 특성을 나타내는 기업체는 통상적으로 다음의 네 가지 유형으로 범주화될 수 있다.


유형 1: 조달 원가보다 시장 가격 결정력이 수익성에 더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업

일부 기업체에 있어 원가란, 총체적 수익 구조를 결정하는 다변수 중 일부분에 국한된다. 원자재 조달 비용의 미미한 절감을 통해 확보되는 이익보다, 독보적인 브랜드 가치 구축을 통해 월등한 시장 가격을 형성함으로써 창출되는 부가가치가 기업의 재무 성과에 더욱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구매 활동은 '최저 비용 탐색'이 아닌 '핵심 가치 확보를 위한 전략적 투자'로 규정된다.


해당 사례: 타협 불가능한 품질을 핵심 가치로 삼는 명품 브랜드, 원천 기술을 보유한 제약 기업, 또는 지배적인 시장 지위를 확보한 소프트웨어 기업 등을 상정할 수 있다.


경영적 관점: "원가 절감을 위한 미시적 노력이 브랜드 자산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면, 이는 계량화가 어려운 막대한 규모의 잠재적 손실을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추가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기업의 핵심 가치 보존에 필수적인 최고 품질의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경영상의 최우선 과제로 간주된다."


구매 기능의 본질: 해당 기업의 구매 기능은 가격 협상의 범주를 넘어, 가치 중심의 조달 개념으로 확장된다. 품질의 무결성과 공급의 안정성이 최상위 목표가 되므로, 구매 전문 인력보다는 해당 가치를 가장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분야별 전문가(예: 디자이너, 수석 연구원)에게 조달 결정 권한이 위임되는 것이 합리적 귀결이다.


유형 2: 비용 효율성보다 시간적 효율성이 핵심 경쟁 우위로 작용하는 기업

특정 산업 환경에서는 시장 선점의 속도(Speed-to-Market)가 비용 효율성을 압도하는 절대적인 경쟁 우위 요소로 기능한다. 구매 프로세스에서 발생하는 단기간의 지연조차 단순한 일정의 순연을 넘어, 시장 전체의 주도권을 경쟁자에게 양도하게 되는 치명적인 기회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해당 사례: 신속한 임상 단계 진입이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바이오 벤처나, 혁신 기술의 상용화를 두고 경쟁하는 R&D 중심의 스타트업 등이 이에 해당한다.


경영적 관점: "소액의 비용 절감을 위해 시장 출시가 지연된다면, 이는 기업의 존립 근거 자체를 상실케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즉시 조달이 요구되는 자원이 있다면, 제반 비용에 구애받지 않고 가장 신속한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구매 기능의 본질: 이 경우 구매의 목적은 비용 통제가 아닌 기회비용 최소화에 있다. 연구 개발 인력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부응하여 프로젝트의 병목 현상을 해소하는 것이 구매 기능의 핵심 역할로 정의된다. 따라서 정형화된 보고 및 승인 절차는 오히려 조직의 성공을 저해하는 관리적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유형 3: 인적 자본이 핵심 비용 구조를 구성하는 기업

일부 기업의 재무구조는 유형자산이나 재료비가 아닌 인건비가 비용 항목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는 고도의 지적 노동력이 기업의 핵심 자산이자 비용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조직의 운영 효율성은 '핵심 인재가 비본질적 업무에서 벗어나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으로 극대화된다.


해당 사례: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경영 컨설팅, 법률 서비스, 또는 IT 서비스 기업 등이 대표적이다.


경영적 관점: "본 기업의 가장 가치 있는 자원은 임직원의 시간과 지적 집중력이다. 이들이 구매와 같은 비핵심 관리 업무에 개입함으로써 발생하는 생산성 저하는 막대한 비효율을 야기한다. 따라서 필요한 모든 자원은 최고 수준으로, 중단 없이 공급되어야 한다."


구매 기능의 본질: 여기서 구매는 전략적 기능이라기보다, 최상의 업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복리후생' 또는 '총무 행정'의 일부로 간주된다. 기업의 핵심 과제는 소모품의 단위당 구매가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최고 수준의 인재가 최상의 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제도적, 물리적 환경을 완비하는 데 있다.


유형 4: 조직의 규모가 작거나 의도적으로 단순한 구조를 유지하는 기업

조직의 성장 단계 초기이거나, 의도적으로 수평적이고 단순한 구조를 유지하여 관리적 비대화를 경계하는 기업 또한 구매 전담 부서를 두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 경우, 기능의 분화 및 전문화보다는 역할의 다기능성과 신속한 실행력이 더 중요한 가치로 평가된다.


해당 사례: 설립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 소규모 가족 경영 기업, 또는 각 팀에 높은 자율성을 부여하는 프로젝트 기반 조직 등이 이에 해당한다.


경영적 관점: "현 단계에서 관리 기능을 전문화하는 것은 불필요한 관료주의와 간접비용을 초래하여 조직의 기민성을 저해할 뿐이다. 조달과 같은 운영 실무는 해당 자원을 필요로 하는 개인 또는 팀이 직접 수행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구매 기능의 본질: 구매는 독립된 기능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개별 구성원의 다수 역할 중 하나로 내재된다. 이는 장기적 공급망 전략이나 비용 최적화보다는, 당면 과제 해결을 위한 즉각적이고 전술적인 필요 충족에 초점을 맞추는 비정형적 특성을 보인다.


조직 구조에 내재된 전략적 함의

결론적으로, 구매 전담 부서의 유무는 단순한 조직 설계상의 차이를 넘어, 기업의 유한한 자원과 역량이 어느 방향으로 집중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전략적 지향성의 외적 발현이라 할 수 있다.


조직의 형태는 그 자체가 해당 조직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와 경쟁의 장(場)이 어디인지를 명백히 나타내는 선언이다. 따라서 구매팀의 부재는, 원가 절감이라는 목표를 초월하는 상위의 전략적 목표에 조직 전체가 집중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유의미한 지표로 해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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