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개발자의 글-내업무의 자동화적용

문과가 개발자가 되어간다.

by 구매가 체질

얼마 전, 레딧(Reddit)에서 한 개발자가 자신의 반복적인 업무를 자동화해 주 44시간의 단순노동을 4시간으로 줄였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그는 이메일 관리, 보고서 작성, 미팅 예약 같은 일들을 자동화하고, 남는 시간에 더 전략적이고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하여 결국 승진과 연봉 인상까지 이뤄냈다고 합니다.


그 글을 읽는 순간, 제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우리 구매(Procurement) 분야는 어떨까? 특히 내가 몸담고 있는, 규제와 전문성이 중요한 바이오 산업의 구매는?"


매일같이 쏟아지는 견적서, 품질보증서(COA), 각종 규제 문서들. 공급망 이슈를 추적하고, 재고를 관리하며, 끝없이 이어지는 부서 간 요청을 처리하는 일. 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관리'를 위한 '관리'에 쏟고 있을까요?


개발자의 글에서 영감을 얻어, 저는 저의 '업무'가 아닌 '가치'를 자동화하고 고도화할 수 있는 청사진을 그려보기로 했습니다. 바이오 CDMO 구매라는 특수한 영역을 기반으로 했지만, 그 핵심 원리는 어떤 산업의 구매 담당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Step 1: 서류의 산더미에서 데이터의 금맥 캐기 (데이터 인프라 구축)

모든 자동화의 시작은 흩어진 정보를 한곳에 모으고 정제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구매 담당자의 하루는 이메일과 파일의 연속입니다.


견적서/송장 자동 분류: Outlook과 같은 이메일 툴과 Power Automate를 활용해 제목에 '견적', 'Invoice', '송장' 등이 포함된 메일의 첨부파일을 자동으로 다운로드합니다. 파일명은 [공급사명]_[문서종류]_[수신일]과 같은 규칙으로 자동 변경되어 지정된 폴더에 저장됩니다. 이제 더 이상 견적서를 찾기 위해 메일함을 뒤지는 일은 사라집니다.


품질 문서 자동 수집: 자동차 부품의 '시험성적서'나 전자제품의 '인증서'처럼, 바이오 산업에서는 'COA(Certificate of Analysis)', 'TSE/BSE(동물 유래 성분 미사용 증명서)' 같은 품질 문서가 중요합니다. 이메일로 수신된 이 문서들을 자동으로 분류하고, OCR(광학 문자 인식) 기술로 문서 내의 '제품명', 'Lot 번호', '유효기간' 같은 핵심 정보를 추출해 데이터베이스에 자동으로 기록합니다. 규제 기관의 실사가 나와도 며칠 밤샐 필요 없이 몇 시간이면 대응 자료를 준비할 수 있게 됩니다.


공급사 마스터 DB 구축: 팀원 각자의 머릿속이나 엑셀 파일에 흩어져 있던 공급사 정보를 한곳으로 모읍니다. 어떤 품목을 취급하는지, 리드타임은 어떤지, 품질 등급은 어떤지를 중앙에서 관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축된 DB는 신규 품목을 소싱할 때 '교과서' 역할을 하며, 담당자가 바뀌어도 회사의 중요한 지식 자산으로 남게 됩니다.


Step 2: 반복 업무는 기계에게, 사람은 전략적 판단을 (핵심 프로세스 자동화)

데이터가 정리되었다면, 이제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업무를 자동화할 차례입니다.

재고 조기 경보 시스템: 매일 아침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에 자동으로 접속해 주요 품목의 재고 현황을 가져옵니다. 현재고와 평균 사용량을 바탕으로 '재고 가용 일수'를 계산해 30일 미만으로 떨어지면 '위험' 신호를 보내고, 담당자에게 자동 발주를 제안하는 알림 메일을 보냅니다. "아차!" 하는 순간 발생하는 생산 중단 리스크를 87% 이상 줄일 수 있습니다.


송장-발주서 자동 대조: 공급사로부터 받은 송장(Invoice)의 내용을 OCR로 추출해, 우리가 발행한 발주서(PO) 내용과 자동으로 비교합니다. 품목, 수량, 단가가 일치하면 바로 재무팀으로 결재를 넘기고, 불일치할 경우엔 담당자에게 즉시 오류 보고서를 보냅니다. 사소한 실수로 인한 과다/과소 지급을 90% 가까이 방지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 기반 공급사 평가: 더 이상 '감'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시스템이 자동으로 ERP와 품질 데이터를 분석해 공급사별 '납기 준수율', '송장 오류율', '품질 문서 지연율'을 계산하고 종합 점수를 매깁니다. 이 데이터는 견적을 비교할 때 단순 최저가뿐만 아니라 신뢰도까지 고려한 최적의 의사결정을 돕는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Step 3: 관리자에서 전략가로 (고급 분석 및 의사결정 지원)

이제 구매 담당자는 단순 업무 처리에서 벗어나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됩니다.

신규 품목 소싱 자동화: R&D 부서에서 새로운 부품이나 원자재를 요청하면, 표준화된 양식에 스펙을 입력합니다. 시스템은 이 정보를 받아 공급사 마스터 DB에서 최적의 후보 업체 5~10곳을 자동으로 추천하고, 표준화된 RFQ(견적 요청서) 이메일을 만들어 발송 준비까지 마칩니다. 담당자는 내용을 검토하고 '발송' 버튼만 누르면 됩니다. 신규 품목 소싱에 걸리는 시간이 4시간에서 50분으로 단축됩니다.


납기 지연 자동 추적 및 에스컬레이션: 시스템이 모든 발주 건의 예상 납기일을 추적하며, 납기 2주 전, 1주 전, 3일 전에 공급사에게 확인 이메일을 자동으로 보냅니다. 만약 납기일이 지났는데도 입고가 안 되면, 자동으로 상급자와 유관 부서장에게 '긴급' 알림을 보내는 에스컬레이션이 작동합니다. 이제 "깜빡 잊고" 지연되는 납기는 없습니다.


실시간 비용 분석 대시보드: 더 이상 월말 보고서를 위해 며칠씩 데이터를 취합할 필요가 없습니다. ERP 데이터를 Power BI 같은 시각화 툴과 연동해 '카테고리별 구매 현황', '프로젝트별 예산 집행률' 등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대시보드를 구축합니다. 예산의 80%가 소진되면 자동으로 경고 알림을 보내 리스크를 사전에 관리합니다.


자동화는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역량'을 강화하는 것 아닐까요?

그 레딧 개발자가 강조했던 '윤리적 접근'처럼, 이 모든 자동화의 목표는 사람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복적이고 가치 낮은 업무를 기계에 위임하고, 사람은 더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일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투명한 공유: 자동화 계획을 팀과 리더에게 투명하게 공유합니다.

인간 감독 장치: 모든 자동화 단계에는 사람의 최종 검토와 승인 절차를 둡니다.

절약된 시간의 가치 창출: 단순 업무에서 절약된 시간으로 잠재 공급사를 발굴하고, 원가 절감 전략을 수립하며, 유관 부서와 더 긴밀하게 협업하는 데 사용합니다.


1년간 이 모든 자동화가 구현된다면, 구매팀의 업무 효율은 30~40% 향상되고, 생산 중단이나 예산 초과 같은 사고는 80% 이상 감소할 것입니다. 구매 담당자는 더 이상 '오퍼레이터'가 아닌, 공급망 리스크를 관리하고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을 내리는 'SCM 아키텍트'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자동화는 더 이상 개발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해당 기술을 배우지 못했다거나 전공이 문과라는 말은 옛말이 되었습니다. 의지만 있다면 회사에 맞게, 나의 업무에 맞게 시스템을 만들어 쓸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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