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자 하는 바를 하며 살자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자신만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나의 옷차림, 나의 말실수, 나의 선택 하나하나가 관객석을 가득 채운 타인들의 시선에 낱낱이 평가받고 있을 것이라 지레짐작한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보이지 않는 족쇄에 스스로를 옭아맨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 순간이 온다. 사실, 관객석은 텅 비어있다는 것을. 모두가 자기 자신의 무대에 오르느라 바빠, 남의 연극에는 잠시 한눈을 팔 뿐 이내 고개를 돌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세상은 나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다.’
이 냉정한 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나를 짓누르던 무거운 공기가 걷히고 비로소 거대한 자유가 찾아왔다.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억지로 입었던 무거운 갑옷을 벗어던지고, 진짜 내 모습 그대로 가볍게 걸어 나갈 수 있는 자유 말이다.
심리학에는 '조명 효과(Spotlight Effect)'라는 말이 있다. 실제보다 더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주목하고 있다고 믿는 심리적 편향이다. 셔츠에 작은 얼룩이라도 묻으면, 온종일 모든 사람이 그 얼룩만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나 역시 이 지독한 조명 효과의 노예였다. 새로운 도전을 망설였던 이유는 실패가 두려워서라기보다, 실패하는 모습을 '남들'이 볼까 봐 두려워서였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입을 닫았던 이유는 내 의견이 틀릴까 봐서가 아니라, 틀렸다고 '남들'에게 지적당할까 봐 무서워서였다.
우리는 그렇게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 스스로를 가둔다. 정작 그 '남들'은 나라는 존재를 1분도 채 생각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들 역시 자신의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느라 여념이 없다.
'세상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처음 인정했을 때, 약간의 헛헛함이 밀려왔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이토록 치열하게 살아내는 삶이, 이 거대한 세상 속에서 그저 스쳐 지나가는 풍경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주는 허무함이었다.
하지만 그 허무함은 아주 잠깐이었다. 곧이어 밀려온 것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해방감이었다.
아무도 나에게 완벽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아무도 나의 모든 선택을 일일이 검토하고 점수 매기지 않는다. 넘어져도 괜찮다. 어차피 내 무대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다.
이 깨달음은 나를 묶고 있던 모든 사슬을 끊어냈다. 타인의 평가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자, 비로소 '나'라는 사람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의 무관심은 나에게 '실패할 자유'를 선물했다. 남들의 비웃음을 두려워하며 시도조차 못 했던 일들을 하나씩 꺼내 들기 시작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두려워 감춰두었던 내 생각들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혹평을 받으면 어떤가. 어차피 그들은 내일이면 내 글을 잊을 것이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일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서툰 모습을 보여도 괜찮다. 모든 전문가는 한때 초보자였고, 나의 서툰 과정을 기억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았던 어제는 '보여주기 위한 삶'이었다면, 그 시선에서 자유로워진 오늘은 '살아내기 위한 삶'이 되었다.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에너지를 쏟는 대신, 나의 성장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은 냉정한 현실이지만, 동시에 가장 따뜻한 축복이다. 그것은 무시나 외면이 아니라, '네 삶은 온전히 너의 것이니, 마음껏 살아보라'는 우주의 응원이다.
우리는 타인의 박수를 받기 위해 무대에 오른 배우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작가이자 감독이다. 관객석이 비어있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텅 빈 관객석이야말로 우리가 어떤 연출이든, 어떤 이야기든 마음껏 펼쳐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조건이다.
오늘도 나는 나만의 무대 위에서 넘어져도 보고, 엉뚱한 춤도 춰본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장 큰 용기가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