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수요 예측은 왜 실패하는가?

매번 틀리는 수요예측, 어떡해 간극을 줄여볼까?

by 구매가 체질

수요 예측은 기업 운영의 핵심 동력이자 가장 고질적인 실패의 지점이다. 예측의 실패는 즉각적으로 악성 재고라는 유형의 비용과, 판매 기회 상실이라는 무형의 손실로 직결된다. 많은 경영진이 수요 예측을 미래 판매량을 정확히 맞히는 슈퍼컴퓨터로 취급하지만, 이는 예측의 본질을 완전히 오해하는 것이다.


성공적인 조직은 예측을 미래를 '맞히는' 도구가 아니라, 시장의 불확실성 속에서 희미한 신호를 탐지하는 전략적 레이더로 활용한다. 이 레이더는 다가오는 폭풍의 존재를 알려줄 뿐, 폭풍을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 핵심은 폭풍이 온다는 사실을 '맞혔느냐'가 아니라, 그 신호를 바탕으로 '어떻게 대비했느냐'이다. 그럼에도 대다수 기업의 레이더가 고장 나거나 무시되는 이유는, 기술이 아닌 조직의 구조적 병폐와 기업이 처한 성장 단계의 한계에서 기인한다.


1. 성숙기 기업: 작동을 멈춘 S&OP와 '시스템의 배신'


이미 방대한 데이터와 고도화된 시스템(ERP, SCM)을 갖춘 성숙기 기업의 예측 실패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통제 가능해야 할 조직 내부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S&OP(판매생산계획): 합의의 장인가, 정치의 무대인가


이론적으로 S&OP는 전사적 합의를 통해 단일 계획을 도출하는 완벽한 프로세스이다. 그러나 현실의 S&OP는 각 부서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정치의 장으로 변질된다.


영업의 '레버리지': 영업 부서의 예측은 '시장의 객관적 수요'가 아닌, 'KPI 달성을 위한 전략적 숫자'가 된다. 달성 가능한 목표를 위해 의도적으로 예측을 축소하거나, 반대로 재고를 선점하기 위해 예측을 과도하게 부풀린다. 이들에게 예측은 '탐지된 신호'가 아니라 '조작 가능한 레버'이다.


생산의 '안정성 편향': 생산 부서는 효율과 가동률을 최우선으로 한다. 변동성이 큰 수요 예측은 공정의 안정을 해치는 '위험 신호'로 간주된다. 따라서 이들은 수요의 피크(Peak)를 의도적으로 깎아내려, '시장이 원하는' 수량이 아닌 '자신들이 안정적으로 생산 가능한' 수량을 역제안한다.


재무의 '비용 통제': 재무 부서는 모든 재고를 '악성 자본(Working Capital)'으로 간주한다. 이들의 목표는 운전자본 최소화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낮은 재고 수준을 유지하라는 압박으로 작용한다.


결국 S&OP 회의실에서 탄생하는 '단일 계획'이란, 아무도 진심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정치적 타협을 통해 봉합된 기괴한 조합일 뿐이다. 이 숫자는 현업의 신뢰를 잃고, 실제 운영은 다시 각 부서의 '감'과 '경험'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AI라는 값비싼 장식품: "쓰레기를 넣으면, 더 세련된 쓰레기가 나온다."


최근 기업들은 AI를 도입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AI는 분명 인간이 파악할 수 없는 수백 개의 변수(날씨, 소셜 트렌드, 경제 지표)를 분석해 복잡한 패턴을 찾아내는 강력한 도구이다. 하지만 이 최첨단 레이더조차 현장에서 무용지물이 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GIGO 원칙의 진화: "Garbage In, Garbage Out"은 AI 시대에 더욱 치명적이다. AI는 오염된 데이터를 학습한다. ERP에 과거의 대규모 프로모션 이력, 경쟁사의 공격적 할인, 원자재 파동으로 인한 품절 사태 등이 신호로서 정확히 태깅되어 있지 않다면, AI는 이 모든 것을 통상적인 수요 변동으로 오인한다. 그 결과는 단순한 오류가 아닌, 시스템이 확증한 정교한 오류가 된다.


'인간의 감'이라는 최종 필터: AI 모델이 객관적으로 "다음 분기 수요 15% 증가"라는 신호를 보내도, "내 30년 경험상 이 시장은 10% 이상 크지 않는다"는 경영진의 '감'(내가 해봤어.) 하나로 예측은 덮어씌워진다. AI는 의사결정을 위한 참조 자료가 아닌, 기존의 편향을 정당화하거나 혹은 무시당하는 값비싼 대시보드로 전락한다.


비현실적 벤치마킹: 자사의 공급망 역량이나 시장 위치는 고려하지 않은 채, 글로벌 1위 기업의 예측 모델을 맹목적으로 추종한다. 이는 자사 레이더의 성능과 탐지 범위를 고려하지 않고 무리한 작전을 펼치는 것과 같다.


2. 벤처/초기 기업: '희망'과 '가설'의 치명적 혼동


시장에 막 진입한 초기 기업의 수요 예측은 성숙기 기업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를 겪는다. 이곳에는 '왜곡된 신호'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비교 데이터 '0'의 공포

"이제 막 만들어진 제품이 얼마나 팔릴지 누가 알겠는가?" 이 질문은 초기 기업이 겪는 예측의 핵심 난제이다. 비교할 과거 판매 실적이 전무하기에, 통계 기반의 모든 계량적 예측은 불가능하다. 여기서의 예측은 '신호 탐지'가 아니라, '가설 설정'이다.


IR용 '희망적 소설'의 내부 전파

초기 기업의 소위 수요 예측은 내부 운영을 위한 것이 아니라, '투자 유치(IR)'를 위한 대외용 '목표치'일 경우가 압도적이다.


예측 목적의 왜곡: 이 단계의 숫자는 투자자에게 매력적인 성장 스토리를 제시해야 한다. 시장 규모(TAM)에서 시작해 "우리가 1%만 점유해도"라는 논리로 계산된,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소설'이 탄생한다.


치명적 오류의 시작: 진짜 문제는, 이 '외부 투자자 설득용 소설'이 '내부 운영 계획'으로 둔갑하여 SCM, 생산, 구매 부서에 하달될 때 발생한다.


'가설'을 '계획'으로 착각한 대가

초기 기업의 가장 큰 실패는, '검증해야 할 가설'을 '실행해야 할 계획'으로 혼동하는 데서 온다.


예정된 자원의 낭비: 이 낙관적 예측을 기반으로 실제 설비 투자가 집행되고, 인력이 채용되며, 원자재가 발주된다.


현실 왜곡장: 조직 전체가 이 희망적 소설을 믿어야만 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여기서 객관적이고 보수적인 예측을 제시하는 사람은 비전을 공유하지 못하는 혹은 팀의 사기를 저해하는 인물로 낙인찍힌다.


급격한 현금 고갈(Cash Burn): 시장의 실제 반응이 이 소설에 한참 못 미칠 때, 기업은 움직이지 않는 재고와 고정비의 이중고에 갇혀 생존의 위기에 직면한다. 초기 기업에게 필요한 것은 정확한 예측 레이더가 아니라, 시장의 작은 신호에도 즉각 방향을 틀 수 있는 고성능 기동 엔진이다.


예측은 예언이 아닌, 불확실성을 수용하는 전략적 행위.


수요 예측의 성공은 도구의 정교함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조직의 성숙도에 달려있다.


성숙기 기업은 예측을 정답 찾기가 아닌 불확실성의 파도를 관리하는 행위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S&OP는 숫자를 협상하는 자리가 아니라, 탐지된 시그널을 바탕으로 "만약 수요가 20% 늘면(혹은 줄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시나리오 플랜을 합의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초기 기업은 IR용 목표와 운영 가설을 철저히 분리해야 한다. 예측은 시장을 학습하는 도구이며, 틀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예측이 아니라 검증의 속도이다.


기업의 미래는 예측의 정확도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예측이 탐지한 신호를 바탕으로, 조직이 얼마나 유연하고 기민하게 집단적 대응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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