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묻는다:"일하지 않아도 당신은 존엄한가?"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 던지는 서늘한 예언

by 구매가 체질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AI와 로봇 뉴스를 본다. 챗GPT가 소설을 쓰고, 휴머노이드가 물류 창고에서 상자를 나른다. 사람들은 댓글 창에서 두려움을 토로한다. "이제 내 밥그릇은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모두 실업자가 되는가?"


물론 생존은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나는 이 공포의 이면에 더 깊고 근원적인 불안이 도사리고 있음을 느낀다. 그것은 굶주림에 대한 공포라기보다, '일하지 않는 나'를 견딜 수 없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공포다.


약 90년 전, 1935년에 이미 이 사태를 예견한 철학자가 있었다. 버트런드 러셀. 나는 오늘 그의 저서 《게으름에 대한 찬양(In Praise of Idleness)》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리고 AI 시대를 맞이한 우리가 러셀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노동 시간을 줄이자"는 달콤한 제안 때문이 아니라, 그가 던진 인간 존재의 이유'에 대한 서늘한 질문 때문임을 깨달았다.


근면함이라는 이름의 '노예 도덕'

러셀은 단호하게 말한다. "근로가 미덕이라는 믿음은 지배계급이 만들어낸 편리한 도구일 뿐이다."


과거 귀족들은 자신들의 여가를 즐기기 위해, 대다수 민중에게 노동을 '신성한 의무'로 주입했다. 죽도록 일하는 것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 믿게 만들었다. 러셀은 이를 타파해야 할 '노예의 도덕'이라 불렀다.


2025년의 우리를 돌아보자. 우리는 여전히 바쁘다. 아니, 과거보다 더 바쁘다. AI가 업무를 도와주고 생산성은 비약적으로 올랐지만, 우리는 그만큼 더 많은 일을 하거나 더 높은 성과를 강요받는다. 러셀이 든 '핀(Pin) 공장'의 비유는 소름 돋게 현실적이다.


기술 발전으로 핀을 만드는 시간이 절반으로 줄었다면, 노동 시간을 절반으로 줄여 모두가 여가를 누리는 게 이성적이다. 하지만 인류는 묘하게도 '절반의 인원은 해고하여 굶주리게 만들고, 나머지 절반은 여전히 과로에 시달리게 만드는' 어리석은 길을 택한다.


지금 우리가 AI를 보며 느끼는 공포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기계가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계보다 더 효율적임을 증명하기 위해 인간이 스스로를 착취하는 역설. 러셀은 이 굴레를 끊으라고 주문한다.


4시간 노동, 그 숫자의 함정

러셀은 하루 4시간만 일해도 충분한 세상이 올 것이라 했다. 여기서 많은 이들이 오해한다. "그럼 나머지 시간엔 넷플릭스나 보고 누워 있으란 말인가?"


이것이 러셀이 경계한 두 번째 지점이다. 그가 말한 '게으름'은 수동적인 쾌락이나 무기력이 아니다. 그는 현대인이 여가를 즐길 줄 모르는 상태, 즉 '능동적 여가(Active Leisure)'의 상실을 안타까워했다.


일과 후 지쳐 쓰러져 숏폼 영상을 무한 스크롤하거나, 자극적인 오락거리에 뇌를 맡기는 것은 러셀이 말한 게으름이 아니다. 그에게 게으름이란 문명을 창조하고, 과학을 탐구하고, 예술을 사유하며, 타인과 깊이 교류하는 '창조적 에너지'의 원천이다.


인류 역사의 모든 위대한 발견과 예술은 '생존에 필요 없는 잉여 시간'에서 탄생했다. AI와 로봇이 노동을 가져간다면,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만인이 이 '창조적 게으름'을 누릴 기회를 얻게 된다. 문제는 우리에게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호모 파베르의 종말, 호모 루덴스의 부활

우리는 평생을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의 인간/일하는 인간)'로 교육받았다. 유능한 도구가 되는 법, 효율적인 부품이 되는 법을 배웠다. 그런데 이제 우리보다 훨씬 더 유능하고 효율적인 도구(AI)가 나타났다. 도구로서의 인간은 필패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하나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로의 회귀다.


러셀의 메시지를 지금 시대에 적용하자면 이렇다. "기계가 노동을 대신할 때, 인간의 존엄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가'가 아니라, '주어진 자유를 얼마나 우아하고 지혜롭게 향유하는가'에서 온다."


AI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진짜 스펙은 코딩 능력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죄책감 없이 게으를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 게으름 속에서 나만의 사유와 문화를 꽃피울 수 있는 노는 능력이 인간이 로봇 앞에서 증명해야 할 마지막 존엄성일 것이다.


나가며

다시 질문을 던져본다.


만약 내일 당장 당신에게 노동이 사라지고, 온전한 24시간이 주어진다면, 당신은 그 시간을 견딜 수 있는가?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은, 다가올 미래를 향한 게으른 자의 변명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 중독에 빠진 현대 인류가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하라는, 가장 적극적이고 철학적인 선언이다.


나는 오늘부터 조금 더 격렬하게 게으르기로 다짐해 본다. 그것이 다가올 AI 시대에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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