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1,000년 릴레이:그리스의 불꽃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서양 역사의 타임라인에는 거대한 구멍이 하나 있다

by 구매가 체질

찬란했던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가 지나고 나면, 갑자기 암흑기라 불리는 중세 천 년이 등장한다. 그리고는 마치 긴 잠에서 깨어난 듯 르네상스가 도래하며 뉴턴과 갈릴레이 같은 천재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 지점에서 누구나 한 번쯤 의문을 품는다. "그리스의 그 엄청난 지식들은 1,000년 동안 어디 가 있었지? 종교가 지배하던 시절이라 다 불태워진 걸까? 지식의 맥이 끊겼던 것은 아닐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식의 다리는 끊어진 적이 없다. 단지 우리가 그 다리의 '건너편'을 보지 않았을 뿐이다.


1. 지식의 거대한 피난처이자 용광로, 이슬람

유럽이 로마 제국의 멸망 후 혼란에 빠져 생존을 걱정하고 있을 때, 지식의 횃불을 이어받은 곳은 사막 건너 이슬람 제국이었다.


8세기 바그다드에는 지혜의 집(Bayt al-Hikmah)이라는 거대한 번역 센터가 세워졌다. 당시 칼리프(지도자)들은 학자들에게 책의 무게만큼 금을 주며 번역을 장려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유클리드의 기하학,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이 아랍어로 번역되어 도서관을 채웠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단순한 '보관자'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그리스의 기하학에 인도의 숫자 시스템(0의 개념)을 결합해 대수학(Algebra)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냈다. 우리가 아는 '알고리즘(Algorithm)'이라는 단어 역시 당시의 페르시아 수학자 '알 콰리즈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유럽이 잠들어 있던 그 시간, 중동은 인류 지성사의 가장 뜨거운 R&D 센터였다.


2. 중세 유럽, 암흑 속의 등불

그렇다면 유럽은 정말 암흑천지였을까? 흔히 종교(가톨릭)가 과학을 억압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지동설과 같은 급진적 아이디어는 탄압받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중세의 수도원은 지식을 보존하는 유일한 '서버(Server)' 역할을 했다.


인쇄술이 없던 시절, 수도사들은 차가운 돌바닥 위에서 고대 서적을 필사하며 라틴어와 기초 학문을 보존했다. 또한, 신앙을 이성적으로 설명하려 했던 '스콜라 철학'은 훗날 과학적 방법론의 기초가 되는 치열한 논리적 사고를 훈련시켰다. 유럽 최초의 대학(University)들이 탄생한 곳도 바로 교회의 울타리 안이었다.


3. 지식의 역수입, 그리고 르네상스

12세기에 접어들며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진다. 십자군 전쟁과 무역을 통해 이슬람의 선진 문물을 접한 유럽인들이 충격에 빠진 것이다.


스페인의 톨레도 같은 접경 도시에서는 대규모의 재번역 운동이 일어났다. 아랍어로 보존되고 발전된 그리스의 지식들이 다시 라틴어로 번역되어 유럽으로 역수입되기 시작했다. 유럽의 학자들은 아랍어 책을 통해 잊고 있었던 자신들의 조상, 아리스토텔레스를 다시 만났다. 이것이 르네상스와 근대 과학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4. 마치며 : 문명은 이어달리기다

과학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어느 한 문명의 독주란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스가 불씨를 지폈고, 유럽이 휘청거릴 때 이슬람이 그 불꽃을 받아 기름을 부어 키웠으며, 다시 그 횃불을 유럽이 이어받아 근대 과학이라는 거대한 불을 밝혔다.


우리가 누리는 지금의 기술과 문명은, 1,0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인종과 종교를 넘어 서로의 지식을 필사적으로 옮겨 나른 '인류의 거대한 이어달리기' 결과물이다.


단절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서양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보았던 우리의 시선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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