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의 코를 만지다 보니, 어느새 코끼리 전체를 보고 있는 나
"SCM팀은 무슨 일을 하는 부서인가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어떤 날은 "원자재 시장을 분석하고 공급사를 발굴하는 일"이라고 답하고, 또 어떤 날은 "전체 공급망의 비용과 리스크를 관리하는 일"이라고 답한다. 둘 다 맞는 말이지만, 이 질문에 대한 나의 가장 솔직한 대답은 이것일 것이다.
“저는 구매 베이스의 SCM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나의 첫 커리어가 구매였다는 사실을 넘어선다. 이것은 내가 공급망 전체를 바라보는 관점이자,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의 근간이다. 모든 공급망은 결국 ‘구매’라는 문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기에, 나는 모든 것의 시작점인 그 문 앞에서부터 공급망을 바라본다.
내게 SCM의 첫 장은 보험회사 총무부동산팀의 간접구매였다. 회사의 운영을 위한 각종 서비스와 비품을 계약하며 나는 ‘비용’과 ‘계약’의 중요성을 배웠다. 그 후 제조사에서 제품의 심장이 될 부품을 사는 직접구매를 담당하며, 나의 결정이 생산 라인의 운명을 좌우하는 ‘품질’과 ‘납기’의 무게를 깨달았다.
이 두 가지 경험을 통해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기업의 모든 활동은 무언가를 ‘사는 행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눈에 보이는 원자재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서비스, 인력, 기술까지도 구매의 대상이다.
구매는 단순히 돈을 주고 물건을 받아오는 행위가 아니다. 외부 세계의 기술, 혁신, 그리고 온갖 리스크를 회사 안으로 들여오는 첫 번째 관문이다. 이 관문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가 공급망 전체의 건강을 결정한다.
나의 시야가 폭발적으로 확장된 것은 외자구매(Foreign Procurement)를 담당하면서부터였다. 해외 공급사로부터 부품 하나를 완벽하게 조달하기 위해, 나는 필연적으로 구매의 경계를 넘어서야만 했다.
‘구매’가 ‘물류’가 되다: 미국 공급사와 FOB 조건으로 계약한 순간, 그 물건을 한국까지 운송할 배와 항공편을 수배하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 되었다. 나는 구매 담당자였지만, 포워더와 소통하며 최적의 운송 루트와 비용을 협상해야 했다. 구매가 곧 물류였다.
‘물류’가 ‘수출입’이 되다: 바다를 건너온 물건은 부산항 세관이라는 거대한 벽을 넘어야 했다. 품목별 관세율(HS Code)을 확인하고, 원산지 증명서를 챙기며, 통관 절차를 관리하는 일. 어느새 나는 수출입(Import/Export)의 언어를 배우고 있었다.
‘수출입’이 ‘재고 및 생산계획’이 되다: 한 달이 넘는 리드타임을 가진 부품의 재고가 단 하루라도 비면 공장이 멈춘다. 나는 재고관리팀, 생산계획팀과 머리를 맞대고 안전재고(Safety Stock) 수준을 다시 계산하고, 입고 일정에 맞춰 생산 계획을 미세하게 조율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하나로 이어졌다. 구매 담당자로서 ‘내 일’을 완벽하게 해내려 했을 뿐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SCM 전체를 알아야만 했다. 이것이 내가 구매의 눈으로 SCM 전체를 바라보게 된 이유다.
그렇다면 구매의 눈으로 SCM을 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첫째, 문제의 근원을 본다. 생산 차질, 품질 이슈, 재고 과다 등 모든 문제의 씨앗은 최초의 ‘공급사 선정’과 ‘계약 조건’에 심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문제가 터진 후의 수습이 아니라, 문제가 시작되는 그 지점에서 리스크를 먼저 점검한다.
둘째, 모든 것을 전체 비용 관점으로 본다. 눈앞의 단가 1원이 전부가 아님을 안다. 운송비, 재고유지비, 품질 실패비용, 관세까지. 그 모든 것을 포함한 총비용 관점에서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리려 노력한다.
셋째, 외부와의 ‘파트너십’을 중시한다. 공급망은 우리 회사 안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내부 부서와의 협력만큼이나 외부 공급사와의 신뢰와 협력이 전체 공급망의 경쟁력을 좌우한다고 믿는다.
나는 SCM이라는 큰 그림을 보지만, 그 그림을 ‘구매’라는 붓으로 그리기 시작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붓은 세상의 모든 것과 연결된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강력한 도구였다. 나의 시작점이 구매였다는 사실은, 이제 나의 가장 큰 자부심이자 무기다.
여러분의 SCM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