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팀 최종 KPI는 결국 0원으로 사라는 거야?

유연한 사고를 갖게하는 목표를 고민하자.

by 구매가 체질

어느날 나의 자조 섞인 이 질문은, 오늘날 많은 구매팀이 겪는 딜레마 입니다. 실무는 수많은 변수로 가득한데, 평가는 단 하나의 경직된 숫자로 이뤄질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구매팀은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전략가'가 아닌, 그저 ‘가장 싼값’을 받아내는 역할에 갇히고 맙니다.


이는 ‘0원짜리 구매’라는 불가능한 목표를 향한 압박이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직된 목표가 정말 기업에 이로울까요? 오히려 전략적인 사고를 마비시키고, 더 큰 손실을 부르는 함정이 될 때가 많습니다.


‘숫자’에 갇힌 KPI, 현장의 유연성을 마비시키다

'전년 대비 원가 5% 절감'이라는 절대적인 목표가 주어졌다고 가정해 봅시다. 담당자는 이 숫자를 맞추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아마도 납기일을 자주 어기더라도 가격이 1% 더 싼 공급사를 선택할지 모릅니다. 그 결과 생산 라인에 차질이 생겨 발생하는 손실은 KPI에 잡히지 않습니다. 혹은 당장 필요 없는 물량을 대량으로 구매해 단가를 낮추고, 창고에 쌓인 재고 비용과 관리의 어려움은 외면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숫자’ 자체에만 매몰된 KPI는 담당자의 손발을 묶습니다. 더 나은 대안이 있어도 “KPI를 맞추려면 어쩔 수 없다”는 변명 아래 최악의 의사결정을 내리게 만듭니다. 현장의 복잡한 상황을 고려하고 유연하게 사고할 여지를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버퍼’를 품은 KPI가 똑똑한 의사결정을 이끈다

해법은 KPI에 ‘버퍼(Buffer)’, 즉 전략적 완충 지대를 두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이는 평가를 느슨하게 하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더 똑똑하고 전략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재량과 유연성을 부여하는 장치입니다.

경직된 목표: ‘원가 5% 절감’

버퍼를 품은 목표: ‘3~6% 범위 내 원가 절감 달성. 단, 안정적 공급망 확보 등 전략적 가치를 위해 3% 미만으로 결정 시, 그 근거를 제시하여 평가에 반영’


버퍼가 있는 목표는 담당자에게 생각할 힘을 줍니다. ‘무조건 5%’가 아니라 ‘우리 상황에 최적의 가치는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가격을 조금 더 주더라도 품질과 납기가 월등한 공급사를 선택하고, 그 전략적 판단을 당당하게 설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기업의 총체적인 이익을 고려하는 현명한 결정으로 이어집니다.


상황에 따라 살아 움직이는 KPI 설계하기

좋은 KPI는 모든 업무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고정된 자가 아닙니다. 업무의 성격과 상황의 맥락에 따라 살아 움직여야 합니다.

신규 공급사를 발굴하는 업무라면, ‘5개 업체 발굴’ 같은 양적 목표보다는 ‘핵심 부품의 단일 공급사 리스크를 해소할 수 있는 대체 공급사 2곳 최종 자격 평가 통과’와 같이 질적이고 전략적인 목표가 더 유효합니다.


긴급하게 부품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비용 절감률은 후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생산 라인 중단을 막기 위해 48시간 내 성공적인 조달 완료’가 핵심 KPI가 되고, 비용은 합리적인 수준에서 집행되었는지를 부수적으로 검토하면 됩니다.


핵심 협력사와의 관계를 관리하는 업무라면, ‘단가 인하율’이 아닌 ‘협력사와 공동으로 원가 절감 아이디어 1건 발굴 및 실행’과 같은 협업 기반의 목표가 더 중요합니다. 이는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숨겨진 가치를 찾아내는 유연한 접근법입니다.


이처럼 KPI는 구성원을 통제하고 옥죄는 도구가 아니라, 그들의 전문성을 신뢰하고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돕는 가이드가 되어야 합니다.


결국 구매팀의 역량은 ‘얼마나 싸게 샀는가’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얼마나 최적의 가치를 찾아냈는가’로 평가받아야 합니다. 경직된 숫자의 굴레에서 벗어나 유연성과 버퍼를 품은 KPI를 도입할 때, 비로소 구매팀은 ‘0원짜리 구매’라는 불가능한 목표에서 해방되어 기업의 성장을 이끄는 진정한 전략 파트너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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