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P 어디까지 써봤니?
외국계 회사가 인수합병을 하여 SAP라는 이름의 시스템을 꼭 사용하여야 했다. 즉, SAP MM(자재 관리) 모듈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기대 반, 설렘 반으로 화면을 열었지만, 곧 한숨이 나왔다.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투박하고 직관적이지 않았다. 메뉴는 끝없이 이어졌고, 모든 레이블과 버튼은 영어로 가득했다. "Purchase Order? Requisition? Transaction Code?"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 이 낯선 단어들은 마치 외계어처럼 느껴졌다. "이걸 어떻게 다루라는 거지?"라는 생각에 머리가 멍해졌다. 심지어 간단한 구매 요청 하나 입력하려 해도, 화면을 헤매야 했다. 또한, IT Helpdesk는 인도에 외주를 했는지 몇번이나 문의를 하며 초기 셋팅을 하고, 셋팅후에도 몇번을 문의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어색한 첫 만남은 곧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었다. SAP는 단순한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기업의 모든 프로세스를 하나로 묶어주는 거대한 숲 같은 시스템이었다. SAP의 숲 안에는 모듈이라는 나무들이 있다. 각 모듈은 특정 업무를 책임진다. FI(재무 회계)는 돈의 흐름을 기록하고, MM(자재 관리)는 구매와 재고를 관리한다. SD(판매 및 유통)는 고객 주문을 처리하고, PP(생산 계획)은 공장의 생산 라인을 최적화한다. 이 외에도 HCM(인적 자원 관리), QM(품질 관리), PM(설비 관리) 등 수십 개의 모듈이 서로 얽혀 기업의 심장을 뛸 수 있게 한다.
SAP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 복잡함에 살짝 겁을 먹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SAP는 단순히 데이터를 입력하는 도구가 아니라, 비즈니스의 흐름을 설계하는 설계도라는 것을. 특히 구매 담당자에게 SAP는 단순한 작업 도구가 아니라, 전략적 의사결정을 돕는 파트너다.
구매 담당자에게 SAP의 핵심 모듈은 단연 SAP MM(자재 관리)다. MM은 구매 프로세스의 전체를 책임진다.
구매 요청(Purchase Requisition): 부서에서 필요한 물건을 요청하면, MM에서 이를 승인하고 구매 주문(Purchase Order)으로 전환한다.
공급업체 관리: 공급업체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견적(RFQ)을 비교해 최적의 파트너를 선택한다.
송장 검증: 물건이 도착하고 송장이 들어오면, 주문-입고-송장 간의 3-way 매칭을 통해 오류를 잡는다.
재고 관리: 창고에 물건이 얼마나 있는지, 언제 재주문해야 하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MM을 처음 사용했을 때, 가장 감동했던 건 통합성이었다. 구매 주문이 생성되면 재무(FI) 모듈로 데이터가 즉시 반영되고, 재고 상황은 생산(PP) 모듈과 연결된다. 이 모든 게 실시간으로! 덕분에 내가 작성한 구매 주문이 회사의 재무 상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하지만 MM은 온프레미스(On-Premise) 환경에 최적화된 전통적 모듈이다. 클라우드 시대에는 조금 더 유연하고 현대적인 솔루션이 필요했다. 그때 만난 것이 바로 SAP Ariba였다.
SAP Ariba는 구매의 미래를 보여주는 클라우드 기반 플랫폼이다. Ariba는 SAP가 2012년에 인수한 솔루션으로, 구매자와 공급업체를 연결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제공한다. 아마존에서 물건을 사듯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로 구매 프로세스를 간소화하고, 전 세계 530만 이상의 공급업체와 연결해준다. Ariba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마치 디지털 마켓플레이스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Ariba의 핵심은 Source-to-Pay 프로세스다. 소싱부터 결제까지, 구매의 모든 단계를 디지털로 통합한다.
소싱(Sourcing): 공급업체를 발굴하고, 입찰(RFQ, RFP)을 통해 최적의 조건을 찾는다. AI가 비용 절감 기회를 제안해주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구매(Buying): Guided Buying 기능은 직원들이 정책에 맞는 품목을 쉽게 구매하도록 돕는다. 카탈로그 검색은 마치 온라인 쇼핑몰 같아서, 복잡한 구매 요청도 간단해진다.
송장 및 결제(Invoicing & Payment): 송장 자동화로 수작업 오류를 줄이고, 빠른 결제를 지원한다.
공급업체 관리(Supplier Management): 공급업체의 성과와 리스크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
Ariba의 진가는 SAP Business Network에서 빛난다. 이 네트워크는 구매자와 공급업체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예를 들어, 공급업체가 송장을 올리면 즉시 확인하고, 문제 있으면 바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 연간 3.75조 달러 이상의 거래가 이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SAP MM과 Ariba는 구매 담당자에게 필수적이지만,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진다. MM은 전통적 ERP 환경에서 재고와 내부 프로세스 관리에 강력하다. 반면, Ariba는 클라우드 기반으로, 글로벌 공급업체 네트워크와 사용자 친화적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 최근에는 SAP S/4HANA Procurement가 이 둘의 장점을 통합하며 주목받는다. S/4HANA는 HANA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실시간 데이터 분석과 모바일 친화적 UI(SAP Fiori)를 제공해, 구매 프로세스를 한층 더 현대화한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가 클라우드로 전환 중이라면 Ariba가 최적이다. 특히 글로벌 공급업체와 협업하거나, 빠른 소싱과 계약 관리가 필요할 때 Ariba는 게임체인저다. 반면, 전통적인 제조업체처럼 재고와 생산이 중요한 환경이라면 MM이 더 적합하다. S/4HANA는 두 세계의 장점을 모두 원하는 기업에 이상적이다.
SAP와 Ariba를 사용하면서 깨달은 건, 이 시스템들이 단순히 일을 빠르게 처리해주는 도구가 아니라는 점이다. SAP는 내 업무를 더 전략적으로 만들었다. 예를 들어, Ariba의 지출 분석 대시보드를 통해 어떤 품목에 돈을 많이 쓰는지, 어디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 MM을 통해선 재고 부족으로 생산이 멈추는 일이 없도록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가끔은 SAP의 복잡한 화면과 설정에 머리가 아플 때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의 보상도 크다. SAP는 나를 단순히 '구매하는 사람'에서, 회사의 비용 절감과 효율성을 책임지는 전략적 파트너로 만들어줬다.
구매 업무는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게 아니다. 회사의 자원을 최적화하고, 공급업체와의 관계를 관리하며, 데이터를 기반으로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일이다. SAP와 Ariba는 그 여정을 함께하는 동반자다. 복잡한 구매 프로세스를 간소화하고, 투명성을 높이며, 비용을 절감하는 이 도구들은 단순한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비즈니스의 미래를 여는 열쇠다.
혹시 당신도 SAP의 숲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면, Ariba부터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첫 클릭이 당신의 업무를 완전히 바꿀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