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괴물을 만났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스스로 꽤 괜찮은 팀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라떼는 말이야'를 혐오하고, 팀원들에게 '님'자를 붙이며 수평적인 소통을 지향했죠. 법인카드로 비싼 커피를 사주며 "할 말 있으면 편하게 해"라고 말하는 걸 즐겼고, 슬랙과 노션, JIRA를 쓰는 제 모습에 은근한 뿌듯함마저 느끼곤 했습니다.
적어도 저는 구시대의 '꼰대'와는 다르다고, 나름의 합리성과 유연함을 갖춘 '요즘 리더'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팀원들이 내 의견에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할 때, 그것이 진정한 '동의'의 의미라고 착각했습니다. 내 논리가 워낙 명쾌해서 반박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고, 아주 편리하게 해석했죠.
그날, 그 회의가 있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새로운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정하는 중요한 회의였습니다. 저는 며칠 밤낮으로 고민한 기획안을 팀원들에게 공유했고, 스스로도 꽤 만족스러운 결과물이라 생각했습니다. 몇몇 긍정적인 피드백이 오간 뒤, 회의를 마무리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때, 평소 가장 신뢰하던 매니저 A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팀장님, 그런데 이 방향은 저희가 가진 리소스에 비해 너무 이상적인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B안으로 접근하는 게 더 안정적이지 않을까요?"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충분히 일리 있는, 합리적인 반론이었습니다. 머리로는 '아,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일단 이 방향으로 가는 게 맞습니다. 전체적인 큰 그림을 봐야 해요. 진행하다가 생기는 문제는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됩니다. 책임은 제가 질 테니, 일단 제 말대로 준비해주세요."
순간, 회의실에 공기가 얼어붙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차가운 침묵만이 남았습니다. A의 얼굴에서 총기가 사라지고, 익숙한 '체념'의 표정이 스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네, 알겠습니다'라는 대답은 더 이상 동의가 아닌, 복종의 언어였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저는 토론을 한 게 아니라, 제 생각에 대한 '동의'를 구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반론이 제기되자, '책임'이라는 단어를 무기처럼 휘두르며 상대를 찍어 누른 것입니다.
가장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리더라고 믿었던 제 모습이, 실은 권위로 팀원을 복종시키려는 '독재자'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마주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회의실에서의 내 모습을 계속해서 복기했습니다. 왜 나는 그토록 방어적으로 반응했을까? 왜 팀원의 합리적인 의견을 '도전'으로 받아들였을까?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제 안에는 저도 몰랐던 '권위적인 괴물'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요즘 꼰대'의 특징은 교묘하고 세련됐습니다.
'소통'의 이름으로 '설득'을 강요합니다. 자유롭게 말하라고 판은 깔아주지만, 결국 내가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회의를 끝내지 않습니다.
'효율'과 '속도'를 핑계로 '토론'을 묵살합니다. "시간 없으니 일단 이렇게 하죠"라는 말로 다양한 가능성을 차단해버립니다.
'책임'이라는 말로 '권한'을 독점합니다. "내가 책임질게"라는 말은 팀원에게 안정감을 주는 말이 아니라, "더 이상 토 달지 마"라는 경고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저는 팀원들에게 자율성을 준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내가 허락한 범위 내에서의 자율성'만을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쳐놓은 투명한 벽 안에서만 움직이길 바랐던 거죠.
팀원들의 침묵은 '존중'이 아니라, '포기'의 신호였습니다. "어차피 말해도 안 통할 텐데"라는 무언의 메시지였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듯한 무력감과 깊은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
인지했다면, 바뀌어야 했습니다. '원래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괴물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저는 몇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원칙 1. '반대 의견'을 환영하고 보상하기 다음 날, 저는 A를 따로 불러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어제는 내가 너무 경솔했다. A님 의견이 맞다. B안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논의해보자"고요.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A의 표정이 조금씩 풀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후 회의에서는 일부러 제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을 지목하며 "아주 좋은 지적입니다. 그 부분은 제가 놓쳤네요. 고맙습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칭찬했습니다. 이제 '반대'는 '도전'이 아니라 '기여'라는 인식이 팀에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원칙 2. '책임'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기 "내가 책임질게"라는 말을 버렸습니다. 대신 "이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여러분에게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지 책임지고 찾아오겠습니다"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책임의 방향을 '결과에 대한 독박'이 아닌, '과정에 대한 지원'으로 바꾼 것입니다. 리더의 역할은 지시하고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팀원들이 마음껏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고 장애물을 치워주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원칙 3. 의도적으로 '침묵'하고 '질문'하기 회의에서 제 말을 3분의 1로 줄였습니다. 대신 "A님은 이 부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아이디어의 단점은 뭘까요?"처럼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팀원들이 스스로 정답을 찾도록 돕는 '조력자'가 되려고 노력 중입니다. 아직은 어색하고 답답할 때도 많지만, 팀원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들으며 인내심을 기르고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완벽한 리더가 아닙니다. 지금도 마감에 쫓기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내 안의 '괴물'이 스멀스멀 고개를 쳐들곤 합니다. "그냥 내가 하는 게 빠르지 않을까?" 하는 유혹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 제 안의 괴물의 존재를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괴물에게 지지 않기 위해 매일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리더의 자리는 사람을 변하게 만듭니다. 스스로 깨어있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합리성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자신의 권위적인 모습을 깨닫기 어렵습니다. 혹시 지금 팀원들의 침묵을 '동의'라고 믿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잠시 멈춰 서서, 가장 합리적이라 믿었던 순간의 여러분의 모습을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그곳에 혹시 당신도 몰랐던 괴물이 서 있을지도 모릅니다.
리더로서 티는 안내야 하지만,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완벽한 리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더 나아지기 위해 매일 고군분투하는 리더가 있을 뿐입니다. 저 또한 그런 리더가 되기 위해, 오늘도 내 안의 괴물과 싸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