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구매'팀'이 구매'파트'가 된 것에 대하여
회사 생활이란, 참으로 기묘한 RPG 게임 같다.
어제까지 내 옆자리에서 비슷한 퀘스트를 깨던 동료가 하루아침에 NPC가 되기도 하고, 멀게만 느껴지던 최종 보스가 사실은 중간 보스였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챕터를 마주했다.
출근길의 커피는 유난히 썼고, 사무실의 공기는 미묘하게 달랐다. 이유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몇 년간 우리 팀을 이끌던, 잔뼈 굵은 인사팀 출신 상사의 자리가 비어있었다.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그의 퇴임은 예견된 일이었기에, 후임이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한 막연한 추측만이 오갈 뿐이었다.
그리고 오후, 공식 발표가 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머릿속 모든 시나리오는 처참히 빗나갔다.
새로운 상사는 IR 담당 임원이었다. Investor Relations. 숫자로 세상을 보고, 주주들의 기대를 온몸으로 막아내며, 회사의 가치를 포장하는 사람이다. 투자를 받기 위해 잠재적 투자자들을 설득해야하는 최근 입사한 그가, 이제는 단가와 납기 일정, 원자재 시장을 들여다봐야 하는 우리를 이끈다니. 이건 장르를 잘못 찾아온 주인공 같았다. 그의 언어와 우리의 언어는 주파수부터 달랐다.
진짜 충격은 그다음이었다. 조직도에 찍힌 새로운 이름. ‘구매팀’이 아닌, ‘구매파트’.
팀에서 파트로. 이건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니었다. 팀 빌딩은 더더욱 아니었다. 누구도 입 밖에 내진 않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건 명백한 ‘격하’였다.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지고, 투명한 유리벽이 생긴 기분. 어제까지 우리가 쌓아왔던 ‘팀’이라는 자부심과 정체성에 보란 듯이 금이 갔다.
세상은 그에게 ‘레벨업’이라는 화려한 조명을 비춰줬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그의 승격이 눈부신 만큼, 우리의 격하는 더욱 초라하게 느껴졌다. 승진에서 미끄러진 것도 아닌데, 강등을 당한 기분. 묵묵히 제 몫을 다해왔던 우리의 시간과 노력은 이 새로운 판에서 어떤 가치를 가질까.
너만 레벨업? 그럼 난?
씁쓸한 질문이 입안을 맴돈다. 원치 않았지만, 새로운 퀘스트가 시작됐다. 게임의 룰은 이미 바뀌었다. 이제 내 캐릭터의 스탯을 어떻게 다시 찍어야 할지, 이 기묘한 RPG의 생존 매뉴얼을 처음부터 다시 펼쳐봐야 할 시간이다.
'전지적 작가시점'을 봤더니 모든게 게임으로 보이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