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하나 팔면 얼마 남으세요?"

#스타트업 #원가구조 #유닛이코노믹스 #밑빠진독 #성장통 #생존

by 구매가 체질

VC(벤처캐피탈) 투자 심사역 앞에서 자신감 넘치게 IR 피칭을 하던 한 스타트업 대표의 얼굴이 굳어지는 순간이 있다. 우리 서비스의 폭발적인 트래픽 성장세와 다음 분기 마케팅 계획까지는 막힘없이 설명했지만,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질문이 들어왔을 때다.


"대표님, 지금 이 서비스 고객 한 명에게 제공하는 데 얼마가 드나요? 그래서, 하나 팔면 정확히 얼마가 남으세요?"


순간 정적이 흐른다. 우리 제품의 가격은 경쟁사보다 조금 저렴한 $9.99. 하지만 그 가격의 근거가 무엇인지, 재료비, 인건비, 서버비, 결제 수수료를 모두 제외하고 정말 우리에게 남는 돈이 얼마인지 즉시 답할 수 있는 대표는 놀라울 정도로 드물다.


다양한 스타트업과 상장사를 거치며 구매와 공급망(SCM) 전문가로 일하며 내가 목격한 가장 안타까운 현실은 바로 이것이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자신의 진짜 '원가 구조'를 모른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회계상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의 생존과 직결되는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다.


1. 우리는 왜 원가에 눈을 감는가?


초기 스타트업의 세상은 온통 '성장'이라는 단어에 매몰되어 있다. 사용자 수, 트래픽, 매출액 같은 외형적인 지표를 끌어올리는 데 모든 자원이 집중된다. '수익성'이나 '원가'는 먼 미래에, 규모가 커진 다음에 해결할 문제처럼 여겨진다.


특히 기술 기반 스타트업의 경우,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R&D 비용’이라는 만능 주머니: 제품 개발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연구개발비'라는 항목 아래 하나로 뭉뚱그려진다. 제품 하나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순수 재료비(BOM)와 양산 인건비, 품질 검수 비용 등을 명확히 분리하지 않는다. 개발 단계에서는 이것이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하는 순간 이 ‘만능 주머니’는 독이 된다.


‘숨겨진 비용’의 함정: 많은 대표들이 원가라고 하면 눈에 보이는 재료비만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원가는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다.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기업이라면 고객 한 명이 늘어날 때마다 추가되는 클라우드 서버 비용, 이커머스라면 포장재 비용과 배송비, 결제대행사(PG) 수수료, 제조 스타트업이라면 금형 감가상각비와 품질 불량으로 인한 폐기 비용까지 모두 원가다. 이런 비용을 놓치면,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시작된다.


전문가의 부재: 제품과 기술에 미쳐있는 천재 창업가에게 재무나 SCM은 낯설고 재미없는 영역일 수 있다. 당장 눈앞의 개발과 마케팅이 급급한데, 복잡한 원가 계산에 시간을 쏟을 여유도, 그 중요성을 알려줄 전문가도 팀 내에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2. 원가를 모르면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


원가 구조를 모른다는 것은 내비게이션 없이 안갯속을 운전하는 것과 같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기름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가속 페달만 밟고 있는 셈이다.


첫째, 가격 결정이 ‘감’으로 이루어진다. 경쟁사가 얼마에 파는지, 시장에서 대충 이 정도 가격이면 팔릴 것 같은지에 의존해 가격을 정한다. 우리 제품을 만드는 데 10,000원이 드는데, 경쟁사가 9,000원에 판다고 우리도 8,900원에 파는 식이다. 이 결정이 매일 회사의 현금을 태워 없애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둘째,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 모른다. 이익이 나지 않아도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재료비가 너무 높은지, 특정 공정의 인건비가 비효율적인지, 과도한 마케팅 비용이 문제인지 진단이 불가능하다. 모든 것이 그저 "돈이 부족하다"로 귀결될 뿐,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지 못하고 또다시 투자 유치에만 매달리게 된다.


셋째, 성장이 독이 된다. 사용자 100명일 때는 보이지 않던 문제가 10만 명이 되면 재앙으로 돌아온다. 개당 100원씩 손해 보고 팔던 제품이 10만 개가 팔리면 손실은 1,000만 원이 된다. 성장에 올라탔다고 기뻐하는 순간, 회사는 손실의 수렁으로 더욱 빠르게 빠져든다. 투자자들은 이런 ‘수익성 없는 성장’을 가장 경계한다.


3. 지금 당장, 당신의 원가를 해부하라

그렇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복잡한 회계 지식이 없어도 괜찮다. 지금 당장 냅킨에라도 적어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1단계: COGS(매출원가) 파악하기 우리 제품이나 서비스 하나를 고객에게 '전달'하기까지 직접적으로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더해보자.

제조업이라면: 재료비(BOM), 제품을 조립하는 인건비, 포장비, 배송비 등

SaaS라면: 고객 데이터가 저장되는 서버 비용, 연동되는 외부 솔루션 이용료, 고객 지원 인력 인건비, 결제 수수료 등


2단계: 공헌이익 계산하기 이제 우리 제품의 진짜 실력을 확인할 차례다.

판매가격 - COGS(매출원가) = 공헌이익

이렇게 계산된 ‘공헌이익’이 바로 우리 회사의 월급, 사무실 임대료, 마케팅비 등 고정비를 감당하고 진짜 이익을 만들어내는 원천이다. 만약 공헌이익이 마이너스라면, 즉시 모든 것을 멈추고 원가 구조와 가격 정책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3단계: 원가 절감의 주체를 찾아라 원가 절감은 단순히 구매팀만의 몫이 아니다. 더 저렴한 부품을 사용하도록 설계를 변경하는 연구개발팀, 불량률을 줄여 폐기 비용을 없애는 생산/품질팀 모두가 원가 절감의 핵심 주체다. ‘원가 의식’을 전사의 문화로 만들어야 한다.


스타트업에게 '원가 관리'는 구두쇠처럼 돈을 아끼는 행위가 아니다. 우리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이 지속 가능한지, 우리가 만드는 가치가 시장에서 경제적으로 성립하는지를 증명하는 가장 중요한 활동이다. 그것은 회사의 건강 상태를 매일 확인하는 ‘건강검진’과도 같다.


"그래서, 하나 팔면 얼마가 남으세요?"


이 질문에 자신 있게, 그리고 정확하게 숫자로 대답할 수 있을 때, 당신의 스타트업은 비로소 ‘뜬구름 잡는 꿈’이 아닌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사업’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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