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행동은 과연 나의 의지일까
출근 길 읽고 있던 책에서 결정론적 운명관의 극단적인 예시 하나를 마주했습니다.
법정에 선 한 살인자가 자신의 끔찍한 범행은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 아니라,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그를 둘러싼 폭력적인 환경, 그 순간의 감정까지... 모든 것이 자신을 그 길로 이끈 '정해진 운명'이었다고 담담히 말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거대한 기계의 부품이나 잘 짜인 각본의 배우에 비유했습니다. 과연 그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궤변에 불과할까요?
섬뜩한 그의 항변은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하나의 질문을 남겼습니다. '나의 삶, 나의 선택은 과연 온전히 나의 것인가?' 이 질문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저는 뜻밖에도 물리학자의 책상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고전물리학의 세계는 놀라울 정도로 질서정연합니다. 당구대 위에 놓인 공들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모든 당구공의 처음 위치와 속도(초기조건)를 정확히 알고, 큐대의 힘과 각도, 쿠션의 탄성(운동법칙)을 완벽하게 계산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뉴턴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첫 번째 공이 부딪힌 후 벌어질 모든 상황, 즉 모든 공의 움직임과 최종 위치까지도 오차 없이 예측할 수 있습니다. 마치 신이 정해놓은 운명처럼 말이죠.
이제 이 비유를 살인자에게 적용해 봅니다. 그가 물려받은 유전자, 그가 겪었던 유년기의 상처, 그를 둘러싼 사회의 냉대가 그의 '초기조건'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심리가 작동하는 방식, 분노가 폭발하는 매커니즘이 '운동법칙'이라면요? 그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긴 것은, 어쩌면 뉴턴의 법칙에 따라 정해진 경로로 굴러간 당구공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주장처럼, 그는 그저 수많은 원인이 낳은 '필연적인 결과'였을 뿐일까요?
"우리는 불변집합 안에서 시간에 따라 변하는 물질의 일부이며, 우리가 변하는 방식은 부분적으로 우리의 행동을 설명한다."
이 명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우리가 사는 이 우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불변집합', 즉 모든 가능한 사건과 역사가 이미 그려져 있는 일종의 '운명의 지도' 같은 것이라는 상상입니다. 빅뱅의 그 순간부터 마지막 별이 빛을 잃는 순간까지, 나의 첫 울음부터 당신이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까지 모든 것이 그 지도 위에 이미 존재하는 경로라는 것이죠.
생각만으로도 현기증이 나는 이 개념 앞에서 '자유의지'라는 단어는 설 자리를 잃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살인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당신 탓이 아니었군요"라고 말해야 할까요?
물론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그의 행동에 분노하고, 법은 그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왜일까요?
우주가 결정론적인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해도, 우리는 그 거대한 '운명의 지도'를 결코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눈앞에 펼쳐진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선택하고, 그 선택이 쌓여 만들어진 '나'라는 이야기를 써 내려갑니다. 비슷한 환경(초기조건)에서도 누군가는 좌절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극복해 내는 무수한 사례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책임'이란, 우주의 진리를 탐구하는 물리학의 언어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인간의 실천적인 약속일지 모릅니다. 당신의 행동은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나의 선택은 당신의 세계에 파장을 일으키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죠.
법정의 판사는 살인자의 불우한 환경을 '정상참작'의 사유로 고려할 수는 있겠지만, 그의 책임을 완전히 면제해 주지는 않을 겁니다.
그의 '초기조건'을 이해하는 것과, 그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살인자의 항변으로 시작된 생각의 여정은 결국 다시 제 자신에게로 돌아왔습니다. 나의 삶이 수많은 원인과 조건의 결과물임을 겸허히 인정하면서도,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선택만큼은 나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믿고 싶은 마음.
어쩌면 우리는 운명이라는 거대한 파도 위에 떠 있는 작은 조각배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파도의 방향을 거스를 수는 없겠지만, 그 위에서 필사적으로 젓는 노 하나만큼은 온전히 우리의 몫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요.
당신은 당신의 삶이라는 이야기의 저자인가요, 아니면 그저 성실한 독자인가요?
이 밤, 한번쯤 곱씹어 볼 질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