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이 알려준 기묘함에 대하여
프로젝트 마감일은 다가오는데 방향은 안갯속일 때, 모두가 동상이몽을 꾸는 듯한 회의가 끝없이 이어질 때, 문득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쩌면 이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거대한 시뮬레이션이고, 내 동료들은 사실 정교하게 짜인 NPC(Non-Player Character)가 아닐까?
저 무표정한 얼굴 뒤에는 의식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
우스운 공상처럼 들리지만, 이건 단순히 공상과학 영화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대 물리학의 가장 기묘한 이론인 양자역학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의 본질에 대해 이와 비슷한, 아주 심각한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속에는 우리의 '업무 현실'을 헤쳐나갈 의외의 힌트가 숨어있다.
양자역학의 세계는 한마디로 '가능성의 세계'다. 입자는 우리가 '측정'이라는 행위를 하기 전까지는 A도 아니고 B도 아니다. 그저 A가 될 가능성과 B가 될 가능성이 흐릿하게 중첩된 채로 존재한다. 우리가 '딱'하고 쳐다보는 순간, 이 가능성의 구름은 붕괴하며 비로소 하나의 현실적인 값으로 확정된다.
이것을 우리 업무에 그대로 대입해 보자.
새로운 프로젝트는 시작되는 순간 '성공'이나 '실패'로 정해져 있지 않다. 그것은 '성공할 가능성'과 '실패할 가능성',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들이 뒤섞인 양자 구름과 같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가 바로 '측정'이다.
시장 조사를 하고 보고서를 쓰는 행위
동료와 커피를 마시며 아이디어를 나누는 행위
고객에게 프로토타입을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는 행위
이런 '측정'들이 쌓여갈 때마다 프로젝트의 무한했던 가능성은 점차 줄어들고, 하나의 구체적인 '결과'라는 현실로 수렴해간다. 일이 불확실하고 불안하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원래 세상은 그렇게 생겼으니까. 우리의 일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측정을 통해 원하는 현실을 '창조'해나가는 과정에 가깝다.
자, 여기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모든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측정'의 주체가 바로 '나'라면, 내가 이 세계의 유일한 주인공인 걸까? 나의 행동과 결정만이 의미가 있고, 동료들은 나의 선택에 반응하는 NPC에 불과한 걸까?
이 유아론적 유혹은 달콤하지만, 물리학은 고개를 젓는다. 우주에 특별한 관찰자는 없듯이, 회사에도 유일한 주인공은 없다. 오히려 양자역학은 더 흥미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바로 '공동 창조자(Co-creator)' 모델이다.
나의 기획안 제출이라는 '측정'이 팀장의 의사결정이라는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 팀장의 피드백이라는 '측정'은 다시 나의 기획안 수정이라는 현실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서로의 현실에 끊임없이 영향을 주며, 이 프로젝트라는 거대한 현실을 함께 조각해나가는 '공동 창조자'들이다.
답답하게만 보였던 내 동료는 그저 나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측정'하고 있던 또 다른 관찰자였을 뿐이다. 그가 보는 현실과 내가 보는 현실이 달랐기에 소통이 어려웠던 것이다. 그는 NPC가 아니라, 나와 다른 파트의 현실을 만들어가고 있던 또 다른 주인공이었다.
이 기묘한 양자역학적 세계관은 우리의 업무 방식에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준다.
첫째,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측정'의 횟수를 늘려야 한다. 일이 안갯속일수록 우리는 더 자주 소통하고, 더 빨리 실행하고, 더 많이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완벽한 계획을 기다리는 것은 가능성의 구름 속에서 길을 잃는 것과 같다. 작게라도 계속 '측정'하며 현실을 구체화해야 한다.
둘째, 동료를 NPC가 아닌 '공동 창조자'로 인식해야 한다. 그의 관점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어떤 측정을 하셨나요?)", "제가 보는 건 이런데, 같이 현실을 맞춰볼까요?(제 측정값과 당신의 측정값을 동기화해봅시다.)" 이런 대화들이 서로의 양자 구름을 하나의 공유된 현실로 묶어주는 강력한 접착제다.
셋째, 나의 '관측'이 현실을 만든다는 책임감을 갖는다. 내가 던지는 말 한마디, 내가 작성하는 이메일 한 통이 동료와 프로젝트의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 긍정적이고 명확한 '측정'은 긍정적인 현실을 창조할 확률을 높인다.
결국 내 동료는 NPC는 아니었다.
그는 나와 함께 이 기묘하고 불확실한 세계의 현실을 함께 만들어가는 파트너이자, 내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조연이며, 그 자신의 이야기에서는 당당한 주인공이다. 우리의 일은 어쩌면, 각자의 우주를 조율하여 하나의 아름다운 교향곡을 함께 연주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