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얼마나 걸었을까

두 발이 선물하는 사유의 풍경

by 구매가 체질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걷기는 인간의 정신과 감각을 깨우는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심오한 미학적 행위다.


아스팔트 위를 스치는 발걸음의 감각, 변화하는 풍경의 시각적 흐름,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사유의 향연은 걷기를 단순한 운동이 아닌, 하나의 예술이자 철학으로 격상시킨다. 걷기의 미학은 속도의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즉 사색의 깊이, 온전한 감각의 경험, 그리고 세계와의 진정한 만남을 회복하게 하는 데 그 본질이 있다.


사유의 동반자, 걷기


"진정으로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로부터 나온다." 철학자 니체의 말처럼, 걷기와 사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왔다. 고대 그리스의 소요학파(逍遙學派) 철학자들이 거닐며 토론했던 것에서부터, 칸트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산책하며 사상의 체계를 다듬고, 루소가 숲길을 걸으며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은 성찰을 글로 옮겼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걷는 행위는 몸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통해 뇌에 혈액과 산소 공급을 원활하게 하여 이성적 사고와 창의적 발상을 촉진한다. 자동차나 기차에 몸을 싣고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는 포착할 수 없는 섬세한 세상의 변화와 디테일은 오직 걷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이처럼 걷기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온전히 감각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함으로써 생각의 근육을 단련시킨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걷기는 창의성을 평균 60% 향상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스티브 잡스나 마크 저커버그와 같은 혁신가들이 '워킹 미팅'을 즐겼던 것 또한 걷기가 지닌 창조적 힘을 증명한다.


도시의 산책자, 플라뇌르(Flâneur)


19세기 파리의 도시 문화 속에서 등장한 '플라뇌르(Flâneur)'는 걷기의 미학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프랑스어로 '한가롭게 거니는 사람'을 뜻하는 플라뇌르는 뚜렷한 목적 없이 도시의 거리를 배회하며 군중 속에서 고독을 즐기고, 현대 도시의 익명성과 역동성을 관찰하고 사색하는 도시의 탐험가였다.


시인 보들레르에 의해 예술적 전형으로 제시된 플라뇌르에게 걷기는 도시라는 거대한 텍스트를 읽어내는 행위였다. 그는 상점의 진열창, 행인들의 표정, 거리의 소음 등 도시의 파편적인 이미지 속에서 시대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 플라뇌르의 걷기는 단순히 공간을 이동하는 것을 넘어, 도시적 삶의 미학을 발견하고 경험하는 주체적인 행위였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목적 없이 동네 골목길을 어슬렁거리거나, 낯선 도시의 거리를 탐험하는 경험은 플라뇌르적 걷기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걷기, 나를 만나는 시간


걷기는 외부 세계와의 교감인 동시에, 가장 깊은 내면으로 침잠하는 능동적인 명상이다. 걷는 동안 우리는 잠시 세상의 소음과 복잡한 관계로부터 벗어나 오롯이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발바닥이 땅에 닿는 감각에 집중하고, 호흡의 리듬을 느끼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 복잡했던 머릿속은 비워지고 마음에는 평온이 찾아온다.


다비드 르 브르통은 그의 저서 『걷기 예찬』에서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하게 경험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걷기는 우리를 기계의 속도에서 해방시켜 인간 본연의 속도를 되찾게 하고, 시간의 주인이 되어 세상을 관조하게 한다. 헐벗음의 훈련과도 같은 걷기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세계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결국 걷기의 미학은 '느림'과 '비움', 그리고 '충만'의 변증법에 있다. 속도를 늦춤으로써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게 되고, 생각을 비움으로써 새로운 창의성으로 채울 수 있게 된다.


두 발로 땅을 딛고 온전히 현재에 머무는 것. 이것이야말로 걷기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가장 아름다운 미학적 경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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