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의약품 CDMO 창고의 GxP 운영 방식
새벽 배송을 위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거대한 물류센터를 상상해 보신 적 있나요? 그곳의 목표는 단 하나, '속도'와 '정확성'입니다. 주문된 물건을 최대한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찾아 내보내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입니다.
하지만 여기, 정반대의 세상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의심받고, 모든 단계가 검증되며, 속도보다 절차가 압도적으로 중요한 곳. 바로 바이오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의 창고입니다. 이곳의 물건들은 단순한 '재고'가 아닙니다. 이들은 엄격한 심사를 거쳐 자격(신분)을 얻고, 그 신분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특별한 존재들입니다.
이곳의 WMS(창고관리시스템)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디에 있는가?"가 아니라, "그래서, 이 재고의 현재 '신분(Status)'은 무엇인가?" 입니다. 다른 산업군의 창고관리와는 추구하는 바가 조금 다릅니다.
모든 재고는 '대기(Quarantine)', '적합(Approved)', '부적합(Rejected)' 이라는 세 가지 신분 중 하나를 부여받으며, 이 신분 변경의 여정이 바로 CDMO 창고 관리의 핵심입니다.
하나의 세포 배지가 해외에서부터 냉장 컨테이너에 실려 우리 창고에 도착한 순간부터, 완제품의 일부가 되어 병원으로 떠나기까지의 상세한 여정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모든 과정은 WMS를 중심으로 ERP, MES, LIMS, QMS 시스템들이 거미줄처럼 엮여 관장합니다.
냉장 운송 차량이 도착하면, 작업자는 문을 열기 전 운송 중 온도 기록부터 확인합니다. 기록에 문제가 없어야 비로소 하역이 시작됩니다. 작업자의 손에는 PDA가 들려있습니다.
시스템 확인: ERP(전사적자원관리)에 등록된 구매 오더 정보는 이미 WMS에 공유되어 '입고 예정 목록'을 만들어 둔 상태입니다. 작업자는 PDA로 이 목록을 불러옵니다.
검수 및 '대기' 신분 부여: 작업자는 배지 상자의 바코드를 스캔합니다. WMS는 예정된 정보와 실물이 일치하는지 즉시 확인합니다. 확인이 끝나면, WMS는 이 배지에 고유한 내부 Lot 번호를 부여하고, 품질 상태를 대기(Quarantine)로 지정합니다. 동시에 '대기' 상태와 내부 Lot 번호가 찍힌 라벨을 출력해 부착합니다.
지정 구역으로 이동: WMS는 "이 배지를 'Quarantine 전용 냉장 구역' A-01-01으로 이동시키시오"라고 명확히 지시합니다. 이 순간부터 이 배지는 QC의 최종 판정 없이는 생산 라인 근처에도 갈 수 없도록 시스템적으로 완벽히 통제됩니다.
배지가 '대기' 상태로 입고된 정보는 자동으로 LIMS(실험실정보관리시스템)에 전달되어 품질 분석팀에 시험을 의뢰합니다.
시험 진행: QC팀은 LIMS의 지시에 따라 배지의 샘플을 채취해 엄격한 품질 시험을 진행합니다.
판정 및 자동 업데이트: 며칠 후, LIMS에서 최종 '적합(Approved)' 판정이 내려집니다. 이 판정 결과는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시스템 인터페이스를 통해 즉시 WMS로 전송됩니다.
신분 변경 및 이동: WMS는 해당 배지 Lot의 신분을 '대기'에서 '적합'으로 자동 변경합니다. 이제 생산에 투입될 자격을 얻은 것입니다. 동시에 WMS는 작업자에게 "A-01-01의 배지를 '적합품 냉장 창고' C-05-03으로 이동시키시오"라는 작업을 지시합니다.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면, 영원히 격리될 '부적합품' 구역으로 이동 지시가 내려졌을 것입니다.
MES(생산실행시스템)에서 특정 의약품의 생산 계획이 확정되면, 필요한 배지의 양을 WMS에 요청합니다.
최적의 자재 선택: WMS는 '적합' 신분의 배지 재고 중에서, 유효기간이 가장 얼마 남지 않은 것(FEFO 원칙)을 시스템이 알아서 선택하고, 작업자에게 불출을 지시합니다.
교차 검증과 전자 서명: 작업자는 PDA의 지시에 따라 C-05-03으로 이동합니다. 위치 바코드 → 배지 Lot 바코드를 순서대로 스캔하며 WMS는 작업자가 올바른 위치에서 올바른 자재를 꺼내는지 이중, 삼중으로 확인합니다. 칭량(무게 측정)이 필요한 경우, 저울과 연동된 WMS가 정확한 무게값을 자동으로 기록하고, 작업자는 PDA에 전자서명을 함으로써 모든 책임과 기록을 남깁니다.
생산 라인으로 들어간 배지는 MES의 통제 아래 세포를 키워내는 역할을 다하고, 여러 공정을 거쳐 반제품(WIP, Work-in-Progress), 그리고 마침내 완제품으로 탄생합니다. 이 과정에서 생성되는 반제품과 완제품 역시 창고에 보관될 때마다 WMS를 통해 새로운 Lot 번호와 '대기(Quarantine)' 신분을 부여받고, 또다시 QC의 엄격한 최종 시험을 기다립니다.
모든 생산이 끝나고 완제품이 창고에 입고되면, 마지막 심판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최종 검토: QMS(품질관리시스템)에서 생산 전 과정의 기록(전자제조기록서)과 완제품의 최종 품질 시험 결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합니다.
'출하 승인' 신분 획득: 품질 보증 책임자가 최종적으로 '출하 승인'을 결정하면, 이 정보가 WMS로 전달됩니다. 드디어 완제품 Lot의 신분이 Quarantine에서 '출하 승인(Released)'으로 변경됩니다.
출하: ERP에서 고객사로의 출하 오더가 내려오면, WMS는 오직 '출하 승인' 신분을 가진 제품만을 대상으로 피킹 및 출하 작업을 지시합니다. 모든 과정은 다시 바코드로 검증되며, 환자를 향한 마지막 여정을 시작합니다.
이처럼 CDMO의 WMS는 물류 효율을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환자의 안전과 직결되는 의약품의 품질을 보증하고,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기록하여 규제 기관의 어떤 질문에도 답할 수 있게 하는 '살아있는 품질 기록 시스템'입니다.
창고 안에서 조용히, 그리고 쉴 새 없이 이루어지는 이 엄격한 '신분 관리'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믿고 사용할 수 있는 고품질 바이오 의약품이 탄생하는 보이지 않는 심장부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