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에는

by 정용수

하루 두 명의 손님만 와도 좋을

작은 서점의 주인이 되어

천천히 늙어 가면 좋겠다.


파아란 책장 두어 개 짜서

들꽃 같은 책들을 모아

가지런히 정열하고

가을이 멈춘 듯한 갈색 탁자 위에

정갈한 화분도 두어 개 키우며

향 좋은 커피를 능숙하게 내리는

책방 주인으로 늙어 가면 좋겠다.


기대할 것도,

실망할 것도 없는

담백한 하루를

욕심 없는 독서로 채워가며

갓 구워낸 소금빵 같은

따뜻한 책 하나 찾아 권하는

눈빛 맑은 사람으로 늙어 가면 좋겠다.


기다리는 사람 오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고

햇살 가득한 창가에 앉아

좋았던 시절의 노래

우두커니 들으며

손때 묻은 책과 함께

천천히 늙어 가면 좋겠다.


특별할 것 없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다

하루를 보내어도

세월 감이 억울하지 않은

자유인으로 늙어 가면 좋겠다.


외로운 마음들에게만

발견되는 헝겊 인형 몇 개

창틀에 올려놓고

한 번씩 마주치는

창 너머의 슬픈 눈과 인사하며

따뜻한 차 한잔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작은 서점의 주인으로

그렇게 천천히 늙어 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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