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하치
태생적으로 떠돌이개가 아니어서 삶의 모든 부분을 사람에 의지해 사는 운명이라 사람 없는 삶은 가히 가늠할 수 조차 없다. 외출로 인해 집이 빈 상태가 되면 하치는 집안 곳곳을 다니며 마킹을 한다.
사람 없는 공간이 불안하고 외로웠을 터다.
돌아와서 전쟁터 같은 실상을 발견하곤 씩씩거리며 키친타올부터 찾아 치워 나가기 시작한다. 물티슈로 마지막 마무리까지 해야 하는 평화상태로의 복원은 여간 고된 일이 아니다.
끝없는 반복의 일이라 작은 울타리를 만들어 주고 물과 패드를 놓고 나가면 사람을 가장 많이 따르고 사람 곁을 늘 지키는 하치는 펜스로 가로막힌 공간을 탈출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기어코 빠져나와 사람 없는 외로운 공간을 배회하며 온갖 만행을 저지르며 불안한 마음을 달랜다.
그들을 두고 나가는 일은 사람에게도 몹쓸 짓이라 마음이 아프기만 하다.
탈출의 시도는 늘 하치의 몫이고 성공한 후 해방의 기쁨은 모두의 몫이다. 이제 빠삐용이 되어버린 하치는 사람과 강아지의 막고 뚫으려는 창과 방패가 되어 서로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지혜를 동원해 막고 뚫기를 반복한다.
사람을 가장 가까이 두려는 하치.
잠자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늘 사람을 곁에 두고 잠을 청한다.
머리맡에 다리사이에 등뒤에 발아래 어디든 하치가 있는 곳엔 사람의 온기가 가득하고 침대를 공유하는 나에게도 하치는 그의 온기를 아낌없이 나누어 준다.
가을이 찾아오고 쌀쌀한 기운이 가슴을 파고들 때 하치의 온기는 서늘함을 막아주는 온돌의 잔열 같은 느낌으로 따뜻하게 다가온다.
모든 사고의 근원이면서도 가장 애처로운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하치의 눈빛은 모든 악행을 덮고도 남을 만치의 사랑스러움과 애교로 다시 천사가 되어 우리에게 다가선다.
먹방천재 사고뭉치 그래도 하치의 눈빛만 보면 모든 것이 봄눈 녹듯 사라지고 만다.
오래오래 건강하게만 곁에 머물기를 바라며 함께하는 순간순간의 행복을 하치와 함께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