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전
오늘은 미뤘던 미술 전시회를 꼭 가리라 마음먹은 날이다.
고흐의 전시회가 만원이라는 얘기는 익히 들었던 터라 붐비지 않는 시간을 찾아야 했다
구정 전날 아마도 설명절 준비로 바쁠 테니 그렇게 붐비지 않을 거라는 예상을 하고 예술의 전당으로 달려갔다
하얀 눈이 소복이 내리는 날 눈발을 헤치며 미술관으로 가는 길은 운치마저 더해졌다.
한가람미술관을 찾아 출입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가니 예상과 달리 대기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이런 날에도 이렇게 많은 이들이 고흐의 그림을 보기 위해 몰려있는 모습만으로도 고흐의 인기를 실감 나게 했다.
길게 늘어선 행렬에 동참하여 나도 조금씩 조금씩 고흐의 그림을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시대순으로 전시된 그림들은 초창기부터 말년의 그림까지 수십 점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작가 소개와시대배경까지 자세한 설명들이 벽면 빼곡히 적혀있었다.
마음대로 구경할 수 없는 행렬에서 나와 나는 기다리는행렬사이로 그림들을 감상하며 마음에 와닿는 그림들을 찾기 시작했다.
초기의 그림들은 어둡기도 하고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후기 작품으로 갈수록 고흐 특유의 붓터치가 나타나며 익숙한 고흐의 그림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어떤 화가의 그림과도 단번에 구별해 낼 수 있는 그만의 붓터치는 마음을 온화 하게 만드는 마술 같은 표현법이었다
동글 동글 유선형으로 붓이 지나간 자국마다 물감의 질감과 함께 느껴지는 포근하고 온화한 느낌은 아마도 그가 사용한 노란색 계열의 색상이 뿜어내는 온기 탓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화가는 그림으로 말한다
그림이 그의 언어인셈이다
하지만 그림만 보고는 또한 그의 인생을 논할 수도 없다
더 깊은 생각을 미쳐 못 헤아릴 때도 있으니 그의 삶과
같이 바라보아야만 그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그림인 것이다.
그래서 그림에는 오만가지의 상념과 생각들이 자리하고 있다
판단과 생각과 상상은 오로지 나의 몫이다
그저 느끼면 되는 것이기에 생각의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상상하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 맘으로 작품 하나를 바라본다.
고통과 죽음은 타자와 나눌 수 없다
오로지 내가 감내해 내야 할 나의 몫이다
하지만 때로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나눌 수 없는 고통이라 하더라도 위안이 되기도 한다
생래미 정신병원에서 외로운 시간을 보냈을 고흐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그에게 따뜻한 손길을 건네주는 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어쩌면 그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을 도와줄 한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그림을 그리고 그는 두달 뒤 스스로 모든 고통으로
부터 해방되었다.
그림에 남겨진 사마리아인을 바라보며 그는 위안을 받았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렇게 선한 사마리아인은 고흐의 가슴에 영원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