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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골 앞에서, 삶을 묻다

론 뮤익전을 보고

by 청일



이른 아침, 안개처럼 희미한 햇살을 따라 국립현대미술관으로 향했다. 예교리 고급과정의 마지막 수업날, 우리는 한 조각가의 세계를 함께 마주하기로 했다. 호주 출신 조각가 론 뮤익의 전시. 전시실을 채운 작품들은 많지 않았지만, 그 하나하나의 존재감은 숨을 멈추게 했다. 인물상을 형상화한 거대한 조각들은 눈앞에 실재하는 생명체처럼 생생했다. 피부의 주름, 턱을 감싸는 수염, 굳게 다문 입술마저 마치 한 생애의 시간을 머금은 듯 정교했다. 그의 얼굴은, 무언가를 견디고 살아낸 자의 얼굴이었다.

천천히 전시장을 거닐다가, 나는 한 작품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수많은 두개골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말없이, 그러나 분명한 메시지를 품고 있는 침묵의 형상들. 그 앞에 선 순간,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인간은 결국, 저리도 조용한 뼈의 형상으로 남게 되는구나.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얼마나 가졌는가? 무엇을 이루었는가? 그런 질문들은 이 앞에서 무색하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흐려지고, 단 하나—남는 것은 이름도, 감정도 지운 채 남겨진 뼈의 형태일 뿐이다.

목욕탕의 맨몸처럼, 죽음 앞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누군가는 권위를 입고 살았고, 누군가는 굶주림을 견디며 살았지만, 마지막엔 그 어디에도 신분의 흔적은 없다. 발가벗은 육체 위에 지위도, 부도 남지 않는다.


그 무수한 두개골들은 나를 향해 침묵으로 말을 걸었다. 너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유한한 삶의 끝자락에 서서, 우리는 무엇을 남길 수 있는가?

입으로는 삶을 먹고, 뇌로는 생각하며, 눈으로는 세상을 바라보고, 귀로는 바람 소리와 타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살았던 인간이—이제는 아무런 기능도 없이 그저 뼈의 구조물로 남아 있다. 저 두개골 중 어느 것도 ‘개인’을 설명하지 못한다. 성별도, 피부색도, 국적도, 삶의 태도도—그 어디에도 표식은 없다. 모든 인간은 결국, 닮아 있다.


치열하게 살아낸 삶은 어디에 남겨지는가? 사랑했던 순간들, 울고 웃던 날들, 우리가 무겁게 지녔던 생각과 신념들은 어디로 스러지는가?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는 일. 오늘의 행복을 진심으로 누리고 가꾸는 것. 그것이야말로 유일하게 의미 있는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은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흔적은 사물도, 기록도 아닌 타인의 마음속에 희미하게 남는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 모두는 말 없는 두개골 하나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지금, 이 숨결은 더욱 소중하다.

나는 오늘을 살아간다. 사랑하고, 듣고, 바라보며.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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