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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정기를 담은 미술관에서, 이야기와 풍경에 물들다

자하미술관

by 청일


자하미술관!

이름만으로도 이미 운치가 가득한 그곳으로 향한 날,

맑고 투명한 하늘 아래, 언덕 위 자하미술관을 향해 한참을 걸어 올랐다.

‘깔딱 고개’라 불릴 만한 길이었지만,

그 고단함은 미술관에 도착하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의해 말끔히 씻겨 나갔다.


멀리 인왕산과 북한산이 병풍처럼 둘러서고,

가까이엔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내려다보이는 자리.

그의 시와 정신이 스며든 이 땅에서, 나는 뜻밖의 행운을 마주했다.


입구에서부터 한 무리의 관람객들이 귀 기울이는 설명 속으로 이끌렸고,

그 설명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오늘의 전시 작가, 임채욱 작가였다.

사진과 시, 향기와 음악이 어우러진 그의 전시는 단순한 시각적 감상이 아니라,

이야기를 품은 ‘서사적 사진’의 세계였다.


윤동주 시인의 언어와, 김민기의 상록수,

광주의 기억과 무등산의 품이 사진 안에서 서로를 부르고 감싸며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를 엮어냈다.

사진은 기록이 아니라, 기억을 부드럽게 풀어낸 시처럼 느껴졌다.


그중에서도 유독 마음을 머물게 한 한 장면이 있다.

산의 정기를 가득 담은 호수, 그 위에 그림자처럼 내려앉은 안개.

신비로운 빛을 머금은 산 아래 마을은 마치 산신이 깃든 성소처럼 고요하고 경이로웠다.

그림을 보는 순간, 마음은 어느새 깊고 고요한 물속으로 잠겨 들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지고, 말없이 평화가 스며들었다.


작가는 사진 인화를 한지에 담았다.

그 선택은 탁월했다.

한지가 가진 따스한 질감과 은은한 색감은, 자연을 더욱 자연스럽게 전하는 매개였다.

그 부드러움은 이미지와 감정을 이어주는 다리처럼 다가왔다.


전시를 마친 후, 작가가 내놓은 녹차 한 잔은 또 다른 감각의 문을 열어주었다.

무등산 기슭에서 자란 찻잎으로 만든 그 차는,

그의 사진처럼 은은하고 깊은 향기를 품고 있었다.


정원에서의 작은 티타임은,

처음 만난 이들과 작가가 함께 나눈 진솔한 대화로 이어졌고,

작품에 대한 그의 시선과 숨결을 더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작가는 별내에 새 작업실을 열었다고 했고,

나 또한 그곳과 멀지 않은 곳에 살아

조만간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나눴다.


자하미술관에서의 하루,

그것은 단순한 관람이 아니라,

풍경과 이야기, 예술과 인연이 함께 엮인

작고도 깊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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