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채 - 시작의 순간들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근무처에 들러 잠시 일을 마무리하고 나오니, 오후의 시간은 의외로 너그러웠다. 문득 며칠 전 접했던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개관 소식이 떠올랐다. 언젠가 꼭 들러야지, 마음 한켠에 걸어두었던 그 결심이 오늘이라는 여백에 닿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자, 위치는 창동. 너무도 가까웠다. 거리마저 나를 도와주는 듯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미술관을 향했다.
지하 주차장에서 올라선 1층은 생각보다 따뜻한 공간이었다. 인포메이션 데스크 너머, 편안한 의자와 책들, 고요한 음악이 흐르는 카페가 나를 맞이했다. 마치 ‘전시’ 이전에 마음부터 쉬어가라는 배려처럼. 전시실은 2층부터 이어졌다.
첫 전시장에 들어서자, 마침 도슨트의 설명이 시작되고 있었다. 낯선 이들의 무리에 조용히 섞였다. 작품은 나중에 천천히 보아도 좋겠지, 지금은 이 이야기부터 듣고 싶었다.
개관을 기념한 첫 전시는, 한국 사진예술의 초석을 놓은 다섯 작가의 삶과 시선을 담고 있었다. 네 분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한 분만이 아직 생존해 계셨다. 전시장 가득한 사진들은 모두 흑백.
그것은 단순한 색의 부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색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깊은 침묵 같았다.
1920년대부터 70년대까지, 한 세기를 관통하는 시간의 조각들이 액자마다 빛바랜 숨결로 놓여 있었다.
정해창 작가의 1920년대 사진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잊힌 골목, 빛바랜 얼굴들, 하천가를 누비는 삶의 풍경들.
나는 오래전부터 사진 속 인물을 볼 때면, 그들의 나이를 가늠해 보는 버릇이 있다. 이 사진이 찍힌 연도에 저 여인은 몇 살 쯤이었을까. 지금 살아 있다면 백 살이 훌쩍 넘었겠지.
그러고는 생각한다. 지금은 이름도 남지 않았을 그녀들이지만, 이렇게 사진 한 장으로 얼굴을 남긴 덕분에—우리는 한때 이 땅 위에 저런 여인이 살아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빨래터에 모여 앉은 아낙네들, 흘러가는 물과 햇살 아래에서 포착된 그들의 얼굴은, 아름다움보다는 묵직한 삶의 무게로 다가왔다.
그 사진은 풍경을 찍은 것이 아니라, 견디며 살아낸 사람들의 뒷모습을 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장의 사진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광산 노동자들이 환히 웃고 있었다.
어둡고 음습한 갱도를 나와, 잠시 쉬며 해를 쬐는 그들의 얼굴.
제목은 ‘즐거운 한때’.
그 웃음엔 고통도, 죽음도, 막장이라는 단어도 없었다.
그저 순간의 따뜻함, 함께 일한 동료들과 나누는 웃음, 그 찰나의 평화가 사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삶이란, 어쩌면 그런 ‘짧은 환한 장면’들을 건너가는 여정일지도 모르겠다.
하천에서 물놀이를 하던 아이들, 초가집 창문 너머로 고개를 내민 아이, 해사한 얼굴로 포즈를 취하던 작은 어른.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아마 모두 늙었거나, 세상을 떠났겠지.
그러나 사진 속 웃음은 여전히 싱싱했다.
나는 그 웃음이 들리는 듯했다.
그 웃음을 따라가다 보니, 나의 어린 시절이 어느 틈엔가 겹쳐 보였다.
그 시절엔 왜 다들 그렇게 가난하게, 궁상스럽게 살아야 했을까.
우리 부모님도 그러셨을 것이다.
그 힘든 날들을 다 건너왔건만, 정작 좋은 시절을 오래 누려보지도 못한 채 떠나버린 것이 못내 아프다.
전시는 예술가들의 작품이었지만, 나에겐 시대와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예술은 거기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사람의 땀과 웃음, 생의 그림자가 먼저 보였다.
그래서 오히려 숙연해졌다.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앞으로 이곳엔 더 많은 사진들이 걸릴 것이다. 더 많은 삶과, 더 많은 시간의 파편들이.
이런 공간이 지척에 있다는 사실이 든든하다.
이제 나는, 전시가 아닌 ‘기억을 만나러’ 이곳을 다시 찾게 될 것 같다.
다음 전시가 벌써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