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 그 찬란한 속삭임

이선희 작가 개인전을 보며…

by 청일

가만히 ‘윤슬’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본다. 햇살이 잔잔한 물결에 부딪혀 반짝일 때, 그것을 우리는 윤슬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 반짝임은 단순한 빛의 굴절만은 아니다. 그것은 오래전 누군가의 시선에 담겼던 감정, 바다를 바라보며 떠올린 그리움, 혹은 삶의 어느 언저리에서 문득 느꼈던 희망의 파편 같은 것이다. 윤슬은 단지 눈에 비치는 풍경이 아니라, 마음속에 서서히 스며드는 온기다.


그날, 바닷가에 서 있었다. 물결은 조용히 밀려왔다 밀려나가기를 반복했고, 하늘에서 쏟아진 햇살이 수면 위에서 조용히 부서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아주 조심스럽게 빛을 뿌려놓은 것처럼.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지만, 그 안엔 말로 다할 수 없는 고요가 담겨 있었다. 그런 순간, 나는 생각했다. 누구나 이런 윤슬 같은 순간을 꿈꾸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짧지만 찬란한, 아주 잠깐이지만 평생을 비추는 그런 빛을.


수묵담채로 표현된 윤슬은 더욱 깊다. 먹의 번짐이 한지에 스며들듯, 한국인의 정서도 그 속에 자연스레 녹아든다. 그것은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라, 감정의 층위를 따라 천천히 내려앉는 서정의 그림자다. 서양화가 눈으로 느끼는 빛이라면, 이 윤슬은 마음으로 듣는 빛이다.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수면 위를 걸어가듯, 먹과 채색의 결이 서로를 보듬으며 한 장의 풍경을 이루어낸다.


오늘 나는 다시, 그 빛을 마주한다. 현실의 바다에 닿을 수 없어도, 이 한 폭의 그림이 나를 바다로 데려간다. 고요하지만 선명한 감정들, 스며들듯 빛나는 윤슬들이 나를 위로한다. 삶이 어지럽고 마음이 무거운 날에도, 윤슬은 말없이 속삭인다. “지금도 괜찮다고, 다시 빛날 수 있다고.” 어쩌면 이 윤슬은 나의 북극성인지도 모른다. 길을 잃지 않도록, 언제나 저 먼 수평선에서 반짝이며 나를 이끌어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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