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암산 둘레길
일상이라는 이름의 둑을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다. 학원에서의 업무를 마치고 난 후, 오랜만에 시간의 여유가 손에 잡혔다. 어디론가 걷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지난 4월, 불암산 철쭉공원에서 마주했던 붉은 꽃무리가 떠올랐다. 그날의 햇살과 봄기운, 꽃길을 걷던 감각이 마음 깊은 곳에서 다시 고개를 들었다. 망설임 없이 길을 나섰다.
하지만 이제 철쭉은 없었다. 꽃이 지고 난 자리는 푸르름으로 가득했다. 붉은 꽃잎 대신 초록 잎사귀가 가지마다 소복이 피어 있었다. 마치 그곳에 꽃이 피어났던 시간은 기억 너머의 일인 듯, 나무들은 아무렇지 않게 여름의 옷을 입고 서 있었다. 조금의 허전함과 함께 이상하게도 따뜻한 감정이 밀려왔다. 꽃이 졌다고 해서 그 자리에 생명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꽃이 사라진 자리를 잎이 채우고, 또 잎이 떨어지면 그 자리엔 새로운 생명이 뿌리내릴 것이다.
철쭉은 이제 한그루 나무로만 존재하고 있었다. 봄의 꽃은 추억이 되었고, 나무는 말없이 그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한 계절을 살아낸 존재의 무게와 고요함이 있었다.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가장 빛나던 시절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다시 ‘사람’으로 돌아간다. 다시 피기 위해, 다시 살아내기 위해. 어제 보았던 드라마 한 편, <천국보다 아름다운>에서 언급된 환생이 문득 떠올랐다. 꽃처럼 우리도 지고 피며, 그 안에서 조금씩 새로워지는 것 아닐까.
둘레길은 잘 정돈된 데크로 이어져 있었다. 완만한 경사와 나무 그늘, 그리고 틈틈이 불어오는 바람이 초여름의 기운을 달래주었다. 걷는 동안 마음이 차분해졌다. 발밑에서 나무가 삐걱이는 소리조차도 정겹게 들렸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한쪽 면에 붙은 플랭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공릉동 커피축제. 익숙한 가수들의 이름이 보였고,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반가웠던 것은, 경춘선 철길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아들이 이 축제에 참여한다는 사실이었다. 공연도 공연이지만, 아들을 응원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커피 한 잔 속에 스며 있는 그 아이의 노력이 문득 소중하게 느껴졌다.
길 옆 나무들의 잎을 보니, 구멍이 송송 뚫려 있었다. 자세히 보니 송충이가 갉아먹고 간 흔적이었다. 투박하고 거칠어진 잎사귀들이 안쓰럽게 보이기도 했지만, 그 안엔 분명히 한 생명의 치열함이 배어 있었다. 누군가에겐 해충이지만, 그들 역시 살아가기 위해 무언가를 먹고, 자라야 했을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그렇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흔적을 남긴다. 문득, 나도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나는 어떤 흔적을 남기며 살고 있는가.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면서도, 나도 무언가를 갉아먹으며 삶을 붙들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게라도 살아내는 것이 바로 삶일지도 모른다.
길 끝자락, 불암산 갤러리에서는 민화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려 했지만, 하필이면 월요일. 문이 닫혀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음 기회에 꼭 다시 오리라 마음을 다잡았다. 근처 카페로 발걸음을 옮겨 커피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자 했지만, 그마저도 휴무였다. 작은 기대들이 연달아 빗나가며 허탈함이 살짝 밀려왔지만, 그 자리에 멈추어 불암산의 풍경을 바라보는 일 또한 나쁘지 않았다.
카페포레스트 뒤편, 수국이 한창 피어 있었다. 풍성하고 탐스러운 꽃송이들이 초여름 햇살을 받아 더욱 선명하게 빛났다. 그 앞에서 몇몇 아주머니들이 웃음꽃을 피우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꽃이란, 그 존재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물들인다. 어느 순간이든, 꽃 앞에서는 마음이 열린다. 생의 무게를 짊어진 이들도, 피어 있는 꽃을 보면 잠시 웃을 수 있다. 아마 그것이 꽃이 가진 마법일 것이다.
오늘은 민화도 보지 못했고, 커피도 마시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묘하게 충만했다. 철쭉은 지고, 수국이 피었고, 바람은 시원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꽃이 지면 잎이 나고, 잎이 지면 또다시 꽃이 핀다. 자연은 그렇게 모든 것을 순리대로 흘려보낸다.
오늘 나는 그 순리 속을 걸었다. 사라진 꽃을 아쉬워하기보다, 지금 피어 있는 잎과 수국을 바라보며. 어쩌면 살아간다는 건, 바로 그 자리에서 다음 계절을 기다리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또다시 조용히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