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자 개인전
삼청동 끝자락 작은 골목을 돌자, 의젓한 한옥 건물이 길목을 지키듯 서 있었다. 갓 문을 연 미술관, 선혜원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을 사람들에게 무료로 내어준 기업의 결단이 고마웠다. 사회적 책임이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에 쉼과 위로를 선물하는 일이 아닐까. 그 생각이 내 마음을 오래 머물게 했다.
거울방에 들어섰을 때, 나는 순식간에 또 다른 세계로 끌려갔다. 사방의 풍경이 거울에 반사되고, 나조차 피사체가 되어 공간을 유랑한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서 있는지조차 분간이 안 되는 순간. 빈 공간을 가득 채운 거울의 마법 속에서 나는 ‘나’이면서 동시에 ‘타인’이었다. 예술은 때로 우리 존재의 경계를 허무는 일임을 체감하게 된다.
지하 복도에 놓인 보따리들은 묘한 울림을 남겼다. 어린 시절 책보가 되기도 하고, 피난의 상징이 되기도 하던 보자기가, 오늘은 미술관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각자의 희망, 사연, 혹은 눈물 어린 기억일 것이다. 나는 무심코 지나쳐온 보자기 하나에도 삶의 서사가 담겨 있음을, 그날깊이 깨달았다.
1층 전시실에 놓인 달항아리는 고요히 빛나고 있었다. 속이 꽉 찬 듯, 동시에 텅 빈 듯한 모순된 존재. 한국 고유의 곡선을 따라 유려하게 놓인 그 항아리들은, 비움과 채움의 미학을 동시에 품은 듯했다. 며칠 전 키아프에서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 허우적이던 기억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소수의 작품이 오히려 더 큰 울림을 남겼다. 예술은 양이 아니라 결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듯했다.
선혜원은 건물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자 안식이었다. 공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가 무엇인지, 그 답을 보여주는 듯했다. 누군가의 사회적 공헌이 수많은 사람에게 위안이 되는 이 선순환의 고리가 고맙기만 하다. 그리고 나는 다짐해 본다. 오늘을 향유하는 자에서 머물지 않고, 언젠가 베풀고 공헌하는 자로 나아가기 위해, 내 삶을 더 다듬어가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