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아프와 프리즈, 아름다움의 길위에서

키아프와 프리즈 전시회

by 청일

예술과 삶, 그 길목에서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문득 멈춰 서서 묻게 된다.

‘나는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좇으며 살아가는가?’


내게 그 물음의 답은 점차 선명해지고 있다. 화려한 성공도, 눈에 보이는 성취도 아닌, 눈앞의 아름다움을 향한 시선. 그림 한 점이 주는 떨림, 음악 한 줄이 남기는 흔적, 풍경이 품어내는 고요. 그것들이야말로 내 삶을 붙들고 길을 비추어 주는 등불이었다.


예술은 단지 취미나 여가의 장식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언어이며, 우리가 인간답게 서 있을 수 있게 해주는 내면의 토대다. 내가 예술 앞에 서는 순간, 나는 곧 나 자신을 마주하고, 내 삶의 방향을 묻는다.


이제 나는 확신한다.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며, 결국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자 하는 길. 그것이 내가 걸어가야 할 삶의 여정이다.


키아프와 프리즈, 아름다움의 길 위에서


지인의 도움으로 어렵게 입장권 한 장을 구했다. 직접 사려 했지만 금액이 만만치 않아 부탁을 드렸더니, 고맙게도 한 장을 건네주셨다. 처음 마주하는 키아프와 프리즈. 기대는 이미 무겁게 부풀어 있었다. 이른 아침, 전시가 열리는 강남으로 향했다. 언제나처럼 강남역은 인산인해였고, 나의 발걸음은 곧장 전시장으로 이어졌다.


1층 전시장은 A관과 B관으로 나뉘어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작품들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세상에 이토록 많은 그림과 화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온몸으로 실감했다. 작품마다 다른 호흡과 색채, 작가마다 다른 시선과 의도가 화면에 배어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다채롭게 형상화될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성수 전시회에서 인연을 맺었던 지나손 작가의 작품도 눈에 들어왔다. 뜻밖에도 작가本人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주어졌고, 그 짧은 만남은 오랫동안 여운을 남겼다. 전시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지만, 사람들의 발걸음보다 작품이 나를 더 오래 붙잡아 두었다. 진수성찬 앞에 선 듯, 무엇부터 맛보아야 할지 몰라 서성이는 기분이었다.

지인이 꼭 보라던 작품도 있었다. 골목길 끝 갤러리 진 안쪽, 벼루를 소재로 한 음각화였다. 검은 바탕 위에 회색으로 드리워진 나무와 사람의 형상은 묘한 고요와 서정을 머금고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알았다. 왜 이 작품을 내게 전해주었는지를. 취향의 결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소유욕이 불쑥 치밀었지만, 대신 눈과 마음 깊이 새겨 두었다.


작은 틀 속 풍경은 비워진 공간에서 출발한다.

홀로 선 나무는 고독을 품고, 그 고독은 기다림이 된다.

마침내 한 마리 새가 날아들고, 기다림은 만남으로 변한다.

비어 있음과 채워짐, 그 사이에 삶이 있다.

한국의 이름난 작가들의 작품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감히 구입은 꿈도 꾸지 못할 작품들이었지만, 가까이에서 진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특히 박서보의 작품과 LG가 협업한 색의 향연은 그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새로운 실마리를 건네주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작가이지만, 실물처럼 꾸며놓은 인물상 옆에 앉아 생전인 듯 사진 한 장을 남기기도 했다.

또 하나의 행운은 오래 전 코칭 수업 시간에 처음 접했던 그림과의 재회였다. 수평선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 버스 한 대. 단순한 구성이지만 내 마음속에 ‘떠남’의 갈망을 불러일으킨 작품이었다. 오늘 마침내 그 앞에 서자, 어디론가 먼 여행을 떠난 듯 착각이 일었다. 버스 앞 범퍼에는 ‘Speed Control’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일상의 분주함을 잠시 멈추고, 속도를 늦추어 떠나보라는 작가의 속삭임처럼 다가왔다.


푸른 수평선 앞에 멈춰 선 낡은 버스.

삶의 짐을 지붕에 얹은 채, 길의 끝에서 바다를 마주한다.

그 풍경은 더 나아가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듯,

여행이란 결국 도착이 아니라 멈춤의 순간에 있음을 그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함이다.


무려 다섯 시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키아프를 꼼꼼히 둘러보고 프리즈로 향했을 때, 이미 눈과 머리는 작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낯선 외국 작가들의 작품은 선뜻 마음을 파고들지 않았지만, 피카소와 샤갈, 베르나르 뷔페의 작품을 마주할 때면 진정한 미술의 향연에 초대받은 듯 황홀했다. 코엑스 안에서 13,000보를 걸으며 마음껏 예술을 누린 하루였다.


다시, 예술과 삶


그날 나는 분명한 답을 얻었다.

‘나는 무엇을 추구하며 사는가?’라는 물음에.


나는 언제나 아름다움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림을 통해서든, 음악을 통해서든, 풍경을 통해서든 늘 아름다움을 발견하려 애써왔다. 이제야 알겠다. 늦은 나이에 미술이라는 세계에 매료되어 발품을 팔고 있는 이유를.


아름다움은 단순한 기호나 취향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자, 인간으로서 나를 세워주는 근원이었다. 누군가는 성공과 명예를, 또 누군가는 부와 안정을 삶의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름다움에 대한 시선’이야말로 삶의 나침반이었다. 한 점의 그림, 한 줄의 선율, 저녁 하늘의 빛깔이 내 안의 혼란을 정리하고 다시 길을 걷게 만들었다.


예술은 그저 감상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사람을 어떻게 대하며, 나 자신을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를 묻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예술을 바라본다는 것은 곧 삶을 바라보는 다른 이름이었다.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자 하는 길.

이것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내가 걸어야 할 인생의 길이다. 오늘의 전시는 그 확신을 내게 다시 새겨주었다. 예술은 내 삶을 비추는 거울이었고, 동시에 앞으로의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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