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바늘이 가리키는 시간은 밤 11시 30분. 새벽 2시 30분까지는 아직 3시간이나 남아있었다. 천체의 신비로운 춤을 기다리며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활자들이 흐릿해지고 눈꺼풀이 무거워질 때마다 잠시 의식을 놓았다가 다시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졸음과 각성 사이를 오가며 시간을 보내니 어느새 두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 되었다.
“딸아, 일어나자. 달이 변하고 있어.”
함께 블러드문을 보기로 약속했던 딸을 깨워 아파트 중앙 잔디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녁 무렵 하늘 가득 환하게 빛나던 보름달은 이미 반쪽 이상 그림자에 잠식당해 초승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구가 태양과 달 사이에 서서 드리운 그림자가 서서히 달을 집어삼키고 있는 것이었다.
남은 달빛마저 점점 희미해지더니, 마침내 은빛을 완전히 잃어버린 순간 붉은 기운이 달 표면을 감쌌다. 지구 대기를 통과한 햇빛 중 붉은 파장만이 굴절되어 달에 닿으면서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현상이었다.
“3시 11분이 정점이라고 하더라. 그때가 되면 더 선명한 붉은 달을 볼 수 있을 거야.”
기대에 부풀어 핸드폰 카메라를 들었지만 제대로 된 촬영은 불가능했다. 서둘러 집으로 올라가 300mm 망원렌즈 두 개를 들고 내려왔으나, 삼각대 없이는 긴 노출로 선명한 사진을 찍을 도리가 없었다.
“아빠, 내가 해볼게.”
딸이 아이폰을 들고 이런저런 설정을 만지더니 셔터를 눌렀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고가의 망원렌즈보다 더욱 선명한 블러드문의 모습이었다. 기술의 진보 앞에서 아날로그적 열정은 한순간에 무력해졌지만, 그보다는 딸의 능숙함에 감탄이 앞섰다.
촬영에 성공한 기쁨도 잠시, 하늘 한편에서 옅은 구름들이 슬며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달빛을 희미하게 가릴 뿐이었던 구름이 점점 짙어지더니 결국 붉은 달을 완전히 집어삼켜버렸다. 빛을 잃은 달은 구름 속 어디선가 숨어버렸고, 우리는 그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같은 시간,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실망한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돗자리를 들고 나온 부부는 한참을 기다리다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고, 천체망원경까지 준비해온 주민은 렌즈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사라진 달을 찾다가 결국 장비를 접었다.
하지만 우리 부녀에게는 다른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름의 마지막 자락이 스러져가는 새벽 공기는 서늘했고, 그 속에서 나누는 대화는 따뜻했다. 완벽한 블러드문을 놓친 아쉬움은 오히려 더 깊은 이야기로 이어졌다.
“언젠가 너도 새 가정을 꾸리게 될 텐데…”
딸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 요즘 내가 배우고 있는 아트코칭에 대한 이야기, 각자가 품고 있는 삶의 지향점에 대한 이야기가 구름에 가린 달을 대신해 우리 사이를 밝게 비췄다. 아버지와 딸이 나누는 새벽의 대화는 어떤 천체 쇼보다도 소중했다.
평생 처음 육안으로 블러드문을 보고자 했던 나의 작은 소망에 기꺼이 동참해준 딸. 같은 호기심을 가진 동반자로서 밤을 기다려주고, 추위를 마다않고 함께 하늘을 올려다봐준 고마운 존재. 비록 구름이 완벽한 장관을 가렸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는 더욱 완벽한 시간을 만들어냈다.
블러드문은 그날 밤 우리 부녀에게 단순한 천체 현상 이상의 것을 선물했다. 함께 무언가를 기다리고, 함께 실망하고, 그 실망을 함께 다른 것으로 채워나가는 경험. 언젠가 각자의 길을 걸어갈 우리에게 남겨진 소중한 추억의 한 조각이었다.
완벽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완벽했던 그 새벽, 블러드문이 선물해준 것은 붉은 달빛이 아니라 딸과의 새벽 데이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