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창의력 수업
삶을 지탱하는 힘은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조용히 스며드는 설렘에서 비롯된다. 하루를 살아가는 데 기대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 그 자체로 우리는 이미 절반쯤 행복한 존재다. 설렘이 많은 날은 하늘이 한결 더 푸르고,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창의력 리부트‘라는 이름으로 임지영 작가가 기획한 모임의 첫날. 격주 일요일, 오후 한 시에 만나 그림을 보고 생각을 나누는 자리라 했다.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지만,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향한다는 이유만으로 가슴은 두근거렸다. 덜컹이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창밖 풍경을 스쳐보내며, 나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오늘의 설렘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
김창열 화가가 간밤에 생겨난 물방울 하나를 보고, 그것을 평생의 주제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세심한 관찰과 순간을 붙잡는 힘, 그리고 우연이 빚어낸 세렌디피티였다. 내 삶에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바로 예술 코칭을 만난 때였다. 우연 같았으나 결국 내 삶의 방향을 바꿔놓은 필연이었다. 그 만남이 계기가 되어 나는 쓰고, 생각하고, 배우며 내 삶을 재구성해왔다. 오늘 이 모임에 향하는 발걸음 역시, 그 길 위에서 이어지는 또 하나의 설렘이었다.
한낮의 태양은 여전히 여름의 기운을 남기고 있었다. 강렬한 햇살 아래, 나는 현대미술관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도착하니 이미 멤버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곧바로 미션이 주어졌다. 현대 추천작가의 기묘한 작품들 속에서 좋은 작품, 이상한 작품, 재미난 작품을 각각 한 점씩 고르고, 열 줄 이상 감상을 적은 뒤, 현재 읽고 있는 책의 구절과 연결해 글을 쓰라는 것이었다.
좋은 작품 – 죽음을 바라보다
설원, 설인이 잠에서 깨어난다. 하루가 지나고, 일 년이 지나고, 백만 년이 흘렀다. 그 오랜 시간 속에서 하루란, 일 년이란 과연 어떤 의미로 남을 수 있을까. 우리는 바쁘게 살아가느라 죽음을 생각할 겨를조차 잊고 지낸다. 그런데 뜻밖의 작품이 죽음의 존재를 내 앞에 불러낸다. 관 속에 누워 보지 못하는 망자들을 대신해 내가 누워 바라보는 듯한 순간. 삶과 죽음의 그림자가 찰나로 스쳐 지나간다. 그렇게 삶은 흘러가는 것이다. 영원히 한 평 땅조차 지킬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면, 그 덧없음 속에서 오히려 삶의 소중함이 새삼 다가온다.
재미난 작품 – 병풍 속의 굿판
십장생이 그려진 친숙한 병풍. 그런데 그 위에는 마이크, 꽹과리, 장고, 그물망 같은 기기묘묘한 사물들이 얹혀 있었다. 병풍은 한 시대를 살다간 이들의 흔적을 담은 열린 공간처럼 보였다. 힘없는 노인의 지팡이는 주인을 잃은 채 서 있고, 술잔을 기울이며 노래 부르던 취객은 빈 소주병만 남기고 사라졌다. 정성스럽게 수놓인 자취와 뜻모를 한자, 그 모든 것들은 굿판 같은 삶의 현장이었다.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고, 그 속에서 나는 언젠가 사라질 미래의 나 자신을 마주했다.
이상한 작품 – 토마토와 핫도그
토마토는 늘 그리운 과일이다. 몸에 좋다 해서 매일 먹으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그런데 작가는 그 토마토를 신석기 유물 같은 돌덩이에 올려놓았다. 그 위엔 케찹이 흐르고, 핫도그로 변주되기도 했다. 익숙한 과일이 낯선 조형물로 바뀌자, 친근함보다 어색함이 먼저 다가왔다. 저걸 먹다간 이빨이 다 나가버릴 것만 같았다. 익숙함을 비틀어 낯섦으로 만드는 작가의 의도가 오히려 묘한 웃음을 자아냈다.
병풍 앞의 하루키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싶은 대로 쓰고, 그것으로 보통 수준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면 나로서는 부족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병풍 앞에 서서 나는 생각했다. 언젠가 내 삶이 병풍으로 표현된다면, 무엇이 그려질까. 거창할 필요는 없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며, 가고 싶은 곳을 가는 삶. 그 단순함 속에서 나는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 하루키의 말처럼, 부족할 게 없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삶을 잘 살아내고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끝에 남은 것
그날의 미션은 단순한 과제가 아니었다. 설렘으로 시작한 하루가 작품을 거쳐 나의 삶으로 이어지는 여정이었다. 예술은 거울처럼 나를 비추고, 책의 문장은 나의 삶을 되짚게 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금 다짐한다. 설렘을 잃지 않고, 내가 원하는 삶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겠다고. 설렘은 곧, 또 하나의 시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