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 5일 국토종주를 회상하며
로드 자전거로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일은 세심한 계획과 준비가 필요한 일이다.
“목표 지점까지 어떤 코스로 갈 것인지? 중간 쉬는 지점은 어디쯤으로 할지? 하루에 몇 킬로를 달려서 어디에서 1박을 할지? 짐은 무엇을, 얼마만큼 준비해야 할지?”
떠나기 전부터 머릿속은 질문과 답으로 가득하다. 지난번 국토종주 4박 5일의 일정은 그런 탄탄한 준비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이른 아침, 아파트 정문에 모여 출정식을 갖고 가족들과 지인들의 응원을 받으며 야심차게 첫 페달링을 했다. 때는 벚꽃이 만개하는 시절이라 더할 나위 없는 날씨와 환경이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한 기후는 라이딩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양평 갈산공원을 가로지르는 종주길은 “라이딩 첫날의 부푼 의욕과 함께 흩날리는 낙화의 아름다움에 도취되기에 충분했다.” 자전거가 지나는 길 위로 솟아오르는 꽃잎들은 마치 퍼레이드 행렬의 오색 종이마냥 흩날렸다.
여주보를 지나 여주시내에서 점심을 했다. 식당을 찾느라 자전거길에서 한참을 벗어나긴 했지만, “재방문해서 다시 먹어보고 싶을 만큼 맛집”이었다. 식사 후 커피 한잔으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고 다시 자전거길에 들어섰다. 이곳에서 오늘의 목적지 수안보까지는 100킬로가 남아 있었고, 이미 40킬로를 달려온 터였다. 첫날 140킬로라는 거리는 한 번도 도전해보지 못한 길이었지만, 함께하는 일행이 있어 두렵지 않았다.
자전거길의 매력은 바로 “자전거길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일 것이다. 차도와 달리 대부분 강을 끼고 이어진 길은 강이 품고 있는 운치와 풍경을 고스란히 내어준다. 끝없이 이어진 강변 둑길을 달리며, 이 멋진 길을 우리만 누리고 있다는 미안함이 들 정도였다. 남부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기후는 더 온화해지고, 어느덧 더위마저 느껴졌다. 중간중간 물을 마시고, “한 움큼 챙겨간 에너지 젤”을 먹으며 체력을 보충해 나갔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도착한 수안보 숙소. 하루 동안 달린 140킬로의 숫자가 내겐 훈장처럼 느껴졌다. 이미 경험해버린 140킬로는 다가올 140킬로를 두렵지 않게 만들었다.
그러나 4박 5일의 코스 중 최대 난코스는 이화령 고개였다. 수안보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미 지나간 라이더들이 손꼽아 힘들다고 일러준 바로 그곳을 맞닥뜨렸다. “고개의 정상은 아예 보이질 않았고 시작점부터 가파른 오르막의 시작이었다.”
라이딩 입문한 지 1년 남짓, 처음부터 과분한 목표였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 길을 지나지 않고는 목표한 낙동강 하구에 다다를 수 없기에, 우리는 느린 속도로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저 먼 산봉우리가 아니라, “앞바퀴 바로 앞 채 1미터도 되지 않는 곳에 시야를 고정”하며 경사도를 외면했다. 보지 않는 것이 최선인 양, 그렇게 바로 앞만 응시하며 한 바퀴 한 바퀴를 굴려 나갔다.
속도는 시속 3킬로 남짓. 걸어가는 게 나을 수도 있었지만, 안장 위에서 버티는 것이 라이더의 정체성이자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결국 역부족. 잠시 자존심을 내려놓고 자전거를 끌기 시작했다. 다리의 피로가 가실 즈음 다시 안장에 올라, 좌우로 지그재그를 그리며 힘겨운 순간들을 버텼다. 무슨 생각이 있었을까? 단지 “이화령 이 고개를 넘어야만 한다는 필연의 운명”을 짊어진 채 묵묵히 페달을 밟았을 뿐이다.
마침내 정상에 올라섰을 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일행과 기념사진을 남기며, 백두대간 이화령을 오른 순간을 사진 한 장에 담았다. 그리고 이어진 내리막은 환상 그 자체였다. 고속도로가 뚫린 탓에 차량도 드물어, 내리막길은 마치 자전거를 위한 활주로 같았다. 오르막에서 흘린 땀방울은 시원한 바람에 식으며 고행의 끝을 보상받았다.
이후에도 힘겨운 고개들을 두 개나 더 넘고, 물 건너 산 넘어 우리는 마침내 낙동강 하구에 도달했다. “지나는 길 모두가 아름다운 풍경이었고, 힘들지 않은 길이 없었지만” 일행 모두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을 대장정이었다. 국토종주 완주 메달을 받아 들었을 때, 마치 금메달을 딴 듯한 뿌듯함이 밀려왔다. 지금 그 메달은 거실에 걸려, 늘 내 눈길이 머무는 자리에서 반짝이고 있다.
남은 도전은 ‘그랜드슬램’. 영산강, 섬진강, 금강을 마지막으로 2026년에는 대장정이 마무리될 것이다. 자전거 위에서 흘린 땀방울들이 또 어떤 풍경과 감격을 데려올지,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