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이강소
필사
그림 설명
위쪽 화면을 가득 채운 푸른색과 회색의 격렬한 붓질들.
그것들은 명확하게 아래로—
쏟아지고 있다.
비가 내리듯,
우박이 쏟아지듯,
세상의 무게가 떨어지듯.
그 붓질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 자체로 ‘힘’이다.
중력을 가진, 압박하는 힘.
저 푸른 하늘은 비이기도 하고,
우박이기도 하며,
눈이기도 하고,
천둥벼락이기도 하다.
변화무쌍한 인생길 위에 놓인
수많은 역경과 도전이
그 푸른 하늘 위에 서려 있다.
각각의 붓질은
내가 맞았던 빗줄기들을 기억해낸다.
거센 바람에 휘청이던 순간들,
천둥소리에 움츠렸던 밤들.
그리고 그 아래,
화면 중앙에 놓인 ‘집의 윤곽’.
흥미로운 건,
그 집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윤곽선만 있을 뿐,
내부는 비어 있다.
아니, 정확히는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배경과 같은 색으로 칠해져 있다.
마치 집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없음’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집은 무언가를 가진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막는 것이다.
안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밖을 차단하는 것.
벽 한 겹, 선 하나가 만들어내는 경계.
그 안쪽과 바깥쪽은
같은 세상이지만,
다른 세계다.
위쪽의 푸른색은 차갑고 불안정하다.
여러 톤의 파란색과 회색이 뒤섞여 있지만,
그 어느 것도 평온하지 않다.
반면,
아래쪽의 집이 있는 공간은 따뜻하다.
연한 베이지, 부드러운 갈색.
폭풍의 푸른색과 대비되는 이 따뜻함은
단순히 색의 차이가 아니라,
온도의 차이이자,
감정의 차이다.
집 안은
푸른 폭풍이 닿지 않는 곳.
같은 세계에 있지만,
다른 기후를 가진 곳.
그 선 하나,
윤곽 하나가 만들어내는 ‘경계’.
그것이 집의 본질이다.
나의 감상
벌판에 선 우리, 그리고 작은 방패
누구나 저런 공간을 꿈꾼다.
하지만 우리는 늘
사방이 뻥 뚫린 벌판에 서서
비바람과 천둥, 번개를 맞으며 살아간다.
폭풍으로부터의 피난처,
세상의 칼날로부터 몸을 숨길 곳.
완벽한 요새를,
절대 무너지지 않을 벽을.
우리는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가릴 것도 없고,
숨을 곳도 없다.
그저 온몸으로 견뎌내는 광야.
그래서일까,
이 그림의 붓질이 거칠고,
선이 흔들리며,
형태가 정확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진실하다.
집의 지붕은 뚫려있고
벽은 완전하지 않다.
우리가 의지하는 ‘안식처’라는 것이
사실은 이렇게 불완전한 것 아닐까.
완벽한 요새가 아니라,
간신히 버티고 있는 선 몇 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래도,
가끔 누군가가 안식의 공간이 되고,
어느 곳이 평안의 장소가 된다면
험난한 역경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그 짧은 쉼표 같은 시간들이
우리를 다시 벌판으로 나가게 한다.
캔버스 위의 집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완벽하지 않아도,
때로는 윤곽만으로도
우리는 집이라 부를 수 있으니까.
그 불완전한 선들이
오히려 더 진실하게,
우리의 삶을 닮았으니까.
이 그림은 결국,
‘경계’에 대한 그림이다.
폭풍과 평온 사이의 경계.
위협과 안전 사이의 경계.
세계와 나 사이의 경계.
그리고 그 경계가
얼마나 얇고 불완전한지를,
동시에 얼마나 절대적인지를
보여준다.
그림을 그리며,
삶을 살며,
우리는 생각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피난처가 아닐지도 모른다.
잠시 기댈 수 있는 벽 한 면,
잠깐 쉴 수 있는 처마 하나.
그 작은 공간이
우리를 무너지지 않게 붙든다.
저 푸른 폭풍 속에서도
우리가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그 작은 방패들 때문이 아닐까.
단지 ‘선 하나’일지도 모른다.
폭풍을 막을 순 없어도,
적어도 이렇게 말해줄 수 있는
“여기는 다르다.”
그 한 줄의 선.
그것으로 충분하다.
왜냐하면,
집이 거기 있으니까.
비록 윤곽만 있을지라도.
그림 속 집처럼,
우리도 누군가에게,
혹은 누군가가 우리에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방패의 공간이 되고 싶다.
완벽하지 않아도,
선 하나로도,
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