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뮤지엄 산
뮤지엄 산에는 두 번 가본 적이 있다.
그때는 아직 그림에 대한 애정이 깊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공간이 가진 특별한 매력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라운드’라는 공간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그 안에 잠시 머물며, 공간과 함께 침묵하고 싶다는
묘한 열망이 마음 깊은 곳에서 일었다.
가을이 절정으로 치닫던 어느 날,
산속의 뮤지엄 산 또한 또 하나의 ‘가을 풍경’이라 여겨졌다.
성남의 한 카페에 원두를 납품하고, 곧장 뮤지엄 산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는 붉게 물든 산속으로 곧게 뻗어 있었고,
양쪽으로 펼쳐진 가을산을 즐기며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 찼다.
도착해 안내를 받으니, 같이 보고 싶던 제임스 터렐의 전시는 이미 마감되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그라운드’만 신청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가을의 중심에 선 산은 붉은 단풍으로 새 단장을 마친 듯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입장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공간에서는 침묵해 주십시오.”
안내자의 그 말이 곧, 이 전시의 본질을 대변하는 듯했다.
드디어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섰다.
반원의 돔 안에는 사람의 형상을 한 철제 조형물들이
긴 간격을 두고 띄엄띄엄 놓여 있었다.
나는 30분 동안 그 안을 서성이며,
서서 보고, 앉아 보고, 멀리 산을 바라보며
침묵 속에서 생각을 정리했다.
반원의 돔 아래
반원의 돔 안,
처음과 끝이 공존하는 공간은
결국 평면으로 이어진 막다른 길이었다.
반원이 가진 구조의 제약일까.
만약 끝없이 원의 면을 따라 돌 수 있다면,
공간은 무한히 확장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언제나
평면 위를 오가는 이차원의 여정.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을
점점 더 빠른 속도로 걸어가고 있다.
웅크린 형상에서 앉은 형상,
그리고 누워 있는 형상까지.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자세가
녹슨 철제 위에 새겨져 있었다.
탄생과 소멸.
그 반복은 내가 딛고 선 이 땅 위에서
수만 년 동안 이어져 온 질긴 운명의 고리다.
돔의 내부는
확장될 수 없는 유한의 공간이었다.
무한을 꿈꾸는 인간에게 던지는,
이룰 수 없는 꿈의 경고이자 깨우침.
소리가 사라진 공간.
오직 콘크리트의 곡면과 철제 형상,
그리고 머무는 가을의 시간만이 존재했다.
천장의 원형 틈새로
빛이 조용히 떨어진다.
그 한 줄기 빛이
시간의 흐름을 멈춰 세운다.
그라운드에 서 있는 나는
더 이상 관람객이 아니었다.
이 침묵 속에서
나는 하나의 존재로 환원되었다.
무채색의 벽,
차가운 곡선,
그 끝에 걸린 가을의 색채 속에서
유한과 무한이 맞닿았다.
자연과 인공의 경계가 사라진 자리.
빛과 어둠,
안과 밖,
생과 소멸이 포개어지는 순간,
삶은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길 위의 여행이지만,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잠시나마
영원의 그림자를 밟고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