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집 방문
아주 어린 날,
같은 교실을 오가며
우리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알았다.
그때는 세월이 흐른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말없이 각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그 시절의 공기는 아직
몸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부모가 된 모습으로 다시 만났을 때,
사라진 줄 알았던 기억의 조각들이
느닷없이 돌아왔다.
철없던 얼굴,
웃음의 결,
그날의 온도까지.
각자의 삶을 살아오며
세월의 무게를 한껏 끌어안은 채
우리는 서로를
안타깝고도 정겨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이어진 인연 위로
또 십여 년이 흘렀다.
사 년 전,
학원 건물을 올린다며
터를 다지고 콘크리트를 양생하던 시절
대구의 친구 집을 다녀온 뒤로
입주 소식을 듣고도
나는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시간은 늘 그렇듯
마음보다 먼저 흘러가 버렸다.
그리고 오늘,
사 년의 시간을 건너
나는 마침내 그 집에 들어섰다.
부부 화가로 살아오며
학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삶과 예술을 나란히 세워온
긴 여정 끝에 마련한 보금자리.
공간은 단단했고
침묵 속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작은 소품 하나,
손이 닿은 자리 하나까지
예술가의 시선이 머물지 않은 곳이 없었다.
삶의 결이 달랐기에
그의 삶의 외형은 더욱 또렷이 드러났다.
범상치 않다는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 풍경이었다.
1층은 원장실,
2층은 학생들의 수업 공간,
3층은 두 부부의 작업실,
4층과 5층은 생활의 자리.
집은 위로 갈수록
점점 더 사적인 세계로 열려 있었다.
4층까지 이어진 계단에는
친구의 작품과 수집된 예술품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 앉아 있었고
벽에 걸린 장식마저
하나의 작업처럼 보였다.
이곳은 집이기 전에
이미 하나의 예술이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우리는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말들 사이로
그가 걸어온 삶의 자국들이 드러났고
이 집은
그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형태를 얻은 결과물임을 알게 되었다.
땀과 인내,
포기하지 않은 시간들이
벽이 되고 계단이 되고
마침내 하나의 집이 되었다.
이 집은
그의 인생이 만든
조용한 걸작이었다.
비록 거리가 멀어
자주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감정의 결을 공유하고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안심한다.
앞으로의 시간 속에서도
서로의 삶을 응원하며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함께 나이 들어가기를
조용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