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게르하르트 리히터

by 청일

1. 작가 소개 게르하르트 리히터 (Gerhard Richter, 1932– )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독일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로,

회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해 온 인물이다.

사진처럼 정밀한 사실주의 회화에서부터

흐릿하게 번진 블러 회화,

그리고 추상회화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업은 하나의 양식에 머무르지 않는다.


리히터는 “회화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바로 그 불완전함 속에서 현실과 기억, 시간과 감정이 만나는 지점을 포착해 왔다.

그의 그림은 명확한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는 이로 하여금

의심하고 머뭇거리게 만드는 방식으로

세계와 마주하게 한다.


2. 작품 설명 (Kerze / Candle)


리히터의 〈촛불〉 연작은

단순한 정물화처럼 보이지만,

그의 작업 세계를 응축해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어둠 속에서 홀로 타오르는 촛불은

분명히 ‘빛’을 그리고 있지만,

그 빛은 확신보다는 덧없음에 가깝다.

사진을 바탕으로 한 듯한 화면은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처리되어

선명한 의미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이 촛불은

희망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곧 사라질 존재다.

타오르는 순간 이미 소멸을 향해 가고 있는 빛.

리히터는 이 작은 불꽃을 통해

삶의 유한함, 시간의 흐름,

그리고 인간이 붙잡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말한다.


그래서 그의 촛불은

기도처럼 보이면서도

어쩌면 기도 이후의 침묵에 더 가깝다.

무언의 상태로 남겨진 채

모든 해석을 보는 이에게 맡긴다.


3. 나의 감상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촛불〉 앞에 서면

바람도 없는데 불꽃은 늘 흔들린다.

선명한 듯 보이지만 끝내 또렷해지지 않는 형상.

그는 사실을 그리면서도

확신에 이르지 않는 방식으로 세계를 남겨두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간다.”


리히터의 촛불은

밝힘보다 소멸에 가깝고,

희망보다 시간의 흐름에 닿아 있다.

행복도 불행도 아닌 자리에서

불꽃은 잠시 빛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라질 준비를 한다.


그 앞에서 나는

자연스레 기도를 떠올린다.

나를 위한 소망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바람과 기원.

자신의 몸을 태워

잠시 세상을 밝히는 존재 앞에서는

언제나 마음의 방향이 바뀐다.


오늘, 이 촛불을 보며

나는 한 사람을 생각한다.


내가 태어난 날이면

안방 장롱 앞에 정한수 한 그릇을 놓고

작은 촛불 하나를 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던 나의 어머니.

그 기도는

하느님도, 부처님도 아닌

이름 없는 온 우주를 향해 올려졌고,

촛불의 온기는

말없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이제 내 생일에

나를 위해 기도해 줄 어머니는 없지만,

그분의 피와 살과 뼈가

여전히 나와 함께 살아 있음을 안다.

그날 올려졌던 기도의 기운은

시간을 건너

지금도 내 삶 한가운데 머물고 있다.


리히터의 촛불처럼

모든 것은 결국 지나가겠지만,

지나감 속에서도

어떤 마음은 남는다.


그 따뜻함을 안고

나 또한 세상에 이로운 이로 살고 싶다.

바른 어른이 되기 위해

읽고, 바라보고, 쓰며

나를 다듬는 일은

촛불 앞에 서서 올리는

조용한 기도와도 같다.


남은 삶은

밝히되 집착하지 않고,

타오르되 과시하지 않으며

그렇게

나를 소원하며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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