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앞에서 나를 만나다를 읽으며…
수많은 그림들 중
유독 한 그림에 시선이 머무는 이유는
그 안에 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라
이미 지나온 나,
혹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나일지도 모른다.
그림 감상 책을 읽으며 깨닫는다.
나라면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을
그림 한 점 앞에서
누군가는 깊은 이야기를 끌어올린다.
그가 끌어올린 것은
그림의 의미라기보다
그 그림을 통과해 되돌아온
자기 자신의 시간이다.
우리는 그림을 처음 본다고 믿지만
실은 이미 마음속 어딘가에 저장된 장면을
다시 호출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떤 그림은 낯설지 않고
어떤 그림은 설명할 수 없이
마음을 건드린다.
그것은 단지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살아온 과거가 다르기에
그림 한 점이 열어주는
사유의 방향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림은 의미를 고정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남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는 주체는
언제나 그림 앞에 선 ‘나’다.
나는 100일 그림 향유 필사를 통해
매일 한 점의 그림 앞에 선다.
소비하듯 훑어보는 시선이 아니라
머무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오래 바라본다는 것은
판단을 유예하고
의미가 스스로 떠오를
시간을 허락하는 일이다.
그렇게 그림 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불현듯 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림은 과거를 호출하고
과거는 현재를 해석하며
현재는 다시
미래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결국 그림은
미래의 나를 예언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어떤 미래를
선택하고 싶은지를
스스로 묻게 만든다.
그러므로 그림을 본다는 것은
미적 경험 이전에
존재에 대한 성찰이다.
그림 앞에 선 나는
잠시 멈춰 서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묻는다.
누군가 내게
왜 그림을 보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림에는 정답이 없고
그 앞에 선 나에게만 유효한
사유의 해답이 있기 때문이라고.